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수시가 1달 앞으로 다가오고, 자소서 쓰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 후기를 쓰기가 굉장히 귀찮았다. 

사진도 올리기가 귀찮다.

그래서 간단하게 후기만 쓰고 마치겠다.


한반도 전국토에 발자국을 남기셨던 우리학교 지리선생님이 단 한번도 밟지 못했던 땅, 울릉도. 그리고 독도.

난 운이 좋았던지 2번씩이나 밟을 수 있었다.

게다가 천운이 따라야 들어갈 수 있다는 독도땅을 두번씩이나 밟은 것은 올 한해의 운을 다 썼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나 올해 대학붙어야 하는데. 여기에 쓰면 안되는데.

내 신조는 '유지경성', 하고자 하는 뜻이 있으면 모든지 이루어진다.이다.

그런데 내 인생은 '새옹지마'이다. 인생은 정말로 시소처럼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이 이 인간의 삶이다.

올해도 그렇다. 작년에 골든벨에서 대박터진 후로 나는 쭈우우우우우욱 운이 없었다. 

그래서 '아, 이렇게 계속 운이없으니까 대학 가는 날에는 운수 왕창 터지겠구나.'라며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독도 홍보대사 붙었다네? 독도 우수홍보대사로 레벨업  했네? 1년 50일밖에 못밟는다는 독도 땅 밟았네? 그것도 모자라 길어야 1시간, 그것도 선착장에서 머물 수 있다는 독도를 1시간 30분동안 있다가 산까지 타고 돌아왔네?

인생사 새옹지마. 하필 수시 1달전부터 이렇게 운수가 왕창 터지니 불안하다.

난 망했어. 재수할거야. 이런 재수없는 인생. 아니, 재수 없으면 대학 붙는건가.

아니, 불안하지 않다. 나는 적어도 이 운수가 2달은 지속될거라 믿는다. 그래야만 한다. ㅜㅠㅜㅠㅜ

그러하다.


경악스러운 성비에 놀라, 또 고3이라는 신분때문에 심각하게 캠프에 참여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도 했지만 고3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기위해 결단을 내렸다. 

솔직히 말해서 지방에 사는 대원들보고 '아침 8시 30분까지 포항으로 모이세요'라고 간단하게 공지가 올려져있긴 했는데 처음에는 말이 되는 소리인가? 화낼뻔했다.

일단 나는 대구에 살고 있기때문에 포항까지 빠르면 1시간 이내로 갈 수 있지만, 경북권에 사는 아이들은 정말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부지런히 걸어와야 했다.

수도권에 사는 아이들은 그래도 자정이 다되가는 시간에 미리 모여 같이 버스타고 오는거라 늦을 일 없겠지만 만약 여기서 낙오자가 발생한다면 나는 분명 그것은 영남권 아이가 될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포항에 와보니 서프라이즈. 한명도 빠짐없이 다 왔네. 한명이 지각을 하긴 했는데 알고보니 울릉도 사는 아이.

울릉도 살면서 포항까지 배타고 와서 울릉도로 다시 가야하는 불쌍한... 아이가 아니라 그냥 포항에 있는 고등학교에 유학온 아이란다. 포항에 있으면서 왜 늦었을까.


내 조는 4조였다. 미리 조원들의 블로그를 통해서 대충 어떤 분위기의 아이일까 파악은 해두었지만 실물과 모자이크가 되어있는 블로그 속 사진은 달랐다.

나 이외의 유일한 남자아이는 훤칠하게 생긴게 넌 분명 대성할거라 믿었지만 나머지 여자아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생기가 넘쳐보였다. 어색해서 딱히 그 아이들과 말은 할 수도 말을 걸 수도 없었다. 여자는 참 붙임성이 좋은 포유류라는 것을 느낀 것이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텐데 벌써부터 1년은 함께 지낸 동급생처럼 친해져 있었다. 난 절대 저 속에 들어가서 어울릴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충격적인건 발대식때 영어를 쓰기에 한국어 한마디도 못할 줄 알았던 조장 글로리아 누님께서, 아니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학교 젬마선생님처럼 안녕하이쉐여~라고 발음할 줄 알았는데 완전 플로언트리하게 코리안을 스삐킹 하셨다. 어쩐지 한국말 못하면 조장이 될 수있을리가 없었겠지. 

그나마 동변상련을 느끼던 남자아이는 운좋게 야구를 좋아한다는 공통분모를 찾아 편했다. 마침 TV에서 류현진 메이저리그 선발등판 경기를 보여주고 있었기에 그 어색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게 다행이었다.


 간단히 쓰려고 했는데 벌써부터 글이 길어질 전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바쁜건 매한가지인데 하루종일 자소서 쓴다고 멘탈이 붕괴된 상태라 내가 무슨말을 적는지도 모르겠다. 에라, 쓸 수 있는데 까지 써보자.


 배 안에서 나는 우리조 남자아이(건호)의 옆자리에 앉았다.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3시간. 그 3시간동안 무엇을 하란 말이오.

 우리 옆좌석에는 3조의 남녀가 앉아있었다. 그런데 이미 면식이 있어보이는 지 상당히 친해보였다. 어쩌면 조금 소란스러운 감도 있었지만 차라리  말없이 3시간을 지내는 것보다는 몰래 그 아이들의 대화내용이라도 엿들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말을 트게 된지는 모르겠는데 어느새 그 아이들과 꽤나 친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남들 다 자는데 우리끼리 떠들어 대는게 참 볼만했을거란 생각이 든다.

들어보니 둘다 영남권 아이들이란다. 참고로 건호는 전주아이인데 국사교과서에 나온다는 신흥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란다. 그리고 얘들은 나와 클래스가 다른 것이 난 정말로 평범하디 평범한 어쩌면 평균 이하일지도 모르는 고등학교에서 왔는데 왜 하나같이 명문이고, 사립들인지. 기가 빠질 지경이었다.

3시간은 길었다. 그 중 한 2시간은 그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데 사용한 것 같다. 나머지 1시간은 어디에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울릉도에 도착했다. 밥먹고 한일은 걷기.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물론 다른 것도 했다. 워킹 앤드 워킹.

독도 박물관까지 걷기만 했다. 이것은 마치 마라톤을 방불케 했다. 햇볕을 쨍쨍 모래알... 아니 콘크리트 곱게 포장된 울릉도 길거리는 반짝한 날이었다. 예전에 울릉도에 왔을 때 한번쯤은 걸어봤던 코스. 난 유경험자에 대구 촌놈이라 체력이 남아돌아서 선두그룹에서 걸었다.

어쨌든 걸었다. 딱히 적을 것도 없게 그냥 걸었다.

대충 몇분 기다리고 보니 결국은 다 도착하더라.

독도박물관은 달라진 게 없었다. 여기서는 무슨 독도박물관을 관람하고 느낀점을 적어야 할텐데 귀찮으니 생략하겠다.

안그래도 멘탈이 붕괴된 상태인데

"독도박물관에 갔다와보니 일본에 대항할 수 있는 많은 사료들이 전시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일본이 직접 그린 한국령 독도지도, 그것을 본 순간 나는 가슴이 울컥하기 보다는 오히려 짜증이 났다. 아니 이렇게 많은 증거들이 버젓이 전시되어 있는데, 도대체 일본은 어떻게 저리 뻔뻔하게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증거가 하나씩 둘씩 발견될때마다 한걸음씩 물러서는 그들이 가증스러웠다. 그들이 하는 말에는 모순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화가나는 것은 그런 일본을 등진 채 세계를 향해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우리의 신세가 처량해보였다.'

라고 설명하기엔 나는 너무 피곤하다.


다음에는 무엇을 했을까. 아,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 선을 따라 쭈욱 올라가서, 이번엔 산을 탔다. 아니 산이라 하기엔 조금 민망한 오솔길을 타고 조그마한 정자로 들어가서 포토타임.

여기서도 관람평을 날려주자.

'울릉도의 전경은 아름다웠다. 옛날에 한번 울릉도의 땅을 밟았을 때 나는 이곳을 동해바다의 제주도라 칭한 적이 있었다. 세계적인 관광지 제주도와 비견될 절경이 눈앞에서 펼쳐있었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그래, 옛사람의 말이 떠오른다. 이게 울릉도여, 그림이여? 저 먼 바다에서 거센 파도를 가르며 달려오는 배가 내 눈에 포착되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저기 멋진 절경이 보인다. 그것도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그냥 한걸음 발을 뗄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 찍고 또 찍고, 마구 찍어댔다. 그정도로 울릉도의 풍경은 멋졌다.'


그리고 리조트로 와서 휴식시간.

은 개뿔 바에 짐만 놓고와서 그딴 거 없이 다음 특강을 진행했다.

전에도 한번 와본 적 있는 리조트였는데 울릉도에서 가장 좋은 리조트인가 보다. 그림같은 집들이 널려있었다.

말로만 듣던 언덕위의 하얀집들이.


특강은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반크 단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이소라님의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동영상 한두편을 보았던 것 같다.

 이 내용을 토대로 우리는 PT발표를 해야했다. 

위안부와 독도에 관한 홍보전략, 또는 대응전략을 조원들의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보라는 것이었는데

우선 조 이름부터 정하란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소년이라 말을 아꼈다.

그런데 다른 조와 비교되게 우리 조는 너무 조용했다. 오늘 아침에 보았던 그 파릇한 모습들은 어디가고 모두가 입에 재갈이라도 문듯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다못해 내가 그냥 한마디 툭 던졌는데 그게 조 이름으로 결정될 뻔했다.

에라이 부끄럼쟁이들.

내가 한번 물꼬를 틀자, 그제야 아이들도 조금이나마 말을 뱉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 이름은 'Team 4Tune'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문제는 PT발표인데.

다행이 글로리아 누님께서 우리조를 이끌어가서 몇개의 방안을 건져낼 수 있었다.

나도 그 대화에 끼고 싶었는데, 아니 나보다 어린 아이들이 나보도 경험은 더 많아서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앉아있었다

괜히 주눅들어서 안그래도 소심한 소년, 그냥 투명인간이 되고야 만것이었다.

그런데 그 대화내용을 토대로 PT자료를 만드려니 그것도 문제였다.

애들이 말을 안해.

사실 나한테 아이디어는 많았다.

옛날에 캠프 갔을 때 어떤 조에서 싸이월드형식으로 자료를 꾸미길래 저거 참 기발하구나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페이스북이 인기니까 그런 형식으로 써보자.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냥 말을 삼켰다.

그런데 건호가 얘기해주더라. 아이고 예쁜 녀석. 넌 꼭 대성해라.

왜이렇게 우리조는 소심한 것일까. 모두가 거의 손놓고 있는 듯 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반의 반도 완성하지 못했다. 그런데 10분을 남기고 갑자기 조원들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그걸 완성시키는 모습을 보고, 이 아이들은 참 무서운 아이들이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막상 만들고나니 내용이 생각보다 부실해보였다.

그리고 발표.

끝.

'아직은 어색한 조원들과 협력하다 보니 멀기만 했던 거리감이 조금이나마 좁아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하나의 결과를 만들고 나니 뿌듯하긴 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적극적이었다면 분명 우리가 1등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급조하다 보니 부실했다. 그릇도, 그안에 담긴 내용물도 너무 부실했다. 물론 그날 가장 참여율이 저조했던 내가 할말은 아니었지만 아쉬운 마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슨 꿈씨앗 적는 시간이 있었는데 여기서 난 상처를 받았어. 반크 누님에게 무시당했어. 흐허어라미아ㅓㅎ

무안하고 뻘쭘했다. 저주까진 아니더라도 원망할테다. 

근데 다음날 싹 잊음. 나중에 사과를 하시길래 심술을 부렸는데 갑자기 미안해져서 별거 아니었다고 나도 사과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거 쓸 시간에 자소서 한줄이나 더 볼걸. 퇴고는 중요하니까. 그런데 벌써 1시간이 지났다. 젠장.


다음날.

독도갔다.

자 지금부터 계산을 해본다.

독도사관학교 7만명

그 중 발대식 참여자 280명

그중 우수 활동자 45명인데 그중 고등학생 29


7만명 중에 280명 중에 29명에서


1년 365일 중 독도에 갈 수 있는 날이 50일. 그중 독도까지 가는 배가 운항하는 시기를 반타작 해서 대충 25일.

그리고 독도땅을 밟고만 나오는 경우가 다인데 서도 봉우리까지 다 오를 확률

길어봤자 1시간을 정박할 수 있는 독도에서 1시간 30분을 정박할 수 있는 확률.


정리해서 7만명 중에 280명 중에 29명이 365일 중 독도에 갈 수 있는 날 50일 중 배가 출항하는 25일 중에서 운좋게 서도 봉우리까지 다 올라 독도경비대장과 사진을 찍고 1시간 30분동안 포토타임하면소 놀 수 있는 확률은?[10점]


한마디로 나는 운이 좋았다.

독도, 한 두번쯤 와보니까 우리집 안방처럼 지낼 수 있을 정도였다.

아, 참고로 우리집 안방은 덥고 불편함.


'독도대교.

 나는 독도와 상관없는 아이일거라 생각했다. 독도의 파도는 항상 거칠다. 독도가 사람을 허락하는 시간은 고작 50일. 어쩌면 그 독도의 폐쇄성이 나를 독도에서 멀어지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TV에서 나는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진으로 독도라는 아름다운 섬 하나를 보았다. 들리는 말로, 독도는 천연의 모습을 간직한 천해의 섬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독도를 내가 갈 수 없는 이상의 섬, 유토피아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독도의 땅을 밟았다. 독도와 상관없을 줄 알았던 이 아이가 염치없게 독도의 모래향를 맡아낸 것이었다. 독도는 작은 섬이었다. 내 의식속에서 무시당하던 그저 유토피아로 생각했던 그 섬은 거센 파도를 견뎌내던 조그마한 섬이었다. 그리고 살벌했다. 독도의 바닷바람에 털끝하나 움직이지 않는 경비대원들이 마네킹처럼 서있었다. 햇빛을 받으며 파도에 찰랑이던 독도는 생각보다 작았다. 

 내가 관광을 하러 온 것일까? 분명 그 순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기억을 되씹어보자. 나는 독도관광이라는 빛에 묻혀 언제쳐들어올지 모르는 적을 대비하던 그들의 이면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국민적 무관심으로 방치된 독도를 미처 발견해내지 못했다. 독도경비대장과 사진을 찍었다. 사진 한장 찍어달라는 우리의 간곡한 요청에 잠깐 당황한 모습을 하던 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서도를 한바퀴 돌다보니 이름조차 기억이 안나는 작은 등대를 만났다. 그곳에 올라 사진을 그저 아이마냥 좋아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그런데 경비대는 우리에게 간곡히 요청해왔다. 그것은 공개되서는 안되는 곳이니 사진을 삭제해달라. 내 독도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지워달랬다.

 왜? 아직 독도는 전쟁중이었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도 일본이라는 거대한 적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왜 독도에서는 그것을 몰랐을까? 그것을 왜 독도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지금이라도 나는 그들에게 머리숙여 인사한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독도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독도. 홀로 독(獨)에 섬 도(島). 외로운 섬 독도. 그 이름 그대로 독도는 항상 홀로 적들과 맞서싸워왔다. 하지만 우리는 몰랐다. 독도가 수백만년을 거친 파도에 저항해 왔다는 사실도, 일본과 한국이 독도의 두 팔을 붙잡아 서로의 진영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애쓸동안 사지가 끊히는 고통으로 신음해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몰랐다. 우리는 그저 편안한 육지에 턱을 괴고 앉아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실천없는 말뿐으로 독도를 응원하고 있었다.

 독도와 울릉도, 울릉도와 한반도는 끊어져있다. 하지만 다리를 놓자. 울릉도에서 독도로 이어진 우리들의 다리를 놓자. 그 이름 독도대교. 우리의 관심으로 쌓아올린 다리를 놓자. 그 다리를 건너 오늘도 묵묵히 독도를 수비하고 있을 우리의 영웅들에게 꽃다발이라도 전해주자. 외로운 우리의 막내 섬, 독도에게 잘 지내냐고 안부인사라도 전해져보자. 그렇게 독도대교를 쌓아보자.'


와서

연극했다.

우리가 미래에 바라는 꿈을 이루었다고 가정하고 독도와 위안부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해볼지 생각을 해보란다.

오늘은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 볼테다.

오늘따라 조원들도 유난히 참여율이 높았다.

그래 우리 한편의 드라마는 못쓰더라도 적어도 삼류연극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 아니겠는가.

PT는 못하면 그냥 졸작이라 치면 되지만 연극은 못하면 평생의 혹역사가 된다.

내 오그러지는 손발을 펴기 위해서라도 나는 열심히 참여했다.

우리조의 멤버는 화려했다.

주한 외교대사, 백수 큐레이터(그건 바로 나), 국제 판사, 대기업 CEO, 역사학자, 외교관, 검사 겸 대통령 비서 겸 해설자, 그리고 대통령...!!!

내 기억으로 독도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의 해결책은 이것이었다.

우연히 지도조각 발견해서 국제 제판에서 일본에게 승소함.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국 드라마를 써냈다.

한편의 막장 드라마.


롤링페이어 돌리고 끝났다.

사실 난 아직 이름도 못 외웠는데 사실 지금 이 글을 쓰고있는 시간에도 난 너희들 이름 다 못외웠어. 미안하다.

그때는 아직 어색해서 네들 성향을 파악하지도 못해서 좋은 말 쓰지 못해서 미안.


그렇게 둘째날의 밤도 저물었다.

아 사실 독도 감상문 쓸 때, '독도대교' 이거 쓰고 싶었는데 정리가 안되서 포기함.


마지막 밤이라 치킨이라도 시켜먹으려 했더니 그게 안되서 과자 한 1만원치 사서 건호랑 함께 밤을 지새웠다.

내가 몇번이고 말하지만 넌 대성할거야.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에헤야디야.

드디어 후기도 끝이 보이는구나.

근데 마지막 날은 적을게 없음.

배타고 관광함.


그렇게 울릉도에서의 2박 3일은 끝이났다. 끝나는게 못내 아쉬워 번호교환을 한 친구들도 있었다. 아마 카톡게임의 초대장이 날아오겠지. 난 참 운이 좋은 아이다. 제주도도 평생에 1번밖에 가보지 못했는데 남들 못가본 울릉도 독도의 땅은 2번씩이나 밟아보았다. 난 참 운이 좋은 아이다. 그래서 이 운이 수능때 까지 이어질것이라 믿는다. 우리의 동쪽 끝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독도의 기운을 받아 난 아마 대성할 거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간 울릉도여, 영원하라





by 초령목 2013. 8. 18. 02:39
by 초령목 2013. 8. 11. 20:14

5월 30일

1년 전, 같은 대회에서 우수상 타고 KBS출연한것에 힘입어 이번에도 용돈이나 벌러 나오자는 생각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1번문제에서 탈락.


1번 문제가 OX문제였는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계속 상해에 있었다.'


사실 나는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임시정부의 마지막 거점이 '춘칭'이라는 것정도는 상식이었거든요


그런데 내 주위의 답들은 보니 전부 O.


물론 역사에 대해서는 나 자신을 믿었어야했는데 군중심리에 휩쓸려 탈락.


EBS 다큐프라임 중 인간의 심리편에서 남들이 전부 잘못된 답을 말하면 자신도 거기에 휩쓸리는게 인간의 심리라고 했는데


내가 그런 사람일줄이야.


패자 부활전에서 부활했는데 또 떨어졌습니다.


이건 의외의 문제라 뭐라 변명할 여지는 없었지만


그런데 다른문제들은 다 쉽더라.


아쉽다.

by 초령목 2013. 7. 2. 13:00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683473&ref=A


<앵커 멘트>

얼마 전이 6.25였는데요, 성인의 3분의 1이상,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6.25가 몇 년도에 일어났는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삼일 운동을 삼점일 운동이라고 읽는 학생들도 있다고 하는데요,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을까요? 

어른들의 책임은 없는지도 짚어보죠, 노태영 기자와 함께 합니다. 

어떻게 보세요? 

<기자 멘트>

현재 고등학교 3학년 학생 대부분은 학교에서 한국사를 배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로 수능시험에서 한국사를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학업 부담을 줄여준다며 지난 2005년부터 한국사를 수능에서 필수가 아닌 선택과목으로 바꿨기 때문입니다.

이러다보니 수업이 소홀해지고 수업이 소홀해지니 재미를 느끼는 학생들도 점차 줄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때문에 역사에 대한 기초 상식조차 사라졌다는 비판이 강하게 일고 있는데요, 그 실태를 알아봤습니다. 

<리포트> 

<녹취> “대한민국 국보 1호가 뭔지 아세요?”

젊은이들의 역사 지식을 알기 위해 기초적인 질문을 해봤습니다.

<녹취> “숭례문” 

<녹취> “숭례문 맞아? 동대문” 

<녹취> “나는 그냥 찍었어.”

<녹취> “똑같은 거 아닌가?” 

<녹취>“조선은 누가 건국을 했는지 아시나요?”

조선 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를 모르는 학생도 많습니다. 

<녹취> “갑자기 물어봐서 당황해서 기억이 안나요.”

올해로 정전 60주년을 맞는 6.25 전쟁. 

지금도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살고 있지만,

<녹취> “한국 전쟁이 몇 년도에 발발했는지 아세요?” 

<녹취> “1951년으로 알고 있는데요.”

제국주의 침략 야욕의 상징인 일본의 욱일승천기, 그에 짓밝혔던 처참한 역사도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녹취> “무슨 생각이 드세요?” 

<녹취> “이거 뭐지? 그냥 예쁜데요. 이 가방 파는 거예요?” 

<녹취> “세 분 중 한 분의 손입니다. 누구 손인지 아세요?” 

<녹취> “알아요. 안중근 의사.” 

<녹취> “그렇다면 안중근 의사가 뭘 했는지 아세요?” 

<녹취> “도시락 (폭탄)?”

이처럼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젊은이들의 역사 의식.

실제 한 고등학교를 찾아 역사의식에 대한 검증을 실시해봤는데요. 

<녹취> “도전, 역사”

<녹취> “골든 벨~” 

<녹취> "우리나라는 언제 광복했을까요?"

우리 현대사의 아주 중요한 사건이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학생들이 눈에 띕니다.

<녹취> “모르겠어요. 몰라서 바로 못 적었네요.”

모른다기보다 생각이 나지 않은 학생들.

1947년, 1948년 등의 오답들이 속출합니다. 

<녹취> “뭔가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잘 모르겠어요.” 

<녹취> “신라시대 장군으로 사자인형을 만들어 우산국을 점령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난이도를 조금 높여 신라장군 이사부를 묻는 질문에는 계백 장군과 강감찬 장군 등 오답자가 속출 합니다. 

<녹취> “이사부입니다.”

이런 현실, 전적으로 학생들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역사 교육의 현실, 무엇이 문제인지 또 다른 고등학교를 찾아가봤는데요.

수업 중인 과목은 한국사입니다. 진지하게 수업을 받고 있지만 이런 시간도 일주일에 고작 2-3번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저학년때 한 학기 만에, 길어야 1년에 몰아서 가르칩니다.

2011년부터 시행해온 집중 이수제 때문인데요.

게다가 내년부터는 모든 대학 입시에서 한국사 필수가 사라지기까지 합니다.

현재도 한국사는 수능 필수 과목에서 제외된 상태.

선택과목에서 한국사를 선택한 학생은 몇 명이나 되는 지 알아봤습니다.

한 학급 총 38명의 학생들에게 실제 수능 때 어떤 과목을 선택할지 두 과목만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사회탐구 과목은 한국지리, 한국사,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등 모두 10개 과목인데요.

조사 결과를 보면 윤리와 사상이나 생활과 윤리를 선택한 학생들이 가장 많은 반면 한국사는 단 5%에 불과했습니다. 

<인터뷰> 방예림(서울 예일여고 2학년) : “어려워요. 힘들고요. 범위가 너무 많아서 이해가 안 가요.” 

<인터뷰> 손지원(서울 예일여고 2학년) : “우선 고등학생들은 대학 가는 것이 중요하니까 필수 과목이라고 하면 무척 열심히 공부할 것 같아요.” 

<인터뷰> 윤경수(서울 예일여고 한국사 교사) : “자국의 역사를 선택 과목으로 만들었던 적은 1930년대 이후(일제강점기 이후)에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각 학교에서는 학교 밖 역사 공부를 통해 이를 보완하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순국선열들의 아픈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역사 현장,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인데요.

현장 답사를 통해 교과서 안에만 있던 역사의 사실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길보경(서울 예일여고 3학년) : “생각보다 너무 잔인해서 놀랐고 과거에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이렇게 심한 고문을 당했다는 것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실제 눈으로 보고 느끼면서 관심과 애정도 강해져 학생들이 역사를 통해 갖게 되는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하는데요.

현장 체험은 심각해져가는 역사의식의 부재를 막을 좋은 교육 방법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다솜(서울 예일여고 2학년) : “교과서에서만 보다가 박물관에 와 보니까 좀 더 슬픈 감정이 느껴지고 여기 와서 좀 더 애국심이 생긴 것 같아요.”

대구의 한 학교 학생들은 올바른 역사 알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을 높이는 것이라며 거리에서 책자를 나눠주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현장 답사를 통해 알게된 지식들을 책으로 펴내고 이를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겁니다. 

<녹취> "대구 와룡고 역사논술동아리에서 학생들이 직접 쓰고 편집한 조선족에 관한 책이거든요. 관심 갖고 봐주세요."

<인터뷰> 류길상(대구광역시 달성군) : “알 거 알아 가는데 기특하기보다는 당연하죠. 못하는 학생들이 더 이상하죠.”

<인터뷰> 박수진(대구 와룡고 1학년) : “요즘에 사람들이 역사에 대해서 관심 많은 사람들도 있지만 아예 관심이 없고 잘 모르는 경향이 드러나기도 하잖아요. 여러 사람한테 우리나라 역사를 가르쳐 준다는 것이 정말 보람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인터뷰> 권내현(고려대학교 역사교육학과 교수) : “경제 성장과 더불어서 역사에 대한 이해가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이것이 우리 사회를 바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방향이 될 수 있겠는데요. 역사 교육이나 사회적인 관심도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

다른 어떤 나라보다 아픈 역사를 품고 사는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말인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나왔습니다.


역동 별명 생겼네..


역인부. 


역사인식부족부

by 초령목 2013. 7. 2. 12:56



나참 살다보니 이런일도 다 있군요


7만명 중 280명만이 독도홍보대사 발대식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고

280명중에 100명만이 독도홍보대사로 합격했고

그 100명중에서 고등학생 20여명만이 독도에 가게됬는데


그게 나에요


그런데 독도를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게 됩니다.


내가 고3이라는 것때문에


by 초령목 2013. 6. 9. 23:47



수업이 한창일 때 문자메시지가 오더군요


합격.


올!


미션보고 난 글렀구나 하며 포기하고 있었는데...


여러분

하면 됩니다.


by 초령목 2013. 5. 30. 00:21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 3기> 한국 홍보미션







아 힘들다.


by 초령목 2013. 5. 14. 01:52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 3기> 한국 홍보 미션.


지난, 5월 8일 영어 담당이신 2학년때 담임선생님께 부탁하여 우리학교 원어민 선생님, Jemma와의 인터뷰를 계획했다. 보통사람에게도 잘 말을 못거는 내가 영어도 못하면서 원어민과 대화를 나누는게 가능할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본래 내성적인 나로부터 탈피하고자 망설이고 주저하기전에 일단 지르고 보았다.


 "선생님! Jemma와의 인터뷰 좀 주선해 주십시오. 덤으로 통역도!"


 통역까지 부탁했는데 퇴짜맞을 뻔해서 당장 한수를 무르고 어찌됐든 Jemma와의 인터뷰를 성취할 수 있었다.


사실 인터뷰를 어떻게 진행시켜야 하는가 고민을 많이했다. 아무리 독도홍보대사라는 닉네임을 달고있다지만 그렇다고 얼굴 맞대고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소리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래서 최대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중간고사 후 개점휴업 상태였던 내 두뇌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Jemma와의 인터뷰 당일 새벽 4시,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내가 영어를 못하는데 어떻게 인터뷰를 진행 시킬 수 있냐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는 영어를 잘 못하지만 남이 하는 영어를 알아들을 수는 있는 수준이라는 것.




▲ 최대한 태연한 척 연기하며 Jemma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나. 그런데 생각보다 떨리지는 않았다.


너도 긴장되고 나도 긴장되고. 하지만 인터뷰를 주도한 것은 나였기에 내게 인터뷰를 첫운을 떼야만 했다. 


Jemma

이승희 선생님

 

Hi, Jemma? 

Long time no see.(지금부터 한글진행)

오, 안녕. 나 지금 굉장히 긴장하고 있어.

저도 긴장되요. 혹시 저를 아세요?

음... 나 너 알것같아.

글쎄요. 저를 안다고요? 작년에 내가 너의 수업을 받았긴 받았는데, 내 생각에 Jemma는 저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요.


역시 Jemma는 나를 기억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우리 선생님께서 간단하게 나를 소개해주셨다.


Jemma, 그래도 너는 아마 쟤의 별명은 알걸?

별명?

유명한 골프선수를 닮았잖아.

아!

설마.


Tiger Woods!

골퍼 타이거 우즈 이미지

(애초에 계획했던 나의 인사말. Hi! Jemma. Long time no see. I'm Gyeong Hee Lee. Do you remember me? Last year, I took your English lessons interestingly, but i'm sure that you can't remember me. Because I'm shy boy, so I was very very calm and silent at that time.)

여기서 선생님께서 타이거우즈를 언급할 줄이야! 게다가 Jemma까지 그걸 또 이해한다는 듯이 알아들을 줄이야!

얼핏 예전에 누군가가 Jemma선생님에게 나를 설명하기 위해 "쟤는 타이거우즈에요."라고 한 기억은 있는 것 같은데...


어찌됐든 그렇게 나를 희생하면서 인터뷰는 화기해해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될 수 있었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나는 Jemma에게 작은 부탁을 해보았고, 선생님께서는 흔퀘히 들어주셨다.

 "Excuse me, Could you do me a favor? 

Please speak slowly and use easy word. 

I can't speak English very fluently, and even now, I just communicate with you as using my six sense.(이때 고맙게도 Jemma는 "너 영어 괜찮은데?"라고 하셨다.) 

Ah, I'm worried about grammatical errors in my words, please understand and show your broad generosity"



Jemma

이승희 선생님

 Ok, Let's Go.

솔직히 말해서 나는 Jemma의 이름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다. 너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줄 수 있어요?

음... 영국에서 왔고, 한국에 온지 2년이 됬어요. 하지만 한국어는 여전히 전혀 할줄 몰라요.(정말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러고보니 한번도 Jemma가 한국어를 하는 것을 본적이 없는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국어 몇마디를 좀 해주실 수 있나요?

Oh, my god. Umm. 안녕하쎄요. 선쌩님입늬다. 영궄에써 왔쒀이요.

(이때 이승희 선생님과 나는 웃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하. 생각보다 잘하시네요. 한국생활은 만족하죠?

물론이지.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일단은 살짝 간을 보았다. 다행이 내 저질영어를 다 알아들은 듯. 나는 내 영어가 통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기 마음먹었다.



▲ 아, 나 정말 못생겼구나. 내 말하는 스타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제스처까지 섞어가면서 인터뷰에 임했던 것 같다.


Jemma

이승희 선생님

 I'm a VANK. 

아마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너에게 꽤나 문화적으로 낯설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거야. 나는 이제 한국의 참혹한 역사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하거든.

OK.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있어요?

아주 조금. 예를들면 음... King Sejomg, Joseon Dynasty...

그러면 한국이 왜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일본만 만나면 강해주는 줄 아세요?

그건 조금 알아. 옛날에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는 것?

독일과 일본은 전범국이었다. 독일이 나치를 앞세워 유럽에 상처를 입힌것 처럼 일본은 아시아에게 상처를 입혔다. 한국은 일본에게 처참하게 무너졌고 40년동안 지배를 받아야 했다.

음...


혹시 왜 한국에서는 입학식이 3월 2일인지 아세요?

음... 글쎄.

아니면 왜 한국의 달력에서 3.1이 빨간색으로 색칠되어있는지 알고있으세요?

음.. 그것도 잘 모르겠어.


3.1은 한국이 일본의 지배에 대항하여 대규모 시위를 벌인 날이었다. 일본은 식민지인 한국에 만행을 저질렀고, 우리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예를 들어 마루타라고 불리던 생체 실험, 위안부라 부리는 성노리개 같은.


 그리고 독일은 2차 대전 중 모든 죄를 사죄했던 것으로 알고있다. 

하지만 일본은 사과를 하지 않고있다. 오늘날에는 반일 감정이 조금 사그라드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일본만 만나면 없던 힘이 생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일본은 아직까지도 한국에게 사과를 하지 않고, 오히려 한국의 섬, 독도를, 아 독도를 아세요?

그건 당연히 알지.

OK, 우리는 독도라고 불러요. 리앙쿠르식 암도, 다케시마도 아니라 독도라고. 오히려 한국의 독도를 강탈하려고 하니 우리가 친해질래야 친해질수도, 좋아할래야 좋아할수도 없게되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건대, 진행이 너무 무뎠던 것 같다. Jemma는 고맙게도 꽤나 성실히 답변해준 것 같은데 오히려 Jemma의 답변에 나는 그리 반응하지 않고 내것만 생각한 것 같다. 아...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었어. 그래도 그것에 화를 내지 않고 묵묵히 내말을 들어주었던 Jemma에게 고마워해야겠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사실 우리의 인터뷰시간은 총 20분으로 주어져 있었고, 내가 인터뷰 대본을 제작하는데는 5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그동안 20분은 충분히 채울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치도 못하게... 분량이 부족했다. 내 할말은 다 끝났는데 무려 10분이라는 시간이 남았던 것이다.

다행이 내 사정을 알고 이승희 선생님께서 즉석에서 Jemma에게 질문을 해주었다.


Jemma

이승희 선생님

영국에서도 세계2차대전에 대해서 배워요?

물론. 고등학교 과정에서 세계 2차대전에 대해서 배우고 있어.

그럼 영국에서는 독일에 대해서 악감정을 가지고 있어?

음... 딱히 우리는 독일에 대해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우리는 독일의 사과를 받아들었거든. 물론 축구경기에서 독일과 만나면 죽기 살기로 열심히 응원하겠지.


혹시 일본인을 만나면 우리편을 들어줄 생각이 있어?

(이때 나를 포함해서 Jemma까지 웃었다. 너무 노골적인 질문인 것 같았지만 그래도 궁금하긴 하다.)

하하하. 음... 글쎄 그건 나는 확신할 수 없어. 물론 일본인을 만나면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주장해줄 수는 있지만 만약 그들이 "그건 아니야!"라고 해버린다면 나는 더이상 한국의 편을 들어줄 수 없어. 일단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 객관적인 영국인이니까. 그래도 너희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뭐 대충 이런식으로 우리의 인터뷰는 모두 끝났던 것 같다.

인터뷰가 끝나기 전 나는 Jemma에게 감사의 인사로 선물을 주었다.

독도관련 사진집 : 오 예쁘다.

반크 지도(사실 농담을 던졌는데, 영어가 부족해서 잘 끝맺지 못했다. 

"반크의 닉네임은 지도 공장이야, 그래서 많은 지도를... [여기서 영어부족으로 재빨리 넘김])  : 오, 이건 우리집 벽에대 걸어놓을게.

그리고 한국 민속화가 그려진 접이식 부채. : 이거 정말로 필요했던거야! 왜냐하면 여름이 곧 다가오거든! 고마워.

물론 고생하시고 고마운 우리 이승희 선생님에게도 한국의 지도와 부채를 선물로 주었다.



마지막으로 찰칵! 그나저나 나 키가 작긴 정말로 작구나. Jemma와 거의 비슷하네.



이렇게 Jemma와의 인터뷰를 모두 끝마쳤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내가 영어를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준비를 해왔더라면!

이번에 나는 직접적으로 독도에 대해서는 광고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제3자의 입장에서 내가 독도를 강요하면 하면 오히려 거부반응을 일으킬 것같았다.

그래서 나는 조금 우회적인 방법으로 일본이 남긴 한국의 참혹한 역사에 대해서 설명해 주기로 했던것이다.


친구의 관전평으로는. 생각보다 나 잘한단다. 고마워라.

by 초령목 2013. 5. 13. 00:43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 3기> 오류 제보 및 시정 미션


1년전부터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나는 페이스북을 잘 하지는 않지만 세계 10억 인구가 사용한다는 페이스북 지도에서 동해를 "Sea of Japan"으로 그리고 독도를 "Liancourt Rocks"라는 이름으로 버젓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인들중에 동북아시아의 조그마한 바다와 정말 먼지만한 섬을 볼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느냐만은 적어도 한국인으로서 섭섭한 감은 없지 않아 있었다.


내 분을 겨우 참고있던 중 나는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로 임명되었다. 이왕 홍보대사가 된거 이런 오류를 시정해주어야하지 않겠는가?





일단 21세기 이순신 오류시정 프로젝트 사이트(http://korea.prkorea.com)에 가서 오류제보부터 해보았다.

제보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두근한데 내가 서한 메일은 보낼 수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어차피 저쪽은 내 얼굴을 모를터. 오늘같이 익명성이라는 놈한테 고마움을 느낀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없던 자신감이 생기면서 결국은 질렀다.




Hey, bing Maps!

사이트까지는 잘 찾아갔는데 도대체 항의 메일을 어디로 보내야하는건지 한창 헤멨다.




영어와 담을 쌓은 네놈이 외국계 대기업을 상대로 어떻게 항의를 했느냐?


반크 단장님이 가르쳐주신 비장의 기술

컨트롤 씨 컨트롤 브이로 쉽게 해결.


그리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항의 서한을 보냈다.

우어.


좋은 답변이 오기를 기대해보겠다.


by 초령목 2013. 5. 7. 00:08

1. 지원 동기를 적어주세요.

저에게 독도란 친숙하면서도 무관심했던 곳이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역사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일본이 독도를 강탈한다는 '말'만 들었을 뿐, 제가 발을 닿지 않은 곳이라, 또 입시라는 현실에 갇힌 신세에 이미 국가적인 문제로 번져버린 독도에 관심을 가지기엔 너무 이른 감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딱히 신경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무관심한 저의 인식을 변화시킨 한가지 계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저는 9년동안 '한국의 역사'를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때, 저에게 역사란 단지 그 어떤것보다도 특별히 재밌는 것에 지날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역사의 참된 매력에 빠지게되어 중학생이 된 저는 남에게 제 역사지식을 알려주고 싶은 욕심에 지식답변, 블로그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된 오늘의 모습을 보니 저는 더 욕심을 먹었나봅니다. 이제는 온라인 활동으로 한정되어있던 저의 역사활동을 오프라인의 세상으로 넓혀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을 먹고, 저는 고등학생이 되자 역사관련대회라면 모조리 참여하기로, 또 역사동아리에 가입하여 활발하게 활동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실을 맺어, 1학년때는 동아리 부장을 역임하는가 하면, 여러 대회에 나가 값진 경험을 얻어오기도 했고, 2학년때는 동아리 차장에 역임하고, 대회에 '입상'을 하고 'KBS도전 골든벨 역사통일편'에 출연하는 결과를 낳아내기도 했습니다. 저의 이런 식을줄 모르는 열정이 선생님의 눈에 띄였던지 저는 운좋게 대구경북지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독도사랑 문화대탐방'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2박3일동안 울릉도와 독도를 방문할 기회를 가질수 있었습니다.

뉴스에서만 듣던 울릉도의 땅을 직접 밟아보고, 사진으로만 보던 울릉도의 경치를 눈으로 보았습니다. 2박3일의 추억은 아마 제 일생중에서도 손에 꼽는 날이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울릉도에서의 2박 3일에서 가장 가치있었던 일을 꼽으라면 저는 독도에 대한 제 입장을 바꿔준 백일장대회 대회라고 꼽고 싶습니다. 독도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지만 일본이 독도를 건드릴때마다 '강경하게 대하자'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항상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정부에는 도저히 동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백일장대회를 준비하면서 저는 독도에 대해 좀더 정리를 할 수 있었고, 무조건 밀어붙이자는 '강경파'와 무조건 무시하자는 '무관심파'사이의 '온건파'의 입장에서 새로운 대책을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온건파에서는 독도를 지키기 위해 '한국의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대책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2박 3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한다면역시 인터넷으로만 보던 독도의 땅을 직접 땅으로 밟았다는 것입니다. 독도수비대를 직접 만나보기도 했으며 전세계에 우리 독도를 알리기 위해 독도사랑 플래시몹을 직접 실행해보기도 했습니다. 비록 30분만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는 오고싶어도 아무나 오지 못하는 이 독도의 땅을 밟았다는 자부심에 저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제가 독도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된 구체적인 이유는 독도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독도의 소중함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더 잘 느낄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독도를 갔다온 후 느낀 이 감정을 깨달음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했습니다. 독도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을 재고할 수 있도록, 제2회 창의체험 페스티벌 참여하여 동아시아 역사갈등으로 골머리를 앓고있는 간도와 함께 독도를 광고하기도 했으며, 학교 책자를 발행하여 독도에 대한 글을 직접 써냄으로써 학생들에게 독도인식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이미 독도에 대해서 깨달은 사람은 사람입니다. 독도를 직접 느끼고, 독도를 보고, 독도의 냄새를 맡아보고, 독도의 바다의 맛을 보고, 독도의 소리를 들어본 사람입니다. 저는 또 독도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독도의 참맛을 '오프라인'에서 알려준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의 욕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의 흥미, 중학교의 온라인 활동, 고등학교의 오프라인 활동을 넘어 고3이 된 지금, 제 욕망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글로벌 독도홍보대사에 선정되어 그런 제 고3, 학창시절의 마지막 욕망의 끝을 실현시키고 싶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글로벌 독도홍보대사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2. 왜 독도와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려야 할까요?

독도를 세계에 알려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간답합니다. “독도는 우리땅”이라서.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독도를 우리말 “독도(Dokdo)”보다는 ‘다케시마 또는 리앙쿠르 암초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당장 전세계 10억인구가 사용하는 페이스북에서 제공하는 지도를 봐도 ’리앙쿠르 암초‘라고 표기되어있을 정도입니다. 신라시대 512년부터 고려, 조선을 넘어 대한민국까지 1500년의 세월을 견뎌내며 우리말 ’우산국, 죽도, 독도‘로 친근하게 불리던 우리의 섬 독도가 열강의 침입을 받은 고작 50년동안 낯선 이방인에게 ’다케시마, 리앙쿠르 암초‘라는 이름으로 강제개명을 당해버렸습니다.

지금 일제시대를 거친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직까지도 강제로 창씨개명을 당해 얻은 그 일본식 이름을 치욕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식사중에 철없는 아이가 멋도 모르고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미키 상!’이라고 부르면 당장이라도 주위 어른들이 밥상을 엎어버릴정도로 말입니다. 그런데 독도는 우리가 광복을 한 1945년 이후,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개명당한 이름으로 전세계에서 불리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독도는 우리땅입니다. 독도의 친척인 우리라도 나서서 밥상을 엎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 북한입니다. 독도는 분명 한국땅입니다. 북한도 헌법상 분명 한반도 내의 우리영토입니다. 하지만 세계인들은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북한에 대한 전세계의 인식은 어떱니까? 북한은 국제사회의 인식과 호감도 등을 측정해 순위를 산출하는 국가 브랜드 지수에서 2008년 기준으로 130위를 차지했습니다. 즉 세계인들이 보는 북한은 비호감, 그리 달갑지 않은 국가라는 것이지요. 핵개발, 3대 세습, 기아, 6.25 등 전세계에 퍼지는 북한과 관련된 기사 대부분이 국제적인 비난을 달고있습니다.

얼마전 저는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재밌는 자료를 볼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들은 한국과 북한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우리학교 선생님 중에서는 이런 경험을 가진 분이 계십니다. 여러 지인분들과 함께 유럽여행을 갔는데 프랑스 공황에서 다른 일행은 다 보내주는데 자기만 보내주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무슨일인가 싶어 공황직원을 봤는데, 그걸 째려보는 것으로 이해했던지 그 공황직원도 같이 째려봤답니다. 그렇게 10분동안 서로 눈싸움만 한 채 시간은 흘렀고, 선생님이 너무 오랫동안 붙잡혀 있다는 생각에 가이드분이 나서서 공황 직원에게 '왜 저분을 잡고 있느냐?'라고 물었더니 그 공황직원의 대답에 웃어버렸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길래 북한사람인줄 알았는데, 북한사람이 관광을 나온다는게 신기해서."

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의 위상과 달리 전세계사람들은 북한과 남한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우리가 단지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광고 한다면 전세계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전쟁, 독재’가 키워드인 북한과 혼동되는 한국, 외교적으로는 선진국과 여러 교류를 통해 친분을 쌓은 일본. 우리는 우리의 땅 독도뿐만이 아니라 'South Korea', 즉 남한이라는 말도 함께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남북이 통일이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지만 남북을 구별하지 못하는 외국인때문이라도 우리는 ‘South Korea'와 ’Dokdo'라는 이름을 함께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3. 독도, 동해 및 대한민국을 세계인에게 알리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적어보세요.

앞서 말했듯이 저는 독도 사랑 문화대탐방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얻고 깨달은 것이 많다고 언급했습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추억이 백일장대회였다는 것도 함께 말입니다. 독도 사랑 문화대탐방 중 독도문제 해결방안에 대한 백일장대회에서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제 귀에 들리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참신한 아이디어가 백일장에서 상을 탈 수 있었습니다.

백일장의 주제는 이것이었습니다. “독도문제, 한일간 어떻게 풀 것인가?” 저는 당연히 강경책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 정부가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글을 적었습니다. 다만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를 적는 서론을 적는데 너무 심취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제 주장을 별로 적지도 못한 것은 옥의 티였을까... 하지만 알고 보니 저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강경하게 대처하여야한다” 또는 “일본의 장난에 놀아나지 말고 지금처럼 무시한다”라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지금에야 생각해보면 저를 포함한 사람들의 생각이 식상한 감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좀 더 참신한 방안을 원하고 실시한 백일장이었을텐데 강경책이나 온순책은 이미 많은 언론이나 대중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었으니깐 말입니다.

그 수많은 흑백사진들 사이에서 눈에 띈 컬러사진은 바로 한류열풍이었습니다. 동방신기, 소녀시대, 카라, 배용준, 장근석…… 수많은 K-pop스타들과 한류 연예인들이 일본으로 진출하고 있고, 그곳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례는 많습니다. 또 한국 팬덤들 몹지 않는 인기를 거머쥐고 있습니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본 한류 팬 83%는 독도문제로 한일간의 사이가 멀어짐에도 불구하고 한류는 좋다고 답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독도문제에 바로 이 한류를 쓰면 어떨까요? 물론 그들이 직접적으로 일본 팬들앞에서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소리친다면 오히려 반발심만 커질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한류열풍이 꺼지며 외교적 문제로 번질수 있는 문제가 발생할수도 있겠지요. 이때 우리나라 한류스타들이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여 일본 팬들에게 알게 모르게 다케시마 대신 독도를 마음속에 새겨주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차차 생각해봅시다. 일본에 나가 국위선양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 한류스타들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낭비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다른 칼라사진은 바로 음식이었습니다. 독도의 특산물을 이용하여 우리의 한식에 대입하는 것입니다. 음식이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것입니다. 바로 그 음식에 독도라는 향미료를 첨가하는 것이지요. 독도의 특산물이라고 하면 오징어,꼴뚜기, 대구, 명태, 거북이, 연어알, 물새알… 바로 이것들로 우리의 김치라던가 여러 음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독도라는 이름을 가진 음식을 먹음으로서 독도가 좀더 친숙하게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더 나아가서는 한식의 세계화에 같이 묻어가서 외국인들에게도 한식과 함께 독도를 알릴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외국인이 우리의 한식을 먹으며 “Wow, Korean dishes taste so good. What are the ingredients of this food?(와 한국음식 정말 맛있네요. 이 음식 재료가 무엇이죠?)”라고 물으면 “Dokdo.”라고 자랑스럽게 답을 할수 있을까요? 억지스럽지만 재밌는 상상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방법은 따로 있습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방법은 국민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이 하나, 둘씩 모여 열이 되고, 백이 되고, 천이 된다면 그 힘이 전세계에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는 증거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일겁니다. 심지어 이 글을 저조차도 사실 독도가 우리땅인 근거를 대라고 한다면 대답을 잘 해낼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전세계적으로 공통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국민들의 가장 큰 문제는 한번 이슈가 되면 반짝하고 금세 꺼지는 것입니다. 물론 독도의 경우는 특수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독도에 대해서 무지한것은 사실입니다. 독도를 노리는 일본조차도 독도를 교과서 내용에 추가해서 그 짧은 다케시마의 역사를 알리고 있는데 우리는 그 풍부한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부가 최근 독도문제에 대해 강경하게 나가긴 했으나 정작 가장 중요한 아군이 될 우리국민들을 상대로 아무런 광고도 하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사람은 별거 아닌 것에서 감동받고 별거 아닌 일이 자꾸 머리를 맴돌곤 합니다. 몇 년 전 한 사이다를 만드는 음료회사가 독도의 생태계를 이용해서 광고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회사는 최근에도 독도의 한반도 바위를 배경으로 광고를 했는데 별거 아닌 내용인데도 그 어떤 독도관련 다큐보다도 짧으면서도 더 기억에 생생히 남았습니다. 비록 하나의 광고일 뿐이지만 이제 그 독도를 보면 그 사이다가 떠오르고 사이다를 보면 독도가 떠오릅니다. 언제까지 독도(섬)를 독도(고립된 상태)로 만들 것인가요?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들 스스로가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 독도에 대해서 알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4. 국제사회 속에서 독도가 다케시마로, 동해가 일본해로 되어 있는 것을 막을수 있는 대처방안을 적어보세요!

우리가 백날 전 세계지도에 ‘이 지도가 잘못됬다. 일본해가 아니라 동해다, 다케시마(리앙쿠르 암초)가 아니라 독도다!’라고 소리쳐서 오류를 시정한다고 얼마나 봐줄까요? 효과는 어느정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세계 70억인구, 그중에서 한국과 일본 약 4억인구를 제외한다면 아시아 동쪽 끝, 작은 나라의 작은 바다, 그리고 작은 섬을 보는 세계인이 얼마나 될까요?

알게 모르게 일본은 전세계적으로 우리의 동해를 그리고 그 동해의 한가운데 작은 섬인 독도를 자국의 영토화 시키며 광고를 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우리가 가끔 뉴욕 타임스퀘어에 ‘독도는 우리땅’이라 광고하는 것처럼 그리 큰돈을 들이거나 한순간에 전세계의 이목을 끄는 그런 광고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주 작고 사소로운 것부터 천천히 광고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령 일본의 고위간부가 외국귀빈을 초대할때면 그들은 웃으며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지도를 선물합니다. 그러면 외국귀빈도 허허거리며 그 지도를 받겠지요. 하지만 그 지도에 ‘Sea of Japan, 다케시마’라는 이름이 표기되어있답니다.

일본의 '친근함'을 표방한 전세계 침투과정이 소름끼칠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는 좀더 다른 시각으로 일본의 침투과정을 보고 싶습니다. 일본이 사용하는 저 방법을 우리가 사용한다면?

제가 생각하는 방안은 간단합니다. 작년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수는 총 1114만왜 이들을 활용할 생각을 하지 않는것일까요? 간단하게 외국인 친구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우리나라 지도가 그려진 ‘실용적인’ 기념품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마치 우리가 유럽배낭 여행을 하듯이 우리나라를 경유하여 일본, 중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우리나라를 경유하여 중국과 일본으로 가는 관광객들은 또 ‘다케시마’라고 적힌 기념품을 사겠지요.

그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그 사람들에게 우리의 지도, 물론 East Sea와 Dokdo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 지도를 선물한다면, 우리나라에 추억도 쌓고, 무의식적으로 Dokdo라는 이름을 한번이라도 더 보게 될것입니다..

또 실용적인 물건을 선물한다면 다시 각자의 나라로 귀국하더라도 그들과 좀더 자주 접촉할 수 있을 것이고 의연중에 다른 외국인에게 노출되어 독도라는 말을 인식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5. 당신이 바라는 미래의 세계속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요?

88서울올림픽, 02월드컵, 10 G20정상회담, 18평창동계올림픽. 그동안 세계 최빈국에서 우리나라는 지난 60년간 참 많은 발전을 이룩해냈습니다. 전세계적으로도 한세대만에 농업시대-산업시대-정보화시대를 동시에 겪은 나라는 드물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한창이나 부족합니다.

서양인들은 '아시아'라고 하면 가장 떠오르는 나라가 '일본', '중국', 그리고 '인도'입니다. 우리가 느끼기엔 우리나라의 해외인지도가 꽤나 올라간 것 같은데 남북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례를 볼때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또 아직까지도 남한과 북한은 서로에게 냉담하기만 합니다. 분단한지 어엿 60년. 이제는 말과 문화의 틈과 점점 벌어지고 있고, 민족적 동질감도 느끼지 못할정도로 멀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서로에게 적대적이어야만 할까요?

저는 '아시아'라고 하면 일본, 중국보다도 '한국'을 먼저 떠올리는 그런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고싶습니다. 하루빨리 통일 한국을 이룩하여, 대륙횡당열차를 통해 저 멀리 시베리아로 뻗어 나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는 그런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싶습니다.



by 초령목 2013. 4. 14.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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