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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0.29 후삼국시대의 재조명
후삼국 시대의 재조명 |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위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태봉국의 궁예는 1000년동안의 중국중심의 동아시아 질서를 깨기위해 분열중이었던 중국과는 외교를 벌이지 않고 태봉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를 세우고자 했었다. 그래서 중국 대신 거란과의 외교로 여러 물건을 하사했다.(이에 대해서도 일본 칠지도같이 논란이 많음) 이와 반대로 진훤같은 경우에는 동아시아 세계의 질서에 맞춰 중국과의 수교를 통해 외교적 우위를 차지해 통일의 유리한 고지를 찾으려고 했다.
그리고 이 시기는 신라말기의 혼란시대였다. 골품제의 한계를 느끼고 더이상 빛을 찾을 수 없는 6두품세력들과 세금으로 고통받던 농민들과 삼국통일이라는 허물안에 살아있던 백제와 고구려의 혼이 마침내 터진 시기이다. 사실 신라는 정신적인 통일을 이룩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지면 언제든지 반란을 일으킬 준비가 되있었다. 그리고 결국 원종애노의 난으로 반란이 일어나자 이와 동시에 전국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결국 신라의 통제권은 수도권으로 축소되었다.
여기까지가 신라말기의 모습이다. 그리고 진훤이 후백제를 세우고 궁예가 태봉을 세우자 후삼국이라는 시대가 열리게된다. ...후삼국 역사에 대해서는 생략...그리고 신라가 항복을 하고 후백제가 진훤의 군사에 의해 멸망되자 마침내 고려가 민족 재통일을 이룩하였다.
후삼국에 대한 언급이 짧았기에 후삼국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태까지 보던 신라말기의 사회 모순부터 고려통일까지의 시기가 바로 후삼국시대이다.
고려와 조선의 경우를 보면 급진하게 조선을 세우다 보니 뭔가 부자연스럽게 고려왕조를 멸망시킨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신라와 고려의 경우에는 이 후삼국시대가 있었기에 한나라에서 다른나라로 왕조의 교체가 자연스러울 수 있었다.
후삼국시대는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영웅들이 반세기에 공존했던 유일한 시기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진훤, 궁예, 왕건 말고도 기훤, 양길, 능창등 수많은 영웅들이 자기의 세력을 과시하며 자유로웠던 시기였단 말이다. 이것이 필자가 후삼국시대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 중 하나이다. 우리는 이 시기 이후로 더이상 영웅들이 공존하던 때를 떠올릴수가 없다. 이 시기가 너무나도 짧았다는 것이 그저 아쉬울 뿐이다.
필자가 후삼국시대에 가장 흥미를 느낀 이유가 바로 고대와 중세의 사이에서 마지막으로 전쟁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다 주지 않는 역사의 황무지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개척하지 않은 땅을 내가 개척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혹시 알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연구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이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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