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오적

  • 이완용 한일'합방'의 주역이었던 매국노의 대명사
  • 박제순 '을사조약' 체결에 도장 찍은 외교책임자
  • 권중현 친일로 한평생 걸은 대세영합론자
  • 이지용 나라를 판 돈으로 도박에 미친 백작
  • 이근택 근황주의자에서 친일매국노로의 변신

일진회 관련자

  • 송병준 이완용과 쌍벽을 이룬 친일매국노 제1호
  • 이용구 친일 망동조직 일진회의 선봉장
  • 윤시병 만민공동회 회장에서 일진회 회장으로 변신
  • 윤갑병 '신일본주의'를 제창한 친일 출세주의자의 전형

갑신·갑오개혁 관련자

  • 박영효 친일 거두가 된 개화파 영수
  • 김윤식 죽어서도 민족운동의 분열에 '기여'한 노회한 정객
  • 조중응 친일의 길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았던 매국노
  • 장석주 이토 동상 건립추진운동의 주동자
  • 조희연 일본군의 조선침략에 앞장 선 군무대신
  • 윤치호 2대째 일본 귀족으로 입적한 '귀화한 일본인'
  • 정란교 박영효의 심복으로 친일 쿠데타의 돌격대
  • 신응희 3·1 운동의 무력진압 건의한 황해도 지사
  • 이규완 참정권 주장의 '선구자'

을미사변 관련자

  • 이주회 동학농민군 진압한 명성황후 시해 주범
  • 이두황 이토 히로부미의 총애 받은 친일 무관
  • 우범선 명성황후시해사건의 주동자
  • 이진호 일제식민통치에 앞장 선 친일관료의 전형

왕실·척족

  • 윤덕영 한일'합방'에 앞장 선 황실 외척세력의 주역
  • 민병석 조선인 대지주로 손꼽힌 민씨 척족의 대표
  • 민영휘 가렴주구로 이룬 조선 최고의 재산가
  • 김종한 고리대금업으로 치부한 매판자본의 선두주자

관료

직업적 친일분자

  • 민원식 참정권 청원운동의 주동자
  • 배정자 정계의 요화(妖花)로 불렸던 고급 밀정
  • 선우순 내선일체론의 나팔수
  • 이각종 황국신민화운동의 기수
  • 박석윤 항일무장투쟁 파괴|분열의 선봉장
  • 박춘금 깡패에서 일본 국회의원까지 된 극렬 친일파
  • 현영섭 일본인 이상의 일본인 꿈꾼 몽상가
  • 이영근 황국신민화를 온몸으로 실천한 일본주의자
  • 이종형 독립운동가 체포로 악명 높았던 밀정

경찰·군인

  • 김태석 강우규 의사 체포한 고등계 형사
  • 김덕기 항일무장투쟁 탄압의 선봉장
  • 전봉덕 화려한 경력으로 위장한 친일경찰의 본색
  • 김석원 일본 군국주의의 화신 가네야마 대좌
  • 정 훈   동포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보도통제의 첨병
  • 노덕술 친일 고문경찰의 대명사 

경제

  • 한상룡 식민지 예속경제화의 첨병
  • 장직상 경북지방 최고의 친일 부호
  • 김갑순 역대 조선총독 열전각을 건축한 공주 갑부
  • 박영철 다채로운 이력의 전천후 친일파
  • 문명기 애국옹(愛國翁) 칭호 받은 친일 광신도
  • 박흥식 반민특위의 구속 1호였던 매판자본가의 전형
  • 김연수 민족자본가의 허상과 친일 예속자본가의 실상
  • 박승직 매판 상인자본가의 전형
  • 현준호 실력양성론자에서 친일파로 변신한 금융자본가
  • 문재철 암태도 소작쟁의 야기한 친일 거대지주

언론

  • 진학문 일제 문화정치의 하수인
  • 장덕수 근대화 지상주의에 매몰된 재사
  • 서 춘 매일신보 주필로 맹활약한 친일언론의 기수
  • 방응모 언론 내세워 일제에 아부한 교화 정책의 하수인
  • 김성수 언론.교육.산업 보국의 정신에서 부일협력의 길로

학술

  • 정만조 친일유림의 대표자
  • 어윤적 유림 친일파의 앞잡이
  • 이능화 민족사 왜곡과 식민사학 확립의 주도자
  • 최남선 반민특위 법정에 선 독립선언서 기초자 

법조

  • 이승우 민족운동가 감시에 앞장 선 친일 법조인
  • 신태악 속물적 출세지향의 친일 변호사
  • 유진오 일본의 '영원한 승리'를 다짐한 한국현대사의 큰 별

여성계

  • 김활란 친일의 길 걸은 여성 지도자의 대명사
  • 고황경 황도정신 선양에 앞장 선 여류 사회학자
  • 황신덕 제자를 정신대로 보낸 여성 교육자
  • 박인덕 황국신민이 된 여성 계몽운동가
  • 박순천 제자를 정신대로 보낸 청기사
  • 송금선 반도 지식여성들 군국어머니로 힘쓰자

문학

  • 이인직 친일문학의 선구자
  • 이광수 민족개조 부르짖은 변절 지식인의 대명사
  • 김동인 예술지상주의의 파탄과 친일문학가로의 전락
  • 주요한 대동아공영의 꿈 읊조린 어릿광대
  • 김동환 각종 친일단체의 핵심으로 맹활약한 친일시인
  • 모윤숙 여성 교화사업의 첨병
  • 유치진 친일 '국민연극' 주도한 근대연극사의 거두
  • 최재서 서구적 지성론자에서 천황숭배론자로
  • 백 철 인간탐구론자에서 국민문학론자로
  • 김기진 황국문학의 품으로 투항한 계급문학의 전사
  • 박영희 카프문학의 맹장에서 친일문학의 선봉으로
    서정주  미당의 친일시와 광복 이후의 활동

음악·미술

  • 홍난파 민족음악개량운동에서 친일음악운동으로
  • 현제명 일제말 친일음악계의 대부
  • 김은호 친일파로 전락한 어용화사(御用畵師)
  • 김기창 스승에게 물려받은 친일화가의 길
  • 심형구 친일파 미술계를 주도한 선봉장
  • 김인승 도쿄미술학교 우등생이 친일에도 우등

종교

  • 최 린 반민특위 법정에 선 독립선언의 주역
  • 박희도 시류 따라 기웃거린 기회주의지의 변절 행로
  • 정춘수 감리교 황민화의 앞잡이
  • 정인과 장로교 황민화의 선봉장
  • 전필순 혁신교단 조직한 기독교 황민화의 앞잡이
  • 김길창 신사참배 앞장 선 친일 거물 목사
  • 이회광 불교계의 이완용
  • 이종욱 항일투사에서 불교 친일화의 기수로
  • 권상로 불교계 최고의 친일학승
  • 김태흡 조선 제일의 친일 포교사

정치

역사

  • 이병도 식민사관을 계승한 이병도사관
  • 신석호 친일사학자에서 국사학계의 거두로
  • 이선근 역대 부도덕한 정권의 밑받침이 되어 준 이론가

 신친일파

      박정희   시류에 따라 변신을 거듭한 기회주의자
        
정일권   탁사(濁史)로 얼룩진 '한국의 부도옹'
        
방응모   언론 내세워 일제에 아부한 교화 정책의 하수인 
        
박마리아 면죄부를 줄 수 없는 친일과 권력욕의 화신
        
박순천   제자를 정신대로 보낸 청기사
        
백두진   유신 옹호의 기수가 된 현실순응주의자 
        
백선엽   빨치산 토벌 지휘한 월남 반공 장교
        
서정주   미당의 친일시와 광복 이후의 활동
        
신현확    사계절을 행정관료로 꽃피운 끝없는 생명력의 화신 
        
김동원   독립 운동과는 무관했던 국회부의장

       


출처:역사운동광복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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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령목 2012. 5. 12. 13:48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로 개항된 후 일본을 통해 서양의 선진문물이 조선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성리학에 심취해 있던 조선인 유학자들과 대신들은 개화에 찬성하는 개화파와 반대하는 위정척사파로 나뉘게 되었다. 하지만 명성왕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을 계기로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에 대한 반일감정을 가지게 되어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이 을미년의 물결이 을사년, 정미년의 파도로 이어졌다. 그리고 1910년 마침내조선이라는 바다에 나라를 빼앗기는 경술국치라는 비바람이 휘몰아 쳤다. 하지만 이 비바람을 견뎌내기 위해 의병을 통한 무력투쟁으로, 애국계몽을 통한 민중의 깨우침으로 독립 운동가들은 폭풍우속 한줄기의 햇빛이 되었으며 마침내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독립을 성취하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지식인들이 안창호, 김구 등과 같은 독립운동가라는 위인으로 남은 것은 아니었다. 일본의 조선침략의 밑바탕이 되었던 을사늑약에서도 일제강점기 동안 독립 운동가들의 활동을 방해하는 자들 중에서도 조선출신의 일본 관리가 되어 일본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친일파들이 존재했었다. 그들이 주로 한 일은 독립을 위해 일하던 독립 운동가들을 고문하고 토벌하였으며 조선침략의 앞잡이가 된 대가로 일본에게 재물과 보호를 받았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일제로부터 독립하여 건국된 대한민국에서는 당연히 우리의 독립을 위해 힘써주던 이들을 포상하고 대우하며 친일파들은 처벌하는 것이 당연하지 일이 아닌가? 하지만 결과는 애써 만들어 놓은 반민특위는 대한민국의 우두머리인 대통령에 의해 해산되었으며 위축되었던 친일파가 다시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60여년이 흐른 지금 사회곳곳 많은 고위관리직에는 친일파의 후손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 친일파를 청산하겠다는 말은 그들이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권위를 빼앗는 것과 같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친일파를 비난하는 것은 빨갱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독립운동가의 대부분이 사회주의자였다는 사실을 보면 오히려 친일파들이 독립 운동가들을 단지 이념의 차이로 빨갱이로 비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친일파들은 미국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투철한 자유주의자로 변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친일을 했더라도 다방면에 민족에 끼친 공로는 많다.” 사실 이 말은 반박할 수는 없다. 일제 강점기 당시 문화, 예술 등에 활동한 사람들 대부분이 친일파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심지어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까지도 친일파였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친일문학가들은 민족을 위하기는커녕 일본을 찬양하는 문학 활동을 주로 했으며 조선인과 독립 운동가들이 고생할 때 그들은 재력을 바탕으로 편안히 제 사리사욕만 채운 사실을 보면 그런 상황에서도 수없이 많은 명작을 남긴 윤동주와 이육사가 자랑스럽다.

“그 당시 친일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창씨개명이다.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는데 조선인 모두가 동의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입학거부, 식량 배급 거부등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전혀 보장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을 보면 식민지 백성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친일파들은 다르다. 어쩔 수 없이 친일파의 길을 걸어야 했던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들은 자발적인 기회주의자였다. 이는 해방 후 미군정으로 갈아타던 친일파들을 통해 알 수 있다. 해방 후 친일파들은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지위가 유지되자 독립 운동자를 가두는 등 조선 백성과는 의지와 차이가 있었다.

현실적으로 해방직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남아 있는 친일파의 후손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우기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자기 몸 희생하며 후손들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겠다는 독립 운동자들의 후손은 가난하게 살면서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겠다는 친일파의 후손들은 부유하게 누릴 것은 다 누리며 그 더러운 습성이 대물림되고 있다. 그렇기에 친일파 후손일지라도 벌은 받아야 하며 독립 운동가들의 후손에게도 도움을 주기 위한 방안을 생각해냈다.

그 방안은 친일파의 후손들에게 새로운 세금을 매겨 그 세금을 독립 운동가들의 후손들에게 주는 것이다. 물론 이는 국가에서 유공자에게 지원하는 것과는 별도여야 할 것이다. 떵떵거리며 사는 친일파 후손의 단지 몇%의 세금만 물어도 매년 모이는 후원금과 성금보다도 많을 것이다. 가난에 헐떡거리며 살고 있는 독립 운동가 후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이 세금의 체납자에 대한 법도 따로 만들어 엄격히 처벌해야 할 것이다.

 

by 초령목 2012. 1. 2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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