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시대

환국 - 한단고기(신빙성은 없음)

배달국 - 한단고기(신빙성은 없음)



고조선시대

고조선(B.C. 2333(삼국유사, 학계에선 기원전 15~13세기로 추정 ~ B.C.108) - 관련신화 : 고조선건국신화(단군왕검)

→ 단군조선(BC2333) : 단군왕검

→ 기자조선 : 기자(중국인) - 중국측 기록

→ 위만조선(B.C. 194~B.C. 108 : 위만(연나라에서 귀순) - 일부에서는 조선인이라 추정)

- 한나라에 멸망 후 한사군이 설치됨


탐라국(1. 고조선 건국 전(B.C.2337)에 건국됬다는 설 2. B.C. 1세기 ~ A.D. 3세기경에 건국됬다는 설) 

- 관련신화 : 삼신혈

- 조선 세종까지 독립국이었음



열국시대(원삼국시대)(B.C. 1세기 ~ A.D. 5세기)

삼한(B.C. 1세기 ~ A.D. 4세기) - 고조선 멸망 후 고조선에서 남하한 세력이 토착민과 세운나라

→ 마한(54개국) - 삼한의 실질적 지배세력, 중심국가 : 목지국 

→ 진한(12개국) - 중심국가 : 사로국

→ 변한(12개국) - 철이 유명하여 일찍부터 외국과 무역


부여(B.C.4~3세기~494년) - 고구려에 복속

→ 북부여 : 부여의 초기모습 - 건국자 : 해모수(삼국유사) - 494년 고구려에 복속

→ 동부여 : 해부루왕이 세워졌다고 전해지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음. - 41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멸망


읍루(B.C. 1세기) - 부여의 지배를 받음


옥저(B.C. 1세기) - 56년 고구려에 복속


동예(예맥)(B.C. 1세기) - 2세기 후반에 고구려에 멸망


대방 - 황해도 일대를 장악하다 고구려에 멸망


낙랑 - 평안도 남부 일대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300년에 고구려에 병합

- 낙랑은 서기 37년에 고구려에 병합되었다가 44년에 재건했으나, 결국 다시 고구려에 흡수된 것


조선 - 단군의 후예가 세운나라이나 소국으로 전락하다 사라짐



삼국시대(B.C. 57 ~ A.D. 678)

고구려(B.C. 37~A.D. 668) 

- 주몽이 건국했다고 함

- 구려, 졸본부여, 고려라고 불리기도 함

→ 고구려 부흥국

보덕국(안승)


신라(B.C. 57 ~ A.D. 935) 

- 박혁거세가 건국했다고 함

- 나당연합으로 삼국을 통일한 후 한반도를 지배하려던 당을 쫓아내고 삼국통일을 이룸

- 사로국, 계림국, 서라벌이라고 불리기도 함.


백제(B.C. 18 ~ A.D. 660) 

- 고구려 출신의 온조가 세웠다고 함

- 처음 국호는 십제였다 미추홀의 비류가 죽자 백제로 바꿨다고 함 → 성종이 남부여로 국호를 고침

→ 백제 부흥국

백제(백제왕자 풍)


가야((A.D. 42 ~ 562) - 건국자 : 김수로왕

- 6개국에서 12개국이 있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음

→ 금관가야 : 전기가야의 맹주국

→ 대가야 : 후기가야의 맹주국

→ 아라가야 : 맹주국을 위협하던 만년 2인자 국가. 멸망직전에는 국제회의까지 주관할정도로 가야에서 세력이 컸음


두막루국(5세기~8세기)

- 부여가 멸망한 후 부여계가 만든 나라. 일종의 부여 부흥국

- 발해에 복속


우산국(기록에 최초에 등장하는 512년 전부터 존재했을 것이라 추측)

- 512년 신라 이사부에 의해 신라에 병합



남북국시대(692~935)

신라(중대~하대)

- 왕이 자주 교체되는 시기. 쿠데타와 반정이 판치던 시대


발해(698~926)

- 대조영이 건국

- 고구려의 부흥국

- 지배층의 대부분의 고구려계인이며 피지배층은 말갈족

- 거란의 침입에 멸망 - 일각에서는 백두산 폭발이 멸망의 원인이라고도 함

- 멸망당시 발해왕자가 고려에 귀순해오기도 함.

→ 발해 부흥국은 동란국, 후발해, 정안국 등 20여개가 넘음


제나라(765~815)

- 고구려 유민출신의 이정기로부터 4대간 50여년간 통치

- 당나라 산둥지방



후삼국시대

신라(하대)

- 김씨왕조가 끝나고 박씨왕조가 재시작

- 935년 고려에 항복


태봉(892~918)

- 궁예가 건국한 고려

- 왕건의 쿠데타로 인해 고려로 재탄생


고려(918~1392)

- 왕건이 건국

- 후삼국시대 통일

- 발해의 귀순


후백제(900~936)

- 진훤(견훤)이 건국

- 2대 신검왕이 쿠데타를 잃으켜 견훤을 쫓아내자 견훤이 고려에 귀순에 직접 후백제를 멸망시킴


그 외 여러 나라가 부흥, 건국됬을 것이라고 추측됨


고려시대(918~1392)

- 왕건이 건국함

- 요나라(거란) → 금나라(여진) → 원나라(몽골)의 침입

- 이성계와 정도전에 의해 멸망


대위국(1135~1136)

- 묘청의 난으로 건국

- 김부식에 의해 1년만에 멸망


삼별초의 고려(1270~1273)

- 삼별도의 항쟁

- 배중손, 승화후 온, 김통정


원간섭기(삼별초 항쟁 진압후 80년간)

- 제주지역이 강제로 원나라에 귀속됨

- 왕호앞에 원나라에 충성한다는 뜻으로 '충'자가 붙게됨(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

- 원나라의 부마국으로서 명맥을 이어감

- 공민왕의 반원정책과 원나라의 쇠퇴로 독립


조선시대(1392~1910)

- 이성계가 건국

- 현재 우리의 전통사상의 기원

- 명나라를 사대하다 청나라에 다시 사대

- 일본에 의해 멸망


대한제국(1897~1910)

- 고종이 세계흐름을 읽으며 국호를 변경

- 순종대에 일본에 멸망


대금국(1453)

- 단종의 친위찬탈 이후 억울한 누명을 씌게 된 이징옥이 남만주로 가서 대금국을 세움.

- 여진족에게 지원을 약속받음

- 이징옥 피살 후 멸망


간섭기

일제강점기(1910~1945)

- 조선총독부 : 일본의 통치

- 대한민국임시정부 : 조선의 독립


미군정(1945~1948)



분단기(1950~)

- 6.25(1950~1953) 이후


대한민국(남한)(1948~)

- 초대 대통령 : 이승만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북한)(1948~)

- 초대 지도자 : 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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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령목 2012. 5. 21. 22:25

[감동]일제시대 개망나니 조선3대 파락호 '김용환'


한자어로 ‘파락호’라는 말이 있습니다. 양반집 자손으로써 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 난봉꾼를 의미합니다.

이 파락호 중에 일제 식민지 때 안동에서 당대의 파락호로 이름을 날리던 학봉 김성일의 종가의 13대 종손인

김용환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노름을 즐겼다고 합니다. 당시 안동 일대의 노름판에는 꼭 끼었다고 한다.

초저녁부터 노름을 하다가 새벽녘이 되면 판돈을 걸고 마지막 배팅을 하는 주특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 배팅이 적중하여 돈을 따면 좋고, 그렇지 않고 배팅이 실패하면 “새벽 몽둥이야”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고 합니다.

이 소리가 나오면 도박장 주변에 잠복해 있던 그의 수하 20여명이 몽둥이를 들고 나타나 판돈을 덥치는 수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판돈을 자루에 담고 건달들과 함께 유유히 사라졌던 노름꾼 김용환.

파락호(破落戶)김용환

안동의 유명한 학봉종가(鶴峯宗家)13대 종손
김용환(1887~1946. 광산김씨)이 파락호. 조선의 3대 파락호가 바로 그 인물이다.

그렇게 노름하다가 종갓집도 남의 손에 넘어가고 수 백년 동안의 종가 재산으로 내려오던 전답 18만평, 현재 시가로

약 200억원도 다 팔아먹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팔아먹은 전답을 문중의 자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걷어

다시 종가에 되사주곤 했다고 합니다. “집안 망해먹을 종손이 나왔다”고 혀를 차면서도 어쩔수 없었습니다.

당시는 종가는 문중의 구심점 이므로 없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양반의 할아버지는 김흥락으로
율곡 학풍의 정수를 그대로 이어받으신 분으로 안동 일대에서의 권위는 참으로 대단했다고 한다.

부패한 관리에항거에 민중이 난을 일으켜 관아에 쳐들어갔는데 이 분이 대청마루에 앉아

"무릇 민정은 순하면 따르고 역하면 뿌리치는 법이다. 모든 폐정을 고치게 할 터이니 그대들은 물러가서 기다리라" 라는 한 마디에 모든 민중들이 그 분을 믿고 스스로 물러날 정도로 민중과 유생들의 신망이 두터운 분이셨다.

이 분의 사촌이 김회락으로 안동지방 의병장으로 의병을 일으켜 일제와 맞서다 학봉 종택 다락방에 숨어계셨는데 일제에 잡히고 집안 어른들도 종택 마당에 무릅꿇리며 모욕을 당하셨다.

끝내 김회락 어른은 일제에 체포되어 복수해달라는 말을 남기시고 총살당하셨다.

김용환은 해방된 다음 해인 1946년 세상을 떠납니다.

이러한 파락호 노름꾼 김용환이 사실은 만주에 독립자금을 댄 독립투사였음이 사후에 밝혀졌습니다.

그간 탕진했다고 알려진 돈은 모두 만주 독립군에게 군자금으로 보냈던 것이 밝혀졌습니다.

독립자금을 모으기 위해 철저하게 노름꾼으로 위장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야 일제의 눈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용환은 독립군의 군자금을 만들기 위하여 노름꾼, 주색잡기, 파라호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살면서도 자기 가족에게까지도 철저하게 함구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임종 무렵에

이 사실을 알고 있던 독립군 동지가 머리맡에서 “이제는 만주에 돈 보낸 사실을 이야기 해도 되지않겠나?”.고 하자

그는 “선비로서 당연히 할일을 했을 뿐인데 이야기 할 필요없다”고 하면서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지금 안동 독립운동기념관이 이 김용환의 일대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무남독녀 외동딸이 얼마나 가슴에 한이 되었을까.

어쩔수 없이 농은 사가야 하고 돈은 없고, 큰어매(할머니: 안동 지방에선 할머니를 큰어매라 표현한다는 군요)가 쓰던 헌 오동나무 3층장을 혼수로 가져갔다고 한다.

시댁으로써는 참으로 기막힌 일이었을 것이다.

이름난 명문 양반가 그것도 종가댁 딸을 며느리로 삼아 데려왔더니

아비가 파락호라 농사오라 보낸 돈으로 도박하고 헌농 들고 왔으니 말이다.

이에 화가난 시댁에서 귀신씌인 농이라며 마을 강변 모래사장에 내놓고 불을 싸질러 버렸다고 한다.

아주 잘마른 오동나무 3층 장이니 얼마나 잘 탓을까. 불 높이가 어찌나 크던지 그걸 태우는 동안 파락호 김용환의 무남독녀 딸은 속으로 애간장을 녹였다고 한다.

이렇게 파락호로 이름을 날리니 ‘양반동네 소동기’라는 책의 저자인 윤학준이 근대 한국의 3대 파락호

흥선대원군 이하응, 1930년대 형평사(衡平社) 운동의 투사였던 김남수 그리고 학봉 종손인 김용환을 꼽았을까.

하지만 1945년 광복이 되고 조금씩 나타난 자료에 따르면 김용환의 파락호 인생은 철저한 위장이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1946년 임종을 눈앞에 두고도 독립운동을 한 사실을 숨기고 돌아가셨단다.

21세에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다짐하지만 종손으로 집안을 지켜야 하는 의무도 다해야 했기에 철저히 파락호 도박꾼으로 위장하여 전 재산을 팔아 만주 독립군의 독립자금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한 참 후인 1995년에 정부로 부터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셨고 이 훈장 수여식 날 파락호 김용환의 무남독녀딸이 그동안의 소회를 4.4조 서간문으로 글을 써 읽으니 장내가 숙연했다고 한다.

우리아배 참봉나으리

그럭저럭 나이 차서 십육세에 시집가니

청송 마평 서씨 문에 혼인은 하였으나

신행 날 받았어도 갈 수 없는 딱한 사정

신행 때 농 사오라 시댁에서 맡긴 돈

그 돈마저 가져가서 어디에서 쓰셨는지?

우리 아배 기다리며 신행 날 늦추다가

큰 어매 쓰던 헌 농 신행 발에 싣고 가니 주위에서 쑥덕쑥덕

그로부터 시집살이 주눅 들어 안절부절

끝내는 귀신 붙어왔다 하여 강변 모래밭에 꺼내다가 부수어 불태우니

오동나무 삼층장이 불길은 왜 그리도 높던지

새색시 오만간장 그 광경 어떠할고

이 모든 것 우리 아배 원망하며

별난 시집 사느라고 오만간장 녹였더니

오늘에야 알고 보니 이 모든 것 저 모든 것

독립군 자금 위해 그 많던 천석 재산 다 바쳐도 모자라서

하나 뿐인 외동딸 시댁에서 보낸 농값, 그것마저 바쳤구나

그러면 그렇지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내 생각한대로, 절대 남들이 말하는 파락호 아닐진데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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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령목 2012. 3. 17. 13:52

온조(溫祚)

 온 ①따뜻하다 ②따뜻하게 하다 ③데우다 ④부드럽다 ⑤온화하다(--), 온순하다(--) ⑥단조롭다(調--) ⑦훌륭하지 못하다 ⑧익히다, 학습하다 ⑨복습하다(--) ⑩온도 ⑪샘 이름 ⑫온천

 조 ①복(福) ②해, 연(年) ③임금의 자리, 제위(帝位) ④(복을)내리다, 돕다 ⑤갚다, 보답하다(報答--) ⑥전하다(傳--), 유전하다(流轉--)

온조를 이름그대로 풀이하면 '광명을 고루 비치는 사람'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다른 생각을 할 수있다.

'온' 이라는 글자는 순우리말로 100 또는 '모든, 많은'을 나타낸다.
'조' 라는 글자는 한자로 왕을 나타낸다.  

백제를 한문으로 하면
百濟가 되는데
여기서 百은 숫자 100을 의미하는데 이는 순우리말 '온'과 의미가 같다.

결과적으로 온조는 백제의 임금이라는 뜻이된다.

이는 음차와 훈차를 동시에 사용했다고 볼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서동요'전을 들수 있다.

 

善化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卯乙抱遣去如

 

선화 공주니믄(선화공주님은)

남 그즈지 얼어 두고(남 몰래 시집가 두고)

맛둥방을(맛둥 서방을)

바매 몰 안고 가다.(밤에 몰래 안고 간다.)

여기서 '善化公主主隱'을 선화공주주은 으로 발음하지 않고 선화공주님은으로 읽어야 옳다.

 한자                    化          公          主          主         
 음(音)          선          화          공           주           주           은
 훈(訓)       선하다         되다      공평하다        임금        임금        숨기다 
 독(讀)          선          화           공           주           님           은 

 이와 같이 훈차와 음차를 동시에 말했던 고대국어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고대에 속하는 온조와 그 이름의 뜻은 백제의 임금이란 음차와 훈차가 동시에 발음했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지극히 주관적인 글이지만 그 틀은 온조가 이름이 아닌 태조와 같은 시호로 봤기에 이런 해석이 나왔다.

by 초령목 2011. 9. 2.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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