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수시가 1달 앞으로 다가오고, 자소서 쓰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 후기를 쓰기가 굉장히 귀찮았다. 

사진도 올리기가 귀찮다.

그래서 간단하게 후기만 쓰고 마치겠다.


한반도 전국토에 발자국을 남기셨던 우리학교 지리선생님이 단 한번도 밟지 못했던 땅, 울릉도. 그리고 독도.

난 운이 좋았던지 2번씩이나 밟을 수 있었다.

게다가 천운이 따라야 들어갈 수 있다는 독도땅을 두번씩이나 밟은 것은 올 한해의 운을 다 썼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나 올해 대학붙어야 하는데. 여기에 쓰면 안되는데.

내 신조는 '유지경성', 하고자 하는 뜻이 있으면 모든지 이루어진다.이다.

그런데 내 인생은 '새옹지마'이다. 인생은 정말로 시소처럼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이 이 인간의 삶이다.

올해도 그렇다. 작년에 골든벨에서 대박터진 후로 나는 쭈우우우우우욱 운이 없었다. 

그래서 '아, 이렇게 계속 운이없으니까 대학 가는 날에는 운수 왕창 터지겠구나.'라며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독도 홍보대사 붙었다네? 독도 우수홍보대사로 레벨업  했네? 1년 50일밖에 못밟는다는 독도 땅 밟았네? 그것도 모자라 길어야 1시간, 그것도 선착장에서 머물 수 있다는 독도를 1시간 30분동안 있다가 산까지 타고 돌아왔네?

인생사 새옹지마. 하필 수시 1달전부터 이렇게 운수가 왕창 터지니 불안하다.

난 망했어. 재수할거야. 이런 재수없는 인생. 아니, 재수 없으면 대학 붙는건가.

아니, 불안하지 않다. 나는 적어도 이 운수가 2달은 지속될거라 믿는다. 그래야만 한다. ㅜㅠㅜㅠㅜ

그러하다.


경악스러운 성비에 놀라, 또 고3이라는 신분때문에 심각하게 캠프에 참여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도 했지만 고3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기위해 결단을 내렸다. 

솔직히 말해서 지방에 사는 대원들보고 '아침 8시 30분까지 포항으로 모이세요'라고 간단하게 공지가 올려져있긴 했는데 처음에는 말이 되는 소리인가? 화낼뻔했다.

일단 나는 대구에 살고 있기때문에 포항까지 빠르면 1시간 이내로 갈 수 있지만, 경북권에 사는 아이들은 정말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부지런히 걸어와야 했다.

수도권에 사는 아이들은 그래도 자정이 다되가는 시간에 미리 모여 같이 버스타고 오는거라 늦을 일 없겠지만 만약 여기서 낙오자가 발생한다면 나는 분명 그것은 영남권 아이가 될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포항에 와보니 서프라이즈. 한명도 빠짐없이 다 왔네. 한명이 지각을 하긴 했는데 알고보니 울릉도 사는 아이.

울릉도 살면서 포항까지 배타고 와서 울릉도로 다시 가야하는 불쌍한... 아이가 아니라 그냥 포항에 있는 고등학교에 유학온 아이란다. 포항에 있으면서 왜 늦었을까.


내 조는 4조였다. 미리 조원들의 블로그를 통해서 대충 어떤 분위기의 아이일까 파악은 해두었지만 실물과 모자이크가 되어있는 블로그 속 사진은 달랐다.

나 이외의 유일한 남자아이는 훤칠하게 생긴게 넌 분명 대성할거라 믿었지만 나머지 여자아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생기가 넘쳐보였다. 어색해서 딱히 그 아이들과 말은 할 수도 말을 걸 수도 없었다. 여자는 참 붙임성이 좋은 포유류라는 것을 느낀 것이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텐데 벌써부터 1년은 함께 지낸 동급생처럼 친해져 있었다. 난 절대 저 속에 들어가서 어울릴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충격적인건 발대식때 영어를 쓰기에 한국어 한마디도 못할 줄 알았던 조장 글로리아 누님께서, 아니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학교 젬마선생님처럼 안녕하이쉐여~라고 발음할 줄 알았는데 완전 플로언트리하게 코리안을 스삐킹 하셨다. 어쩐지 한국말 못하면 조장이 될 수있을리가 없었겠지. 

그나마 동변상련을 느끼던 남자아이는 운좋게 야구를 좋아한다는 공통분모를 찾아 편했다. 마침 TV에서 류현진 메이저리그 선발등판 경기를 보여주고 있었기에 그 어색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게 다행이었다.


 간단히 쓰려고 했는데 벌써부터 글이 길어질 전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바쁜건 매한가지인데 하루종일 자소서 쓴다고 멘탈이 붕괴된 상태라 내가 무슨말을 적는지도 모르겠다. 에라, 쓸 수 있는데 까지 써보자.


 배 안에서 나는 우리조 남자아이(건호)의 옆자리에 앉았다.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3시간. 그 3시간동안 무엇을 하란 말이오.

 우리 옆좌석에는 3조의 남녀가 앉아있었다. 그런데 이미 면식이 있어보이는 지 상당히 친해보였다. 어쩌면 조금 소란스러운 감도 있었지만 차라리  말없이 3시간을 지내는 것보다는 몰래 그 아이들의 대화내용이라도 엿들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말을 트게 된지는 모르겠는데 어느새 그 아이들과 꽤나 친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남들 다 자는데 우리끼리 떠들어 대는게 참 볼만했을거란 생각이 든다.

들어보니 둘다 영남권 아이들이란다. 참고로 건호는 전주아이인데 국사교과서에 나온다는 신흥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란다. 그리고 얘들은 나와 클래스가 다른 것이 난 정말로 평범하디 평범한 어쩌면 평균 이하일지도 모르는 고등학교에서 왔는데 왜 하나같이 명문이고, 사립들인지. 기가 빠질 지경이었다.

3시간은 길었다. 그 중 한 2시간은 그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데 사용한 것 같다. 나머지 1시간은 어디에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울릉도에 도착했다. 밥먹고 한일은 걷기.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물론 다른 것도 했다. 워킹 앤드 워킹.

독도 박물관까지 걷기만 했다. 이것은 마치 마라톤을 방불케 했다. 햇볕을 쨍쨍 모래알... 아니 콘크리트 곱게 포장된 울릉도 길거리는 반짝한 날이었다. 예전에 울릉도에 왔을 때 한번쯤은 걸어봤던 코스. 난 유경험자에 대구 촌놈이라 체력이 남아돌아서 선두그룹에서 걸었다.

어쨌든 걸었다. 딱히 적을 것도 없게 그냥 걸었다.

대충 몇분 기다리고 보니 결국은 다 도착하더라.

독도박물관은 달라진 게 없었다. 여기서는 무슨 독도박물관을 관람하고 느낀점을 적어야 할텐데 귀찮으니 생략하겠다.

안그래도 멘탈이 붕괴된 상태인데

"독도박물관에 갔다와보니 일본에 대항할 수 있는 많은 사료들이 전시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일본이 직접 그린 한국령 독도지도, 그것을 본 순간 나는 가슴이 울컥하기 보다는 오히려 짜증이 났다. 아니 이렇게 많은 증거들이 버젓이 전시되어 있는데, 도대체 일본은 어떻게 저리 뻔뻔하게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증거가 하나씩 둘씩 발견될때마다 한걸음씩 물러서는 그들이 가증스러웠다. 그들이 하는 말에는 모순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화가나는 것은 그런 일본을 등진 채 세계를 향해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우리의 신세가 처량해보였다.'

라고 설명하기엔 나는 너무 피곤하다.


다음에는 무엇을 했을까. 아,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 선을 따라 쭈욱 올라가서, 이번엔 산을 탔다. 아니 산이라 하기엔 조금 민망한 오솔길을 타고 조그마한 정자로 들어가서 포토타임.

여기서도 관람평을 날려주자.

'울릉도의 전경은 아름다웠다. 옛날에 한번 울릉도의 땅을 밟았을 때 나는 이곳을 동해바다의 제주도라 칭한 적이 있었다. 세계적인 관광지 제주도와 비견될 절경이 눈앞에서 펼쳐있었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그래, 옛사람의 말이 떠오른다. 이게 울릉도여, 그림이여? 저 먼 바다에서 거센 파도를 가르며 달려오는 배가 내 눈에 포착되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저기 멋진 절경이 보인다. 그것도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그냥 한걸음 발을 뗄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 찍고 또 찍고, 마구 찍어댔다. 그정도로 울릉도의 풍경은 멋졌다.'


그리고 리조트로 와서 휴식시간.

은 개뿔 바에 짐만 놓고와서 그딴 거 없이 다음 특강을 진행했다.

전에도 한번 와본 적 있는 리조트였는데 울릉도에서 가장 좋은 리조트인가 보다. 그림같은 집들이 널려있었다.

말로만 듣던 언덕위의 하얀집들이.


특강은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반크 단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이소라님의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동영상 한두편을 보았던 것 같다.

 이 내용을 토대로 우리는 PT발표를 해야했다. 

위안부와 독도에 관한 홍보전략, 또는 대응전략을 조원들의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보라는 것이었는데

우선 조 이름부터 정하란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소년이라 말을 아꼈다.

그런데 다른 조와 비교되게 우리 조는 너무 조용했다. 오늘 아침에 보았던 그 파릇한 모습들은 어디가고 모두가 입에 재갈이라도 문듯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다못해 내가 그냥 한마디 툭 던졌는데 그게 조 이름으로 결정될 뻔했다.

에라이 부끄럼쟁이들.

내가 한번 물꼬를 틀자, 그제야 아이들도 조금이나마 말을 뱉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 이름은 'Team 4Tune'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문제는 PT발표인데.

다행이 글로리아 누님께서 우리조를 이끌어가서 몇개의 방안을 건져낼 수 있었다.

나도 그 대화에 끼고 싶었는데, 아니 나보다 어린 아이들이 나보도 경험은 더 많아서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앉아있었다

괜히 주눅들어서 안그래도 소심한 소년, 그냥 투명인간이 되고야 만것이었다.

그런데 그 대화내용을 토대로 PT자료를 만드려니 그것도 문제였다.

애들이 말을 안해.

사실 나한테 아이디어는 많았다.

옛날에 캠프 갔을 때 어떤 조에서 싸이월드형식으로 자료를 꾸미길래 저거 참 기발하구나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페이스북이 인기니까 그런 형식으로 써보자.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냥 말을 삼켰다.

그런데 건호가 얘기해주더라. 아이고 예쁜 녀석. 넌 꼭 대성해라.

왜이렇게 우리조는 소심한 것일까. 모두가 거의 손놓고 있는 듯 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반의 반도 완성하지 못했다. 그런데 10분을 남기고 갑자기 조원들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그걸 완성시키는 모습을 보고, 이 아이들은 참 무서운 아이들이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막상 만들고나니 내용이 생각보다 부실해보였다.

그리고 발표.

끝.

'아직은 어색한 조원들과 협력하다 보니 멀기만 했던 거리감이 조금이나마 좁아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하나의 결과를 만들고 나니 뿌듯하긴 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적극적이었다면 분명 우리가 1등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급조하다 보니 부실했다. 그릇도, 그안에 담긴 내용물도 너무 부실했다. 물론 그날 가장 참여율이 저조했던 내가 할말은 아니었지만 아쉬운 마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슨 꿈씨앗 적는 시간이 있었는데 여기서 난 상처를 받았어. 반크 누님에게 무시당했어. 흐허어라미아ㅓㅎ

무안하고 뻘쭘했다. 저주까진 아니더라도 원망할테다. 

근데 다음날 싹 잊음. 나중에 사과를 하시길래 심술을 부렸는데 갑자기 미안해져서 별거 아니었다고 나도 사과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거 쓸 시간에 자소서 한줄이나 더 볼걸. 퇴고는 중요하니까. 그런데 벌써 1시간이 지났다. 젠장.


다음날.

독도갔다.

자 지금부터 계산을 해본다.

독도사관학교 7만명

그 중 발대식 참여자 280명

그중 우수 활동자 45명인데 그중 고등학생 29


7만명 중에 280명 중에 29명에서


1년 365일 중 독도에 갈 수 있는 날이 50일. 그중 독도까지 가는 배가 운항하는 시기를 반타작 해서 대충 25일.

그리고 독도땅을 밟고만 나오는 경우가 다인데 서도 봉우리까지 다 오를 확률

길어봤자 1시간을 정박할 수 있는 독도에서 1시간 30분을 정박할 수 있는 확률.


정리해서 7만명 중에 280명 중에 29명이 365일 중 독도에 갈 수 있는 날 50일 중 배가 출항하는 25일 중에서 운좋게 서도 봉우리까지 다 올라 독도경비대장과 사진을 찍고 1시간 30분동안 포토타임하면소 놀 수 있는 확률은?[10점]


한마디로 나는 운이 좋았다.

독도, 한 두번쯤 와보니까 우리집 안방처럼 지낼 수 있을 정도였다.

아, 참고로 우리집 안방은 덥고 불편함.


'독도대교.

 나는 독도와 상관없는 아이일거라 생각했다. 독도의 파도는 항상 거칠다. 독도가 사람을 허락하는 시간은 고작 50일. 어쩌면 그 독도의 폐쇄성이 나를 독도에서 멀어지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TV에서 나는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진으로 독도라는 아름다운 섬 하나를 보았다. 들리는 말로, 독도는 천연의 모습을 간직한 천해의 섬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독도를 내가 갈 수 없는 이상의 섬, 유토피아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독도의 땅을 밟았다. 독도와 상관없을 줄 알았던 이 아이가 염치없게 독도의 모래향를 맡아낸 것이었다. 독도는 작은 섬이었다. 내 의식속에서 무시당하던 그저 유토피아로 생각했던 그 섬은 거센 파도를 견뎌내던 조그마한 섬이었다. 그리고 살벌했다. 독도의 바닷바람에 털끝하나 움직이지 않는 경비대원들이 마네킹처럼 서있었다. 햇빛을 받으며 파도에 찰랑이던 독도는 생각보다 작았다. 

 내가 관광을 하러 온 것일까? 분명 그 순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기억을 되씹어보자. 나는 독도관광이라는 빛에 묻혀 언제쳐들어올지 모르는 적을 대비하던 그들의 이면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국민적 무관심으로 방치된 독도를 미처 발견해내지 못했다. 독도경비대장과 사진을 찍었다. 사진 한장 찍어달라는 우리의 간곡한 요청에 잠깐 당황한 모습을 하던 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서도를 한바퀴 돌다보니 이름조차 기억이 안나는 작은 등대를 만났다. 그곳에 올라 사진을 그저 아이마냥 좋아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그런데 경비대는 우리에게 간곡히 요청해왔다. 그것은 공개되서는 안되는 곳이니 사진을 삭제해달라. 내 독도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지워달랬다.

 왜? 아직 독도는 전쟁중이었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도 일본이라는 거대한 적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왜 독도에서는 그것을 몰랐을까? 그것을 왜 독도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지금이라도 나는 그들에게 머리숙여 인사한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독도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독도. 홀로 독(獨)에 섬 도(島). 외로운 섬 독도. 그 이름 그대로 독도는 항상 홀로 적들과 맞서싸워왔다. 하지만 우리는 몰랐다. 독도가 수백만년을 거친 파도에 저항해 왔다는 사실도, 일본과 한국이 독도의 두 팔을 붙잡아 서로의 진영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애쓸동안 사지가 끊히는 고통으로 신음해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몰랐다. 우리는 그저 편안한 육지에 턱을 괴고 앉아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실천없는 말뿐으로 독도를 응원하고 있었다.

 독도와 울릉도, 울릉도와 한반도는 끊어져있다. 하지만 다리를 놓자. 울릉도에서 독도로 이어진 우리들의 다리를 놓자. 그 이름 독도대교. 우리의 관심으로 쌓아올린 다리를 놓자. 그 다리를 건너 오늘도 묵묵히 독도를 수비하고 있을 우리의 영웅들에게 꽃다발이라도 전해주자. 외로운 우리의 막내 섬, 독도에게 잘 지내냐고 안부인사라도 전해져보자. 그렇게 독도대교를 쌓아보자.'


와서

연극했다.

우리가 미래에 바라는 꿈을 이루었다고 가정하고 독도와 위안부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해볼지 생각을 해보란다.

오늘은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 볼테다.

오늘따라 조원들도 유난히 참여율이 높았다.

그래 우리 한편의 드라마는 못쓰더라도 적어도 삼류연극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 아니겠는가.

PT는 못하면 그냥 졸작이라 치면 되지만 연극은 못하면 평생의 혹역사가 된다.

내 오그러지는 손발을 펴기 위해서라도 나는 열심히 참여했다.

우리조의 멤버는 화려했다.

주한 외교대사, 백수 큐레이터(그건 바로 나), 국제 판사, 대기업 CEO, 역사학자, 외교관, 검사 겸 대통령 비서 겸 해설자, 그리고 대통령...!!!

내 기억으로 독도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의 해결책은 이것이었다.

우연히 지도조각 발견해서 국제 제판에서 일본에게 승소함.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국 드라마를 써냈다.

한편의 막장 드라마.


롤링페이어 돌리고 끝났다.

사실 난 아직 이름도 못 외웠는데 사실 지금 이 글을 쓰고있는 시간에도 난 너희들 이름 다 못외웠어. 미안하다.

그때는 아직 어색해서 네들 성향을 파악하지도 못해서 좋은 말 쓰지 못해서 미안.


그렇게 둘째날의 밤도 저물었다.

아 사실 독도 감상문 쓸 때, '독도대교' 이거 쓰고 싶었는데 정리가 안되서 포기함.


마지막 밤이라 치킨이라도 시켜먹으려 했더니 그게 안되서 과자 한 1만원치 사서 건호랑 함께 밤을 지새웠다.

내가 몇번이고 말하지만 넌 대성할거야.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에헤야디야.

드디어 후기도 끝이 보이는구나.

근데 마지막 날은 적을게 없음.

배타고 관광함.


그렇게 울릉도에서의 2박 3일은 끝이났다. 끝나는게 못내 아쉬워 번호교환을 한 친구들도 있었다. 아마 카톡게임의 초대장이 날아오겠지. 난 참 운이 좋은 아이다. 제주도도 평생에 1번밖에 가보지 못했는데 남들 못가본 울릉도 독도의 땅은 2번씩이나 밟아보았다. 난 참 운이 좋은 아이다. 그래서 이 운이 수능때 까지 이어질것이라 믿는다. 우리의 동쪽 끝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독도의 기운을 받아 난 아마 대성할 거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간 울릉도여, 영원하라





by 초령목 2013. 8. 18. 02:39
by 초령목 2013. 8. 11. 20:14



나참 살다보니 이런일도 다 있군요


7만명 중 280명만이 독도홍보대사 발대식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고

280명중에 100명만이 독도홍보대사로 합격했고

그 100명중에서 고등학생 20여명만이 독도에 가게됬는데


그게 나에요


그런데 독도를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게 됩니다.


내가 고3이라는 것때문에


by 초령목 2013. 6. 9. 23:47



수업이 한창일 때 문자메시지가 오더군요


합격.


올!


미션보고 난 글렀구나 하며 포기하고 있었는데...


여러분

하면 됩니다.


by 초령목 2013. 5. 30. 00:21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 3기> 한국 홍보미션







아 힘들다.


by 초령목 2013. 5. 14. 01:52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 3기> 한국 홍보 미션.


지난, 5월 8일 영어 담당이신 2학년때 담임선생님께 부탁하여 우리학교 원어민 선생님, Jemma와의 인터뷰를 계획했다. 보통사람에게도 잘 말을 못거는 내가 영어도 못하면서 원어민과 대화를 나누는게 가능할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본래 내성적인 나로부터 탈피하고자 망설이고 주저하기전에 일단 지르고 보았다.


 "선생님! Jemma와의 인터뷰 좀 주선해 주십시오. 덤으로 통역도!"


 통역까지 부탁했는데 퇴짜맞을 뻔해서 당장 한수를 무르고 어찌됐든 Jemma와의 인터뷰를 성취할 수 있었다.


사실 인터뷰를 어떻게 진행시켜야 하는가 고민을 많이했다. 아무리 독도홍보대사라는 닉네임을 달고있다지만 그렇다고 얼굴 맞대고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소리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래서 최대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중간고사 후 개점휴업 상태였던 내 두뇌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Jemma와의 인터뷰 당일 새벽 4시,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내가 영어를 못하는데 어떻게 인터뷰를 진행 시킬 수 있냐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는 영어를 잘 못하지만 남이 하는 영어를 알아들을 수는 있는 수준이라는 것.




▲ 최대한 태연한 척 연기하며 Jemma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나. 그런데 생각보다 떨리지는 않았다.


너도 긴장되고 나도 긴장되고. 하지만 인터뷰를 주도한 것은 나였기에 내게 인터뷰를 첫운을 떼야만 했다. 


Jemma

이승희 선생님

 

Hi, Jemma? 

Long time no see.(지금부터 한글진행)

오, 안녕. 나 지금 굉장히 긴장하고 있어.

저도 긴장되요. 혹시 저를 아세요?

음... 나 너 알것같아.

글쎄요. 저를 안다고요? 작년에 내가 너의 수업을 받았긴 받았는데, 내 생각에 Jemma는 저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요.


역시 Jemma는 나를 기억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우리 선생님께서 간단하게 나를 소개해주셨다.


Jemma, 그래도 너는 아마 쟤의 별명은 알걸?

별명?

유명한 골프선수를 닮았잖아.

아!

설마.


Tiger Woods!

골퍼 타이거 우즈 이미지

(애초에 계획했던 나의 인사말. Hi! Jemma. Long time no see. I'm Gyeong Hee Lee. Do you remember me? Last year, I took your English lessons interestingly, but i'm sure that you can't remember me. Because I'm shy boy, so I was very very calm and silent at that time.)

여기서 선생님께서 타이거우즈를 언급할 줄이야! 게다가 Jemma까지 그걸 또 이해한다는 듯이 알아들을 줄이야!

얼핏 예전에 누군가가 Jemma선생님에게 나를 설명하기 위해 "쟤는 타이거우즈에요."라고 한 기억은 있는 것 같은데...


어찌됐든 그렇게 나를 희생하면서 인터뷰는 화기해해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될 수 있었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나는 Jemma에게 작은 부탁을 해보았고, 선생님께서는 흔퀘히 들어주셨다.

 "Excuse me, Could you do me a favor? 

Please speak slowly and use easy word. 

I can't speak English very fluently, and even now, I just communicate with you as using my six sense.(이때 고맙게도 Jemma는 "너 영어 괜찮은데?"라고 하셨다.) 

Ah, I'm worried about grammatical errors in my words, please understand and show your broad generosity"



Jemma

이승희 선생님

 Ok, Let's Go.

솔직히 말해서 나는 Jemma의 이름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다. 너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줄 수 있어요?

음... 영국에서 왔고, 한국에 온지 2년이 됬어요. 하지만 한국어는 여전히 전혀 할줄 몰라요.(정말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러고보니 한번도 Jemma가 한국어를 하는 것을 본적이 없는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국어 몇마디를 좀 해주실 수 있나요?

Oh, my god. Umm. 안녕하쎄요. 선쌩님입늬다. 영궄에써 왔쒀이요.

(이때 이승희 선생님과 나는 웃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하. 생각보다 잘하시네요. 한국생활은 만족하죠?

물론이지.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일단은 살짝 간을 보았다. 다행이 내 저질영어를 다 알아들은 듯. 나는 내 영어가 통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기 마음먹었다.



▲ 아, 나 정말 못생겼구나. 내 말하는 스타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제스처까지 섞어가면서 인터뷰에 임했던 것 같다.


Jemma

이승희 선생님

 I'm a VANK. 

아마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너에게 꽤나 문화적으로 낯설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거야. 나는 이제 한국의 참혹한 역사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하거든.

OK.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있어요?

아주 조금. 예를들면 음... King Sejomg, Joseon Dynasty...

그러면 한국이 왜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일본만 만나면 강해주는 줄 아세요?

그건 조금 알아. 옛날에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는 것?

독일과 일본은 전범국이었다. 독일이 나치를 앞세워 유럽에 상처를 입힌것 처럼 일본은 아시아에게 상처를 입혔다. 한국은 일본에게 처참하게 무너졌고 40년동안 지배를 받아야 했다.

음...


혹시 왜 한국에서는 입학식이 3월 2일인지 아세요?

음... 글쎄.

아니면 왜 한국의 달력에서 3.1이 빨간색으로 색칠되어있는지 알고있으세요?

음.. 그것도 잘 모르겠어.


3.1은 한국이 일본의 지배에 대항하여 대규모 시위를 벌인 날이었다. 일본은 식민지인 한국에 만행을 저질렀고, 우리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예를 들어 마루타라고 불리던 생체 실험, 위안부라 부리는 성노리개 같은.


 그리고 독일은 2차 대전 중 모든 죄를 사죄했던 것으로 알고있다. 

하지만 일본은 사과를 하지 않고있다. 오늘날에는 반일 감정이 조금 사그라드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일본만 만나면 없던 힘이 생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일본은 아직까지도 한국에게 사과를 하지 않고, 오히려 한국의 섬, 독도를, 아 독도를 아세요?

그건 당연히 알지.

OK, 우리는 독도라고 불러요. 리앙쿠르식 암도, 다케시마도 아니라 독도라고. 오히려 한국의 독도를 강탈하려고 하니 우리가 친해질래야 친해질수도, 좋아할래야 좋아할수도 없게되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건대, 진행이 너무 무뎠던 것 같다. Jemma는 고맙게도 꽤나 성실히 답변해준 것 같은데 오히려 Jemma의 답변에 나는 그리 반응하지 않고 내것만 생각한 것 같다. 아...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었어. 그래도 그것에 화를 내지 않고 묵묵히 내말을 들어주었던 Jemma에게 고마워해야겠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사실 우리의 인터뷰시간은 총 20분으로 주어져 있었고, 내가 인터뷰 대본을 제작하는데는 5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그동안 20분은 충분히 채울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치도 못하게... 분량이 부족했다. 내 할말은 다 끝났는데 무려 10분이라는 시간이 남았던 것이다.

다행이 내 사정을 알고 이승희 선생님께서 즉석에서 Jemma에게 질문을 해주었다.


Jemma

이승희 선생님

영국에서도 세계2차대전에 대해서 배워요?

물론. 고등학교 과정에서 세계 2차대전에 대해서 배우고 있어.

그럼 영국에서는 독일에 대해서 악감정을 가지고 있어?

음... 딱히 우리는 독일에 대해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우리는 독일의 사과를 받아들었거든. 물론 축구경기에서 독일과 만나면 죽기 살기로 열심히 응원하겠지.


혹시 일본인을 만나면 우리편을 들어줄 생각이 있어?

(이때 나를 포함해서 Jemma까지 웃었다. 너무 노골적인 질문인 것 같았지만 그래도 궁금하긴 하다.)

하하하. 음... 글쎄 그건 나는 확신할 수 없어. 물론 일본인을 만나면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주장해줄 수는 있지만 만약 그들이 "그건 아니야!"라고 해버린다면 나는 더이상 한국의 편을 들어줄 수 없어. 일단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 객관적인 영국인이니까. 그래도 너희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뭐 대충 이런식으로 우리의 인터뷰는 모두 끝났던 것 같다.

인터뷰가 끝나기 전 나는 Jemma에게 감사의 인사로 선물을 주었다.

독도관련 사진집 : 오 예쁘다.

반크 지도(사실 농담을 던졌는데, 영어가 부족해서 잘 끝맺지 못했다. 

"반크의 닉네임은 지도 공장이야, 그래서 많은 지도를... [여기서 영어부족으로 재빨리 넘김])  : 오, 이건 우리집 벽에대 걸어놓을게.

그리고 한국 민속화가 그려진 접이식 부채. : 이거 정말로 필요했던거야! 왜냐하면 여름이 곧 다가오거든! 고마워.

물론 고생하시고 고마운 우리 이승희 선생님에게도 한국의 지도와 부채를 선물로 주었다.



마지막으로 찰칵! 그나저나 나 키가 작긴 정말로 작구나. Jemma와 거의 비슷하네.



이렇게 Jemma와의 인터뷰를 모두 끝마쳤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내가 영어를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준비를 해왔더라면!

이번에 나는 직접적으로 독도에 대해서는 광고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제3자의 입장에서 내가 독도를 강요하면 하면 오히려 거부반응을 일으킬 것같았다.

그래서 나는 조금 우회적인 방법으로 일본이 남긴 한국의 참혹한 역사에 대해서 설명해 주기로 했던것이다.


친구의 관전평으로는. 생각보다 나 잘한단다. 고마워라.

by 초령목 2013. 5. 13. 00:43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 3기> 오류 제보 및 시정 미션


1년전부터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나는 페이스북을 잘 하지는 않지만 세계 10억 인구가 사용한다는 페이스북 지도에서 동해를 "Sea of Japan"으로 그리고 독도를 "Liancourt Rocks"라는 이름으로 버젓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인들중에 동북아시아의 조그마한 바다와 정말 먼지만한 섬을 볼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느냐만은 적어도 한국인으로서 섭섭한 감은 없지 않아 있었다.


내 분을 겨우 참고있던 중 나는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로 임명되었다. 이왕 홍보대사가 된거 이런 오류를 시정해주어야하지 않겠는가?





일단 21세기 이순신 오류시정 프로젝트 사이트(http://korea.prkorea.com)에 가서 오류제보부터 해보았다.

제보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두근한데 내가 서한 메일은 보낼 수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어차피 저쪽은 내 얼굴을 모를터. 오늘같이 익명성이라는 놈한테 고마움을 느낀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없던 자신감이 생기면서 결국은 질렀다.




Hey, bing Maps!

사이트까지는 잘 찾아갔는데 도대체 항의 메일을 어디로 보내야하는건지 한창 헤멨다.




영어와 담을 쌓은 네놈이 외국계 대기업을 상대로 어떻게 항의를 했느냐?


반크 단장님이 가르쳐주신 비장의 기술

컨트롤 씨 컨트롤 브이로 쉽게 해결.


그리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항의 서한을 보냈다.

우어.


좋은 답변이 오기를 기대해보겠다.


by 초령목 2013. 5. 7. 00:08

1. 지원 동기를 적어주세요.

저에게 독도란 친숙하면서도 무관심했던 곳이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역사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일본이 독도를 강탈한다는 '말'만 들었을 뿐, 제가 발을 닿지 않은 곳이라, 또 입시라는 현실에 갇힌 신세에 이미 국가적인 문제로 번져버린 독도에 관심을 가지기엔 너무 이른 감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딱히 신경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무관심한 저의 인식을 변화시킨 한가지 계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저는 9년동안 '한국의 역사'를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때, 저에게 역사란 단지 그 어떤것보다도 특별히 재밌는 것에 지날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역사의 참된 매력에 빠지게되어 중학생이 된 저는 남에게 제 역사지식을 알려주고 싶은 욕심에 지식답변, 블로그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된 오늘의 모습을 보니 저는 더 욕심을 먹었나봅니다. 이제는 온라인 활동으로 한정되어있던 저의 역사활동을 오프라인의 세상으로 넓혀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을 먹고, 저는 고등학생이 되자 역사관련대회라면 모조리 참여하기로, 또 역사동아리에 가입하여 활발하게 활동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실을 맺어, 1학년때는 동아리 부장을 역임하는가 하면, 여러 대회에 나가 값진 경험을 얻어오기도 했고, 2학년때는 동아리 차장에 역임하고, 대회에 '입상'을 하고 'KBS도전 골든벨 역사통일편'에 출연하는 결과를 낳아내기도 했습니다. 저의 이런 식을줄 모르는 열정이 선생님의 눈에 띄였던지 저는 운좋게 대구경북지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독도사랑 문화대탐방'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2박3일동안 울릉도와 독도를 방문할 기회를 가질수 있었습니다.

뉴스에서만 듣던 울릉도의 땅을 직접 밟아보고, 사진으로만 보던 울릉도의 경치를 눈으로 보았습니다. 2박3일의 추억은 아마 제 일생중에서도 손에 꼽는 날이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울릉도에서의 2박 3일에서 가장 가치있었던 일을 꼽으라면 저는 독도에 대한 제 입장을 바꿔준 백일장대회 대회라고 꼽고 싶습니다. 독도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지만 일본이 독도를 건드릴때마다 '강경하게 대하자'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항상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정부에는 도저히 동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백일장대회를 준비하면서 저는 독도에 대해 좀더 정리를 할 수 있었고, 무조건 밀어붙이자는 '강경파'와 무조건 무시하자는 '무관심파'사이의 '온건파'의 입장에서 새로운 대책을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온건파에서는 독도를 지키기 위해 '한국의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대책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2박 3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한다면역시 인터넷으로만 보던 독도의 땅을 직접 땅으로 밟았다는 것입니다. 독도수비대를 직접 만나보기도 했으며 전세계에 우리 독도를 알리기 위해 독도사랑 플래시몹을 직접 실행해보기도 했습니다. 비록 30분만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는 오고싶어도 아무나 오지 못하는 이 독도의 땅을 밟았다는 자부심에 저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제가 독도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된 구체적인 이유는 독도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독도의 소중함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더 잘 느낄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독도를 갔다온 후 느낀 이 감정을 깨달음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했습니다. 독도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을 재고할 수 있도록, 제2회 창의체험 페스티벌 참여하여 동아시아 역사갈등으로 골머리를 앓고있는 간도와 함께 독도를 광고하기도 했으며, 학교 책자를 발행하여 독도에 대한 글을 직접 써냄으로써 학생들에게 독도인식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이미 독도에 대해서 깨달은 사람은 사람입니다. 독도를 직접 느끼고, 독도를 보고, 독도의 냄새를 맡아보고, 독도의 바다의 맛을 보고, 독도의 소리를 들어본 사람입니다. 저는 또 독도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독도의 참맛을 '오프라인'에서 알려준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의 욕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의 흥미, 중학교의 온라인 활동, 고등학교의 오프라인 활동을 넘어 고3이 된 지금, 제 욕망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글로벌 독도홍보대사에 선정되어 그런 제 고3, 학창시절의 마지막 욕망의 끝을 실현시키고 싶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글로벌 독도홍보대사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2. 왜 독도와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려야 할까요?

독도를 세계에 알려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간답합니다. “독도는 우리땅”이라서.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독도를 우리말 “독도(Dokdo)”보다는 ‘다케시마 또는 리앙쿠르 암초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당장 전세계 10억인구가 사용하는 페이스북에서 제공하는 지도를 봐도 ’리앙쿠르 암초‘라고 표기되어있을 정도입니다. 신라시대 512년부터 고려, 조선을 넘어 대한민국까지 1500년의 세월을 견뎌내며 우리말 ’우산국, 죽도, 독도‘로 친근하게 불리던 우리의 섬 독도가 열강의 침입을 받은 고작 50년동안 낯선 이방인에게 ’다케시마, 리앙쿠르 암초‘라는 이름으로 강제개명을 당해버렸습니다.

지금 일제시대를 거친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직까지도 강제로 창씨개명을 당해 얻은 그 일본식 이름을 치욕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식사중에 철없는 아이가 멋도 모르고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미키 상!’이라고 부르면 당장이라도 주위 어른들이 밥상을 엎어버릴정도로 말입니다. 그런데 독도는 우리가 광복을 한 1945년 이후,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개명당한 이름으로 전세계에서 불리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독도는 우리땅입니다. 독도의 친척인 우리라도 나서서 밥상을 엎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 북한입니다. 독도는 분명 한국땅입니다. 북한도 헌법상 분명 한반도 내의 우리영토입니다. 하지만 세계인들은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북한에 대한 전세계의 인식은 어떱니까? 북한은 국제사회의 인식과 호감도 등을 측정해 순위를 산출하는 국가 브랜드 지수에서 2008년 기준으로 130위를 차지했습니다. 즉 세계인들이 보는 북한은 비호감, 그리 달갑지 않은 국가라는 것이지요. 핵개발, 3대 세습, 기아, 6.25 등 전세계에 퍼지는 북한과 관련된 기사 대부분이 국제적인 비난을 달고있습니다.

얼마전 저는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재밌는 자료를 볼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들은 한국과 북한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우리학교 선생님 중에서는 이런 경험을 가진 분이 계십니다. 여러 지인분들과 함께 유럽여행을 갔는데 프랑스 공황에서 다른 일행은 다 보내주는데 자기만 보내주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무슨일인가 싶어 공황직원을 봤는데, 그걸 째려보는 것으로 이해했던지 그 공황직원도 같이 째려봤답니다. 그렇게 10분동안 서로 눈싸움만 한 채 시간은 흘렀고, 선생님이 너무 오랫동안 붙잡혀 있다는 생각에 가이드분이 나서서 공황 직원에게 '왜 저분을 잡고 있느냐?'라고 물었더니 그 공황직원의 대답에 웃어버렸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길래 북한사람인줄 알았는데, 북한사람이 관광을 나온다는게 신기해서."

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의 위상과 달리 전세계사람들은 북한과 남한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우리가 단지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광고 한다면 전세계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전쟁, 독재’가 키워드인 북한과 혼동되는 한국, 외교적으로는 선진국과 여러 교류를 통해 친분을 쌓은 일본. 우리는 우리의 땅 독도뿐만이 아니라 'South Korea', 즉 남한이라는 말도 함께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남북이 통일이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지만 남북을 구별하지 못하는 외국인때문이라도 우리는 ‘South Korea'와 ’Dokdo'라는 이름을 함께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3. 독도, 동해 및 대한민국을 세계인에게 알리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적어보세요.

앞서 말했듯이 저는 독도 사랑 문화대탐방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얻고 깨달은 것이 많다고 언급했습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추억이 백일장대회였다는 것도 함께 말입니다. 독도 사랑 문화대탐방 중 독도문제 해결방안에 대한 백일장대회에서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제 귀에 들리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참신한 아이디어가 백일장에서 상을 탈 수 있었습니다.

백일장의 주제는 이것이었습니다. “독도문제, 한일간 어떻게 풀 것인가?” 저는 당연히 강경책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 정부가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글을 적었습니다. 다만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를 적는 서론을 적는데 너무 심취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제 주장을 별로 적지도 못한 것은 옥의 티였을까... 하지만 알고 보니 저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강경하게 대처하여야한다” 또는 “일본의 장난에 놀아나지 말고 지금처럼 무시한다”라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지금에야 생각해보면 저를 포함한 사람들의 생각이 식상한 감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좀 더 참신한 방안을 원하고 실시한 백일장이었을텐데 강경책이나 온순책은 이미 많은 언론이나 대중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었으니깐 말입니다.

그 수많은 흑백사진들 사이에서 눈에 띈 컬러사진은 바로 한류열풍이었습니다. 동방신기, 소녀시대, 카라, 배용준, 장근석…… 수많은 K-pop스타들과 한류 연예인들이 일본으로 진출하고 있고, 그곳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례는 많습니다. 또 한국 팬덤들 몹지 않는 인기를 거머쥐고 있습니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본 한류 팬 83%는 독도문제로 한일간의 사이가 멀어짐에도 불구하고 한류는 좋다고 답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독도문제에 바로 이 한류를 쓰면 어떨까요? 물론 그들이 직접적으로 일본 팬들앞에서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소리친다면 오히려 반발심만 커질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한류열풍이 꺼지며 외교적 문제로 번질수 있는 문제가 발생할수도 있겠지요. 이때 우리나라 한류스타들이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여 일본 팬들에게 알게 모르게 다케시마 대신 독도를 마음속에 새겨주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차차 생각해봅시다. 일본에 나가 국위선양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 한류스타들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낭비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다른 칼라사진은 바로 음식이었습니다. 독도의 특산물을 이용하여 우리의 한식에 대입하는 것입니다. 음식이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것입니다. 바로 그 음식에 독도라는 향미료를 첨가하는 것이지요. 독도의 특산물이라고 하면 오징어,꼴뚜기, 대구, 명태, 거북이, 연어알, 물새알… 바로 이것들로 우리의 김치라던가 여러 음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독도라는 이름을 가진 음식을 먹음으로서 독도가 좀더 친숙하게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더 나아가서는 한식의 세계화에 같이 묻어가서 외국인들에게도 한식과 함께 독도를 알릴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외국인이 우리의 한식을 먹으며 “Wow, Korean dishes taste so good. What are the ingredients of this food?(와 한국음식 정말 맛있네요. 이 음식 재료가 무엇이죠?)”라고 물으면 “Dokdo.”라고 자랑스럽게 답을 할수 있을까요? 억지스럽지만 재밌는 상상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방법은 따로 있습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방법은 국민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이 하나, 둘씩 모여 열이 되고, 백이 되고, 천이 된다면 그 힘이 전세계에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는 증거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일겁니다. 심지어 이 글을 저조차도 사실 독도가 우리땅인 근거를 대라고 한다면 대답을 잘 해낼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전세계적으로 공통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국민들의 가장 큰 문제는 한번 이슈가 되면 반짝하고 금세 꺼지는 것입니다. 물론 독도의 경우는 특수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독도에 대해서 무지한것은 사실입니다. 독도를 노리는 일본조차도 독도를 교과서 내용에 추가해서 그 짧은 다케시마의 역사를 알리고 있는데 우리는 그 풍부한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부가 최근 독도문제에 대해 강경하게 나가긴 했으나 정작 가장 중요한 아군이 될 우리국민들을 상대로 아무런 광고도 하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사람은 별거 아닌 것에서 감동받고 별거 아닌 일이 자꾸 머리를 맴돌곤 합니다. 몇 년 전 한 사이다를 만드는 음료회사가 독도의 생태계를 이용해서 광고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회사는 최근에도 독도의 한반도 바위를 배경으로 광고를 했는데 별거 아닌 내용인데도 그 어떤 독도관련 다큐보다도 짧으면서도 더 기억에 생생히 남았습니다. 비록 하나의 광고일 뿐이지만 이제 그 독도를 보면 그 사이다가 떠오르고 사이다를 보면 독도가 떠오릅니다. 언제까지 독도(섬)를 독도(고립된 상태)로 만들 것인가요?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들 스스로가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 독도에 대해서 알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4. 국제사회 속에서 독도가 다케시마로, 동해가 일본해로 되어 있는 것을 막을수 있는 대처방안을 적어보세요!

우리가 백날 전 세계지도에 ‘이 지도가 잘못됬다. 일본해가 아니라 동해다, 다케시마(리앙쿠르 암초)가 아니라 독도다!’라고 소리쳐서 오류를 시정한다고 얼마나 봐줄까요? 효과는 어느정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세계 70억인구, 그중에서 한국과 일본 약 4억인구를 제외한다면 아시아 동쪽 끝, 작은 나라의 작은 바다, 그리고 작은 섬을 보는 세계인이 얼마나 될까요?

알게 모르게 일본은 전세계적으로 우리의 동해를 그리고 그 동해의 한가운데 작은 섬인 독도를 자국의 영토화 시키며 광고를 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우리가 가끔 뉴욕 타임스퀘어에 ‘독도는 우리땅’이라 광고하는 것처럼 그리 큰돈을 들이거나 한순간에 전세계의 이목을 끄는 그런 광고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주 작고 사소로운 것부터 천천히 광고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령 일본의 고위간부가 외국귀빈을 초대할때면 그들은 웃으며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지도를 선물합니다. 그러면 외국귀빈도 허허거리며 그 지도를 받겠지요. 하지만 그 지도에 ‘Sea of Japan, 다케시마’라는 이름이 표기되어있답니다.

일본의 '친근함'을 표방한 전세계 침투과정이 소름끼칠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는 좀더 다른 시각으로 일본의 침투과정을 보고 싶습니다. 일본이 사용하는 저 방법을 우리가 사용한다면?

제가 생각하는 방안은 간단합니다. 작년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수는 총 1114만왜 이들을 활용할 생각을 하지 않는것일까요? 간단하게 외국인 친구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우리나라 지도가 그려진 ‘실용적인’ 기념품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마치 우리가 유럽배낭 여행을 하듯이 우리나라를 경유하여 일본, 중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우리나라를 경유하여 중국과 일본으로 가는 관광객들은 또 ‘다케시마’라고 적힌 기념품을 사겠지요.

그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그 사람들에게 우리의 지도, 물론 East Sea와 Dokdo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 지도를 선물한다면, 우리나라에 추억도 쌓고, 무의식적으로 Dokdo라는 이름을 한번이라도 더 보게 될것입니다..

또 실용적인 물건을 선물한다면 다시 각자의 나라로 귀국하더라도 그들과 좀더 자주 접촉할 수 있을 것이고 의연중에 다른 외국인에게 노출되어 독도라는 말을 인식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5. 당신이 바라는 미래의 세계속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요?

88서울올림픽, 02월드컵, 10 G20정상회담, 18평창동계올림픽. 그동안 세계 최빈국에서 우리나라는 지난 60년간 참 많은 발전을 이룩해냈습니다. 전세계적으로도 한세대만에 농업시대-산업시대-정보화시대를 동시에 겪은 나라는 드물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한창이나 부족합니다.

서양인들은 '아시아'라고 하면 가장 떠오르는 나라가 '일본', '중국', 그리고 '인도'입니다. 우리가 느끼기엔 우리나라의 해외인지도가 꽤나 올라간 것 같은데 남북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례를 볼때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또 아직까지도 남한과 북한은 서로에게 냉담하기만 합니다. 분단한지 어엿 60년. 이제는 말과 문화의 틈과 점점 벌어지고 있고, 민족적 동질감도 느끼지 못할정도로 멀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서로에게 적대적이어야만 할까요?

저는 '아시아'라고 하면 일본, 중국보다도 '한국'을 먼저 떠올리는 그런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고싶습니다. 하루빨리 통일 한국을 이룩하여, 대륙횡당열차를 통해 저 멀리 시베리아로 뻗어 나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는 그런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싶습니다.



by 초령목 2013. 4. 14. 19:42

0. 발대식 전

4월 13일 토요일. 전국 250여명의 독도홍보대사들이 경상북도청에서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 발대식을 가졌다. 대구에 경북도청이 있다는 사실만 알뿐, 사실은 대구시청도 가본적이 없는 나였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대구 사람이라지만 도청 가는 길은 타지에서 올라온 홍보대사만큼이나 낯설었다. 그래도 내가 대구출신이이라서 '일찍 가서 앞자리나 차지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버스를 탔는데 생각보다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KTX를 타고 여기까지 왔을 다른 홍보대사들을 생각하니 불평을 토할수는 없었다

아침부터 친구랑 논다고 밥을 먹지 않았다. 나의 탄생기념으로 원래는 친구와 고기를 먹을 생각이었지만 아침을 먹기도 전 내 돈 2만원을 뜯어가고 쫓겨났기 때문에 아침부터 발대식이 끝나는 6시까지도 굶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맙게도 관계자분들이 일용할 양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빵과 우유. 고기에 비할바는 못하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없던 나는 빵도 우걱우걱, 우유도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주위에서 사진을 찍길래 나도 사진을 찍고는 싶었다. 원래 사진 찍는것을 싫어하는 나였지만 이런 큰 행사가 있으면 추억으로라도, 증거로라도 사진 한장쯤은 남겨놓는게 좋다는 것 쯤은 알고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없었다. 같이 함께하는 일행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으거늘, 안타깝게도 내 일행은 없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지나가는 모르는 아저씨 한명을 붙잡고 인증샷. 

홍보대사 명단을 확인해보니 나랑 같은 학교출신의 학생이 한명 있기는 한 것 같았지만, 나도 그 사람을 모르고, 그 사람도 나를 모르니 어찌 만날 방도가 없었기에 나홀로 맨뒤에 아무자리에 착석하여 곧 시작할 발대식을 준비했다. 시간이 좀 널널하게 남길래 들어올때 관계자들이 나눠주었던 홍보물들 보며 시간을 떼웠다. 반크의 주요 활동이 '지도 제작(?)'인 만큼 지도가 반이었다.

무려 250:1의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홍보대사들 사이에서 '이경희'라는 이름을 발견하니 흥분되기하고도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기도 했다.


1. 개식 및 반크 동해,독도,한국홍보 동영상 상영

 본격적인 특강에 앞서 250여명의 홍보대사들에게 반크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해주기위한 영상이었다. 반크에 대해서 들어보기만 했을뿐 내가 반크와 관련된 활동을 할거라고는 생각도 해본적도 없었기에 꽤나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게임을 비롯한 모든 온라인 활동에 '현금'을 사용한다는 것에대해 거부감이 있었다. 그래서 가입비가 필요한 반크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망설임을 느꼈고, 결국은 내 신조에 못이겨 반크가입을 포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첫번째 반크의 활동과 취지·목적에 대한 동영상이었다. 자발적인 참여를 강조하며 우리에게 더 친숙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반크의 목적이라고 한다. 두번째 10가지 독도 홍보전략에 대한 동영상이었다. 말그대로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독도를 소개하려면 이것만큼은 기억하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동영상들을 보면서 뭔가를 느꼈다기보다는 동영상의 구성력이 좋다고 감탄하고 있던 내가 이상한 것일까? 동영상의 초장에는 일본이 한반도 지배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일본은 시모노세기조약, 청일전쟁, 영일동맹, 러일전쟁 등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전세계로부터 정식으로 한반도의 지배권을 인정받게된다. 그리고 마침내 이루어진 한일강제합병. 동영상에서는 이런 방식을 현재 일본이 독도를 침탈하는데 똑같이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빗대어 신정한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국제사회가 일본의 독도 소유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짚어주며 자연스럽게 우리가 독도를 홍보하는 10가지 전략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갔다.


 독도에 대해서는 여태껏 많은 자료들을 봐왔고, 여러 글들을 써왔기때문에 동영상에서 소개해준 여러 사건들보다는 동영상의 구성력에 대해 느낀 것이 더 많았다. 사실 반크를 보며 느낀것은 독도 홍보를 외국인에게만 치중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던 차였다. 하지만 이런 동영상을 보며 반크가 역시 우리나라 네티즌도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인이라면 느낄 수 있는 반일감정을 활용하여 동영상 초장에서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고, 자연스럽게 독도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냈다. 

 내가 여태껏 글을 쓰면서 느낀것은 우리나라 네티즌들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정보를 주었나'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관심을 이끌어낼수 있는가'다. 백날 자료를 모아서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그 많은 자료를 일일히 읽고, 볼 사람들이 어디있겠는가? 그런면에서 반크가 제작한 독도 홍보영상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2. 특강 :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그 위대한 도전(박기태 반크단장)


솔직히 말해서 저렇게 젊으신 분이 반크를 만드신 단장일줄을 생각도 못했다. 고작 20평 너비에 불과한 반크 사무실에서 지금과 같은 위상으로 발전시킨 박 기태 단장 님의 특강이 시작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오늘 들었던 6~7개의 강의들 중에서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강의를 뽑으라면 나는 박기태 단장님의 강의를 뽑고싶다. 다른 강의들과는 달리 단장님의 강의에는 단장님만의 '스토리'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볼품없는 '무스펙'청년에 불과한 사나이가 10만명의 회원이 대한민국을 위해 전세계에서 황동하고 있는 반크의 창시자라는 말을 들으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기술, 인맥, 자본, 지성. 넷 중 어느 하나 갖추지 못한 야간대학출신의 무일푼 사나이었다. 원래 그의 꿈은 관광가이드가 되어 평범한 가장이 되는 것. 취직을 위해 여러곳에 지원을 해봤지만 가진 스펙 하나없는, 토익 600점에 지나지 않는 이 청년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받아주는 곳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가이드가 되보겠다는 일념으로 무턱대고 덕수궁 땅바닥에서 앉아서 기다렸다. 그리고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흔쾌히 자신이 '무료로 너의 가이드가 될테니 믿어달라'라고 자신을 광고한다. 하지만 그에게 가이드를 맡기는 외국인은 없었다. 그저 지나가는 잡상인 정도라고 판단했던 것. 그렇게 좌절하고 있던 차, 그는 이번에는 일본인 노인에게 '너의 가이드가 되겠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일본인 노인은 고맙다면서 그에게 가이드를 받게된다. 처음으로 가이드를 맡은 그는 감동하여 무려 장장 5~6시간동안 서울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열정적으로 노인에게 가이드를 해준다. 그리고 어느 호텔, 모든 가이드일이 끝나자 일본인 노인은 그에게 다가와서 '고맙다'고 말한다. 어찌보면 이 무턱대고 했던 그의 행동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결정적인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일본인 노인을 만나고 자신감을 얻은 그는 이번엔 무턱대고 전세계의 대학교에 메일을 보낸다. "당신의 학생들을 가이드하고 싶다!" 무려 1000여통의 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이 온것은 무려 100여통. 그 100여통의 메일 중에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Dear. 기태"로 시작하는 호주의 한 대학교에서 온 발신. 이 대학교에서 한국과를 신설했는데 한국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고민하던 찰라에 그에게 메일이 날아왔던 것이다. 대학교에서는 그에게 100여명의 학생들의 정보를 보내며 '펜팔'을 하고싶다는 제안을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것이 바로 반크. 초창기의 반크는 지금과 같은 사이버외교사절단이 아닌 조그마한 펜팔사이트였던 것이다.

하지만 펜팔사이트에 불과했던 반크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와 수많은 '학생회원'들이었다. 펜팔을 하던 중 'National Geography(N.G)"라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교과서를 만드는 곳에서 한국에 대한 오류를 발견한 것이다. 정부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아서 직접 반크 회원들과 오류를 시정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는 마침내 N.G에서 공식적인 답변으로 수정할 것을 다짐받는다. 이렇게 작은 펜팔 사이트에 불과했던 반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속의 한국에 대한 오류를 발견하며 시정해나가며, Sea of Japan이 아닌 동해라는 이름으로, 다케시마가 아닌 독도라는 이름의 지도를 배포하며 오늘날의 반크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활동이 빛을내며 10년전 세계지도에서 3%에 불과했던 '동해'표기가 현재 약 30%이르게 되었다.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바로 우리 청소년들과 그 반크를 만들어냈던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껏 나는 내 정신적 지주가 될 멘토를 찾지 못했다. 어렵사리 찾은 나의 롤모델은 하인리히 슐리만. 비록 그의 업적에 대해서 빛과 어둠자가 확실한 사람이지만 나는 그의 일화에서 와닿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렸을적 트로이 전쟁신화를 듣고 내가 직접 트로이를 발굴하겠다"라고 생각하고는 진짜로 전설속에서나 믿어졌단 트로이 전쟁이 실존했던 것을 밝혀낸 위대한 학자. 내가 그를 롤모델로 꼽은 까닭은 어렸을 때의 꿈을 잊지 않고 결국은 실현해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이 박기태 단장님이라면 내 멘토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도 소박한 꿈은 있다. 길게 보자면 '시골에 한옥집을 짓고 살고, 작은 폐교를 사서 개인 박물관을 꾸며 사는 것.",그리고 지금 당장 현재를 보자면 '역사에 관련된 일을 하며 내 스스로가 역사를 찾아나가는 것." 꽤나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다. 하지만 박기태 단장님의 사례처럼 오직 '꿈'을 위해 달려나가다보면 언젠가는 그것이 실현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도 내 꿈을 향해서 달려가다보면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3. 특강 : 태정관지령과 안용복(이소리)

이분은 독도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소개해주셨다. 비록 나는 이미 알고있던 내용들이었지만 독도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유익한 강의였던 것 같다.

처음은 일본의 교과서 왜곡사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불과 10년전까지만 하더라도 독도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일본이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독도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었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할때마다 일본의 기세가 한풀꺾이고 있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로웠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못박았던 일본은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의 반발에 이렇다할 대응을 하지 못하고 은근슬쩍 "메이지 이후로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수정했다.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이 근거로 내어놓은 것은 바로 메이지 당시 일본 최고의 기관이었던 태정관의 발언이었다. "울릉도 독도를 시마네 현으로 넣어도 되는가?"라는 문의에 태정관에서는 "전혀 상관없는 섬이다."라고 기록한 내용이 고스란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안용복이라는 조선인이 직접 일본열도로 찾아와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받았으니 일본으로서는 할말이 없었다. 한국과 일본 두곳의 문헌에 모두 안용복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일본처럼 뻔뻔한 나라가 어디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저질러 놓고 본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해야할까? 아무런 검증을 받지 않고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외무부, 교과서에 써놓고, 정작 일본인 학자들에게조차도 비판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아무말 없이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에서 '메이지 이래로'라는 말을 교묘하게 첨가했으니 말이다. 세계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일본을 만만히 여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100년, 아니 수백년간 일본의 만행과 만용을 봐왔기때문에 가능한것인지도 모르겠다.


4. 교육1) 스마트 독도 및 한국문화홍보 사례(김새봄)

타칭, 오늘 나온 강사들중 가장 아름답다는 분이었지만 아쉽게도 이분의 모습이 제대로 찍힌 사진은 없었다.

이 교육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국내외 외국인과 내국인을 대상으로(누가) 항상(언제) 온라인, 오프라인 구분없이(어디서) 전략을 가지고(무엇을) 직접 활동하면서(어떻게) 나의 꿈과 대한민국과 지구촌을 연결하기 위해(위해) 홍보한다."

이 교육에서 가장 유익했던 것이라면 '전략을 가지고'였다. 나는 이 독도홍보대사에 합격하고 많은 생각을 해봤다. 무턱대고 지나가는 외국인을 만나서 무턱대고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해보세요"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길가는 사람들에게 "도를 믿으십니까?"라고 하는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전략을 짜야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런 내 고민을 말끔히 해소시켜주었다.

말그대로 전략을 짜는 것이다. 미국과 같이 인권을 중요시 여기는 국가에서 온 외국인에게는 위안부 이야기를 연결시키며 일본의 만행에 대해서 알리고, 한류열풍이 부는 국가에서 온 외국인은 일제강점기 드라마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순수하게 관광을 하러 온 외국인은 여러 관광지와 섬들을 독도와 연결하며 시작하며, 일본 제국주의 침략역사를 공유하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그 치욕스런 역사를 이야기의 시작으로 잡는다.


이 수업에서 나는 양심이 찔리기도 했다. 마지막에 강사분이 말하기를 '반크를 스펙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진솔하게 말하자면, 내가 이 독도홍보대사를 신청할 때 분명 '스펙으로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스펙으로의 활용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활동을 스펙으로 당당히 활용할 수 있을만큼 독도를 홍보할 수 있다면? 나는 당당하게 '독도홍보대사'라는 닉네임을 어디서든 사용하고 싶다.


5. 교육2) 독도 및 한국 홍보 스토리텔링(이정애)

독도를 홍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자신의 이야기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생각은 크게하되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로 작은 시작을 한다. 또 한국인이라는 편협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인의 눈으로 우리의 독도를 홍보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인의 눈으로 보는 것은 쉽다. 세계인들은 넬슨이라는 해군장교를 알지만 이순신이라는 위인은 모른다. 링컨이라는 인권대통령은 알지만 세종대왕이라는 조선 최고의 성군은 모른다. 우리나라 위인들과 공통분모를 가진 세계의 위인들을 함께 설명하며 이해를 돕는 것이다.

독도를 아예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세계지도를 배포하고 문화컨텐츠를 이용해서 홍보를 한다.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아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새로운 헤이그 특사가 되어 일본의 과거 만행을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독도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일본의 독도주장을 지지하는 사람에게는 논리와 지식을 갖추고 철저하게 대응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홍보하는 외국인들을 그저 홍보하는 대상으로 보지말고 진정으로 친구가 되는 것이다. 나와 상대에 대해서 서로 알고, 알리고 싶은 것과 알고 싶은 것을 잘 구분하며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이 강의에서 나는 당황했다. '생각은 크게하되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곁들인 말씀은 '역사, 철학 등은 어려울 수 있으니 자신의 관심분야로 시작하세요~' 그런데 내 관심분야는 역사인데. 독도 홍보대사로서의 앞날이 걱정된다.


6. 교육3) 동해,독도,한국오류 발견 비법(임현숙)



외국인들이 아시아인을 인식하는 순서. 

"중국인입니까?" 

"아니요."

"일본인입니까?"

"아니요."

"아! 그럼 한국인입니까?"

"네."

강사님께서는 왜 한국은 항상 중국과 일본 다음일까? 라는 문제에 대해서 그 원인은 전세계의 교과서라고 판단했다. 중국이  교과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쪽, 일본은 5쪽 그에반해 한국은 고작 1장. 

괜히 노파심에 반박을 해보자면 이것은 우리에게 심각성을 부각하고자 하는 강사선생님의 억지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외국인들에게 아시아 하면 '중국, 일본'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 아닌가? 우리가 전세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세기 후반. 그에반해 중국은 이미 사막길, 바닷길, 초원길을 통해 깊게 들어가보면 기원전, 한나라시대부터 서양과 교류를 해왔다. 또 제국주의가 성행하던 19세기때도 서양열강들은 중국은 아시아의 최강국가로 인정했고, 현대에 들어와도 미국과 함께 세계 2강으로 불리고 있다. 일본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보다는 훨씬 일찍 16세기에 개항을 시작했고, 세계 2차대전의 전범국이며 현재에도 세계 최고의 선진국으로 위엄을 펼쳐내고 있다. 

그에 반해 한국은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최빈국이었고 주위의 아시아 2대국에 비해서는 초라하기 짝이없는 나라였지만 최근 급격한 성장을 한 '신흥국가'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나는 '중국, 일본 다음으로 떠올리는 아시아 국가'라는 위상에 대해 놀랍다고 생각한다. 불과 20년만에 급격한 발전을 이룩하여 인도, 필리핀, 홍콩 등을 밀어내고 아시아 3강국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 강의에서는 오류가 시정된 많은 사례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두 서한 한장을 보냈을 뿐인데 오류가 시정되었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일본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나는 고작 편지 한장으로 세계의 오류가 시정되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반크는 해낸 것이다. 사례를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던 내가 괜히 무안해졌다.

오류 시정 활동의 핵심은 내가 나라를 대표하는 독도 외교대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7. 격려 및 강연(경상북도지사)

여기서 도지사님을 보게될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번 활동이 경상북도와 함께 한다는 것은 알았찌만 경상북도지사님께서 직접 우리를 환영하러 오시다니. 정치에 발을 담그신 분이고, 연륜이 깊으셨기 때문에 꽤나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될 줄 알았던 강연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예상을 깨고, 도지사님의 강연은 재미있었다. 마치 옆집 아저씨를 보는듯한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물론 난 옆집 아저씨가 누군지 모르지만) 도지사님의 강연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독도 문제가 나오면 바로 우리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당당하게 주권을 행사라는 말이 핵심이었다. 우리의 눈높이를 맞춰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지, 분위기가 가라앉을만하면 중간중간에 농담도 건네면서 꽤나 가벼운 분위기속에 도지사님의 강연을 끝까지 경청할 수 있었다.


8. 비전 선포식

당당하게 말하자면 나는 내 비전을 이렇게 썼다.

"내 손으로 역사를 바로잡고 싶다."

이것은 비단 독도에 관련된 문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내 손으로 우리의 잃어버린 과거와 역사를 새롭게 쓰고 싶다.

그리고 이것은 비전선포식에서 주은 누군가의 꿈

어차피 나는 고3이라 어떤 학생들보고도 "야"라고 부를 수 있는 처지니 말해주고 싶다.

비록 나는 얼굴도 모르는 스쳐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하지만 

꼭 훌륭한 역사교사가 되기를 빌어.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드물었는데 반갑다. 

역사의 방대한 내용에 식겁해서 지루해하고 싫어하는 아이들에게도 우리 역사는 재밌는 것이라고 알려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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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카메라 렌즈가 도지사님쪽으로 갔다고 했더니 역시나 나는 나오지도 않고 짤렸구나.


9. 발대식 후

 무엇보다도 6시간의 강의를 들어야 했기때문에 지루할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강사(?)분들의 말재간이 좋아서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몰입해서 들은 것 같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시간은 정말 칼같이 지킨다는 것. 5:40에 모든 일정을 마친다고 하길래 대부분의 행사가 그렇듯 30분정도는 초과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로 시간을 철저하게 지켜줬다는게 고마웠다. 덕분에 집에 갔는데도 해가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여태껏 독도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역사를 좋아하긴 하지만 독도에 그리 많은 관심을 가진적은 없었다. 하지만 글을 쓰다보니, 또 동아리를 활동하다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독도와의 연결고리가 생기게 되었다. 심지어 남들 한번 발담그기 어렵다는 독도에서 춤까지 추고 온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글로벌 독도홍보대'라는 타이틀까지 생겨버렸다. 아직까지도 나는 독도와 밀고당기기, 흔히 밀당은 끝나지 않았지만 나는 어쩔수없이 독도와 한배를 탄 사람인 것 같다.



 

독도를 가슴에 품고 대한민국을 세계로! 



by 초령목 2013. 4. 14. 18:56

‘제3기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발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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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뉴스1) 김대벽 기자= 경북도와 반크는 13일 ‘제3기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발대식을 가졌다. 이번 발대식에서 선발된 독도홍보대사 250명은 독도에 관한 교육을 마치면 5월 28일 정식으로 ‘글로벌 독도홍보대사’로 임명장을 받게 된다. 이들은 국제사회에 확신되고 있는 잘못된 독도에 관한 정보를 해외 웹사이트와 교과서를 찾아 올바른 한국의 역사와 정보를 알리고 시정하는 활동을 할 계획이다.2013.4.14/뉴스1




경북도, 청소년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250명 발족
'독도 가슴에 품고 대한민국 세계에 알려요'
기사입력 | 2012-04-16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들이 발대식 후 '독도를 가슴에 품고 대한민국을 세계로'라는 문구를 적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독도를 가슴에 품고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려요!'

경북도는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와 함께 지난 14일 도청강당에서 청소년 250명으로 구성된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발대식을 가졌다.

이들 청소년들은 독도를 가슴에 품고 대한민국의 역사, 문화를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홍보대사로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는 독도와 동해, 대한민국의 역사 오류 정보를 찾아내 전 세계에 올바른 정보를 알리는 임무를 수행한다.

국내에 재학중인 외국인 교환학생, 원어민교사를 대상으로 독도와 동해에 대한 자료를 전달해 독도를 홍보하고,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는 반크의 7만여명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공개모집해 서류전형을 거쳐 선발됐으며, 대구경북지역은 물론 서울, 강원, 대전, 전남, 전북, 부산, 울산 등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다.

김관용 도지사는 "글로벌 독도홍보대사들이 독도와 동해 그리고 대한민국에 대한 왜곡된 세계의 시각을 바로 잡는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http://www.kyongbuk.co.kr/main/news/news_content.php?id=579529&news_area=030&news_divide=&news_local=20&effect=4


'제3기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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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연합뉴스) 최수호 기자 = 경북도와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VANK)는 지난 13일 도청 강당에서 '제3기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발대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엔 반크가 '사이버 독도사관학교 홈페이지(dokdo.prkorea.com)'를 통해 선발한 250명의 중·고등학생 및 대학생이 참석, '글로벌 독도홍보대사'로서의 각오를 다졌다. 

이들은 앞으로 세계인을 상대로 독도 및 대한민국 바로 알리기 등의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경북도 등은 이들 중 우수 활동자 45명을 선발해 독도탐방의 기회를 부여할 계획이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여러분들이 독도와 대한민국에 대한 사이버 상의 정보 오류를 바로잡고 국제사회를 설득해 가는 멋진 활약을 펼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203411


경북도, 제3기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발대식 개최
독도사관학교 7만3천명 회원 독도홍보 펼쳐...
기사입력: 2013년04월14일 16시58분
(아시아뉴스통신=김상범 기자)

 13일 오후5시 경북도청 강당에서 열린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 발대식"에서 김관용 경북도지사를 비롯해 글로벌 독도홍보대사들이 자신의 꿈을 쓴 종이비행기를 힘껏 날리고 있다.(사진제공=경북도청)

 경북도와 반크는 13일 경북도청 강당에서 청소년 250명을 대상으로 "제3기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발대식을 개최했다.

 이번 발대식에는 김관용 경북도지사를 비롯해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글로벌 독도홍보대사의 비전을 포스트잇에 써서 붙이고 자신의 꿈을 쓴 종이비행기를 힘껏 날리는 순으로 진행됐다.

 도 관계자는 최근 일본 정부가 국제적 활동을 통해 동해와 독도에 대한 표기 오류가 해외 웹사이트와 교과서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어 반크와 공동으로 글로벌 독도홍보대사를 양성해 국제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한국의 역사와 정보에 대한 오류 시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제3기 글로벌 독도홍보 대사는 반크가 사이버 독도사관학교(dokdo.prkorea.com)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한 430여명의 학생 중에 선발된 250명의 중.고.대학생이다.

 전국에서 모인 250여 명의 청소년들은 4시간 동안 한국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세계인들에게 독도와 대한민국 바르게 알리는 방안에 대해 반크의 박기태 단장과 연구원들로부터 직접 교육받았다.

 이날 교육을 수료한 학생들은 독도와 대한민국 역사와 정보 오류를 찾아내어 전 세계에 올바른 정보를 알리기 외국인에게 독도와 동해에 대한 자료를 전달해 man-to-man 으로 독도 홍보하기 등의 미션을 한 달간 수행한다.

 수행 결과를 반크에서 심사해 다음달 28일 정식으로 "글로벌 독도홍보대사"로 임명된다.

 또한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중 우수 활동자 45명을 선발해 독도탐방의 기회도 부여할 계획이다.

 박기태 반크 단장은, "교육에 참석한 제3기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이 정말 대한민국의 미래와 연결된다는 마음으로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2009년 3월에 개설한 사이버 독도사관학교는 현재 7만3000명의 회원이 독도와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올바로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이버 독도사관학교는 참신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한국지도 2종, 세계지도 4종, 엽서셋트, 동해.독도스티커 등 총 21종의 홍보물 제작했고 지난해에는 해외 109개국 3953명, 국내 1만5379명에게 배포했다.

 독도와 대한민국 교육 동영상 평화의 상징 독도, 글로벌리더 한국청년 등 10편을 제작해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 비메오에 올려 세계인들이 인터넷과 스마트기기를 통해 동영상을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소셜네트워크 사이트인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반크블로그에도 올려 사관학교 생도들이 직접 외국친구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지난 2009년부터 매년 독도캠프를 열어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섬 독도를 탐방하고 독도의 영상을 직접 담아 해외 친구들에게 알리거나 독도탐방 소감을 서한문으로 작성해 외국인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해외 교과서와 웹사이트 등에서 독도와 동해, 한국의 역사와 정보 오류 사항 226건을 발견해 세계 주요 대학교 출판사에 시정 요청 서한과 함께 오류 시정 자료를 해외에 발송했다.

 이 중 세계 지리 학생용 지도(Studen Atlas of World Politics)가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했던 것을 동해와 일본해로 병기하는 등 21건의 오류를 시정하는 성과를 거뒀다.

 김관용 지사는 "도와 반크는 2009년 3월부터 사이버 상으로 독도와 대한민국의 국제 홍보를 전개해 현재 7만여 명의 사관학교 생도들이 독도수호의 해외전선을 새롭게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청소년 여러분들이 이번 발대식을 계기로 사이버 상에서의 정보 오류를 바로잡고 국제사회를 설득해 가는 민간외교사절단으로서의 활약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477918&thread=09r02



역시 도지사님 위주로 찍어서 난 나오지 않았다.

어쩐지 카메라 렌즈가 다 오른쪽으로 치우쳐있다고 했었지.

by 초령목 2013. 4. 14.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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