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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0.23 궁예 전설
철운에서 금강산 들어가는 철도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삼방역이라는 역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근데 그 역건너에 큰 돌담굴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그 돌담굴이 궁예의 무덤이라 한다. 그것이 왜 궁예의 무덤이라 하면 왕건의 군사들이 치열하게 쫓아 오면서 쏘니까는 이 궁예가 웬만한 화살은 맞으면은 그냥 쑥 뽑아서 던지는 그런 장사였다. 그런데 하도 많이 쏘아서 장사도 지치니까는 상나무 아름드리 겿에 가서 기대고 섰다. 하도 치열하게 화살을 던지니까는 궁예가 고슴도치 모양으로 몸에 꽃혔는데 안쓰러진다는 것이다. 이상해서 가서 보았더니 죽어있었다. 발길로 차도 안 넘어가고 목에다 뭘 두르고 잡아 당겨도 안넘어졌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사는 역시 죽어서도 장사구나 별짓을 다해도 안넘어지니까는 그냥 선 채로 돌로 쌓아 묻어서 궁예의 무덤을 돌로 묻어서 궁예의 무덤이 그렇게 되었다. 결국 눕지도 못하고 죽은것이었다.
- 화현면 설화 광대소라는 이름이 비석에 새겨진 것을 보고 묻자 해준 이야기
펑강군 복계역 북쪽으로 하갑리, 상갑리라는 마을이 있다. 궁예가 패해 북쪽으로 도주하다 하갑리에선 아래 갑옷을 벗고 도주하다, 상갑리에선 윗 갑옷을 벗고 도주했다 해서, 하갑리, 상갑리라 했다 한다.
궁예(弓裔·?-918년)는 896~898년간에 철원(구철원)에서 송악으로 도읍을 옮겼다. 이후 궁예는 901년 당나라에게 괴멸당한 고구려를 다시 일으켜 보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 일환으로 904년 국호를 마진(摩震)으로, 연호를 무태(武泰)로 바꾼다. 그 후 1년 뒤(905년) 구철원 북쪽 30리 거리인 풍천원 들판(지금의 철원과 평강 사이 비무장지대 북방한계선과 남방한계선 사이)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리고 911년 국호를 마진에서 태봉(泰封)이라 칭한다.
그러나 궁예는 풍천원 들판에다 거대한 도성을 축조하면서 강제로 노역에 끌려온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사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지지세력들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청주 지역을 너무 편애하게 된다. 그러자 경기 북부 호족들이 반기를 들고 궁예의 부하였던 왕건을 앞세워(877-943) 918년 궁예를 몰아낸다.
훗날 궁예가 왕건의 군사에게 쫓겨 진을 친 곳이 명성산이다. 이 때 궁예가 이 산에서 철원쪽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겨 눈물을 흘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하여 ‘울음산’으로 불리었고, 궁예가 강변에서 한탄했다 하여 ‘한탄강’이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궁예와 명성산이 관련된 전설은 매우 많다. 산정호수 옆 두 개의 봉우리는 궁예가 올라가 망을 보았다는 곳이고, 등룡폭포 위 샘터 이름이 궁예약수, 자인사에서 궁예가 기도를 올렸다는 전설, 정상에서 강포리쪽으로 이어지는 궁예능선은 왕건의 공격을 피해 항거하며 쌓았다는 성터와 궁예왕이 숨었었다는 궁예왕굴 등 이 남아 있는 것 등이 그것이다.
고려사에는 ‘궁예가 평강과 안변 사이 험준한 지형인 삼방협으로 도망을 갔을 때 배가 고파 보리이삭을 끓여 먹다가 평강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이 지방 주민들로부터 전해지는 전설은 ‘궁예가 삼방협에서 우연히 만난 어느 중이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는 이런 협곡에 들어와 살아남겠다는 것이 어리석다”고 말하자 궁예는 “드디어 하늘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 높은 곳에서 의연하게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설도 전해진다.
조선 말기에 제작된 지도인 청구도에는 삼방협 위치에 궁왕묘(弓王墓)가 그려져 있다. 또 1924년 최남선이 쓴 풍악기유(楓嶽記遊)에는 궁예왕 무덤흔적을 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궁예가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웠던 철원은 화산대지입니다. 따라서 철원에서 가장 흔한 돌인 현무암의 특징은 용암덩어리가 공기중에서 식으면서 빠져나간 가스의 흔적으로 인한 구멍이 숭숭뚫린 현무암 화산석과 관련한 궁예의 일화는 어느날 왕건과 싸우고 궁으로 돌아오던 궁예가 개울을 건너던중 우연히 이 현무암을 발견하곤 돌에 뚫린 수많은 구멍이 벌래가 돌을 파먹었다고 생각하곤 스스로의 자격지심 으로 돌을 벌래가 파먹다니 이런 해괴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니 아~ 나의 운명이 다 하였구나라고 자조 하였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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