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수시가 1달 앞으로 다가오고, 자소서 쓰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 후기를 쓰기가 굉장히 귀찮았다. 

사진도 올리기가 귀찮다.

그래서 간단하게 후기만 쓰고 마치겠다.


한반도 전국토에 발자국을 남기셨던 우리학교 지리선생님이 단 한번도 밟지 못했던 땅, 울릉도. 그리고 독도.

난 운이 좋았던지 2번씩이나 밟을 수 있었다.

게다가 천운이 따라야 들어갈 수 있다는 독도땅을 두번씩이나 밟은 것은 올 한해의 운을 다 썼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나 올해 대학붙어야 하는데. 여기에 쓰면 안되는데.

내 신조는 '유지경성', 하고자 하는 뜻이 있으면 모든지 이루어진다.이다.

그런데 내 인생은 '새옹지마'이다. 인생은 정말로 시소처럼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이 이 인간의 삶이다.

올해도 그렇다. 작년에 골든벨에서 대박터진 후로 나는 쭈우우우우우욱 운이 없었다. 

그래서 '아, 이렇게 계속 운이없으니까 대학 가는 날에는 운수 왕창 터지겠구나.'라며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독도 홍보대사 붙었다네? 독도 우수홍보대사로 레벨업  했네? 1년 50일밖에 못밟는다는 독도 땅 밟았네? 그것도 모자라 길어야 1시간, 그것도 선착장에서 머물 수 있다는 독도를 1시간 30분동안 있다가 산까지 타고 돌아왔네?

인생사 새옹지마. 하필 수시 1달전부터 이렇게 운수가 왕창 터지니 불안하다.

난 망했어. 재수할거야. 이런 재수없는 인생. 아니, 재수 없으면 대학 붙는건가.

아니, 불안하지 않다. 나는 적어도 이 운수가 2달은 지속될거라 믿는다. 그래야만 한다. ㅜㅠㅜㅠㅜ

그러하다.


경악스러운 성비에 놀라, 또 고3이라는 신분때문에 심각하게 캠프에 참여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도 했지만 고3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기위해 결단을 내렸다. 

솔직히 말해서 지방에 사는 대원들보고 '아침 8시 30분까지 포항으로 모이세요'라고 간단하게 공지가 올려져있긴 했는데 처음에는 말이 되는 소리인가? 화낼뻔했다.

일단 나는 대구에 살고 있기때문에 포항까지 빠르면 1시간 이내로 갈 수 있지만, 경북권에 사는 아이들은 정말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부지런히 걸어와야 했다.

수도권에 사는 아이들은 그래도 자정이 다되가는 시간에 미리 모여 같이 버스타고 오는거라 늦을 일 없겠지만 만약 여기서 낙오자가 발생한다면 나는 분명 그것은 영남권 아이가 될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포항에 와보니 서프라이즈. 한명도 빠짐없이 다 왔네. 한명이 지각을 하긴 했는데 알고보니 울릉도 사는 아이.

울릉도 살면서 포항까지 배타고 와서 울릉도로 다시 가야하는 불쌍한... 아이가 아니라 그냥 포항에 있는 고등학교에 유학온 아이란다. 포항에 있으면서 왜 늦었을까.


내 조는 4조였다. 미리 조원들의 블로그를 통해서 대충 어떤 분위기의 아이일까 파악은 해두었지만 실물과 모자이크가 되어있는 블로그 속 사진은 달랐다.

나 이외의 유일한 남자아이는 훤칠하게 생긴게 넌 분명 대성할거라 믿었지만 나머지 여자아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생기가 넘쳐보였다. 어색해서 딱히 그 아이들과 말은 할 수도 말을 걸 수도 없었다. 여자는 참 붙임성이 좋은 포유류라는 것을 느낀 것이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텐데 벌써부터 1년은 함께 지낸 동급생처럼 친해져 있었다. 난 절대 저 속에 들어가서 어울릴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충격적인건 발대식때 영어를 쓰기에 한국어 한마디도 못할 줄 알았던 조장 글로리아 누님께서, 아니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학교 젬마선생님처럼 안녕하이쉐여~라고 발음할 줄 알았는데 완전 플로언트리하게 코리안을 스삐킹 하셨다. 어쩐지 한국말 못하면 조장이 될 수있을리가 없었겠지. 

그나마 동변상련을 느끼던 남자아이는 운좋게 야구를 좋아한다는 공통분모를 찾아 편했다. 마침 TV에서 류현진 메이저리그 선발등판 경기를 보여주고 있었기에 그 어색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게 다행이었다.


 간단히 쓰려고 했는데 벌써부터 글이 길어질 전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바쁜건 매한가지인데 하루종일 자소서 쓴다고 멘탈이 붕괴된 상태라 내가 무슨말을 적는지도 모르겠다. 에라, 쓸 수 있는데 까지 써보자.


 배 안에서 나는 우리조 남자아이(건호)의 옆자리에 앉았다.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3시간. 그 3시간동안 무엇을 하란 말이오.

 우리 옆좌석에는 3조의 남녀가 앉아있었다. 그런데 이미 면식이 있어보이는 지 상당히 친해보였다. 어쩌면 조금 소란스러운 감도 있었지만 차라리  말없이 3시간을 지내는 것보다는 몰래 그 아이들의 대화내용이라도 엿들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말을 트게 된지는 모르겠는데 어느새 그 아이들과 꽤나 친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남들 다 자는데 우리끼리 떠들어 대는게 참 볼만했을거란 생각이 든다.

들어보니 둘다 영남권 아이들이란다. 참고로 건호는 전주아이인데 국사교과서에 나온다는 신흥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란다. 그리고 얘들은 나와 클래스가 다른 것이 난 정말로 평범하디 평범한 어쩌면 평균 이하일지도 모르는 고등학교에서 왔는데 왜 하나같이 명문이고, 사립들인지. 기가 빠질 지경이었다.

3시간은 길었다. 그 중 한 2시간은 그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데 사용한 것 같다. 나머지 1시간은 어디에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울릉도에 도착했다. 밥먹고 한일은 걷기.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물론 다른 것도 했다. 워킹 앤드 워킹.

독도 박물관까지 걷기만 했다. 이것은 마치 마라톤을 방불케 했다. 햇볕을 쨍쨍 모래알... 아니 콘크리트 곱게 포장된 울릉도 길거리는 반짝한 날이었다. 예전에 울릉도에 왔을 때 한번쯤은 걸어봤던 코스. 난 유경험자에 대구 촌놈이라 체력이 남아돌아서 선두그룹에서 걸었다.

어쨌든 걸었다. 딱히 적을 것도 없게 그냥 걸었다.

대충 몇분 기다리고 보니 결국은 다 도착하더라.

독도박물관은 달라진 게 없었다. 여기서는 무슨 독도박물관을 관람하고 느낀점을 적어야 할텐데 귀찮으니 생략하겠다.

안그래도 멘탈이 붕괴된 상태인데

"독도박물관에 갔다와보니 일본에 대항할 수 있는 많은 사료들이 전시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일본이 직접 그린 한국령 독도지도, 그것을 본 순간 나는 가슴이 울컥하기 보다는 오히려 짜증이 났다. 아니 이렇게 많은 증거들이 버젓이 전시되어 있는데, 도대체 일본은 어떻게 저리 뻔뻔하게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증거가 하나씩 둘씩 발견될때마다 한걸음씩 물러서는 그들이 가증스러웠다. 그들이 하는 말에는 모순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화가나는 것은 그런 일본을 등진 채 세계를 향해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우리의 신세가 처량해보였다.'

라고 설명하기엔 나는 너무 피곤하다.


다음에는 무엇을 했을까. 아,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 선을 따라 쭈욱 올라가서, 이번엔 산을 탔다. 아니 산이라 하기엔 조금 민망한 오솔길을 타고 조그마한 정자로 들어가서 포토타임.

여기서도 관람평을 날려주자.

'울릉도의 전경은 아름다웠다. 옛날에 한번 울릉도의 땅을 밟았을 때 나는 이곳을 동해바다의 제주도라 칭한 적이 있었다. 세계적인 관광지 제주도와 비견될 절경이 눈앞에서 펼쳐있었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그래, 옛사람의 말이 떠오른다. 이게 울릉도여, 그림이여? 저 먼 바다에서 거센 파도를 가르며 달려오는 배가 내 눈에 포착되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저기 멋진 절경이 보인다. 그것도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그냥 한걸음 발을 뗄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 찍고 또 찍고, 마구 찍어댔다. 그정도로 울릉도의 풍경은 멋졌다.'


그리고 리조트로 와서 휴식시간.

은 개뿔 바에 짐만 놓고와서 그딴 거 없이 다음 특강을 진행했다.

전에도 한번 와본 적 있는 리조트였는데 울릉도에서 가장 좋은 리조트인가 보다. 그림같은 집들이 널려있었다.

말로만 듣던 언덕위의 하얀집들이.


특강은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반크 단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이소라님의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동영상 한두편을 보았던 것 같다.

 이 내용을 토대로 우리는 PT발표를 해야했다. 

위안부와 독도에 관한 홍보전략, 또는 대응전략을 조원들의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보라는 것이었는데

우선 조 이름부터 정하란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소년이라 말을 아꼈다.

그런데 다른 조와 비교되게 우리 조는 너무 조용했다. 오늘 아침에 보았던 그 파릇한 모습들은 어디가고 모두가 입에 재갈이라도 문듯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다못해 내가 그냥 한마디 툭 던졌는데 그게 조 이름으로 결정될 뻔했다.

에라이 부끄럼쟁이들.

내가 한번 물꼬를 틀자, 그제야 아이들도 조금이나마 말을 뱉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 이름은 'Team 4Tune'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문제는 PT발표인데.

다행이 글로리아 누님께서 우리조를 이끌어가서 몇개의 방안을 건져낼 수 있었다.

나도 그 대화에 끼고 싶었는데, 아니 나보다 어린 아이들이 나보도 경험은 더 많아서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앉아있었다

괜히 주눅들어서 안그래도 소심한 소년, 그냥 투명인간이 되고야 만것이었다.

그런데 그 대화내용을 토대로 PT자료를 만드려니 그것도 문제였다.

애들이 말을 안해.

사실 나한테 아이디어는 많았다.

옛날에 캠프 갔을 때 어떤 조에서 싸이월드형식으로 자료를 꾸미길래 저거 참 기발하구나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페이스북이 인기니까 그런 형식으로 써보자.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냥 말을 삼켰다.

그런데 건호가 얘기해주더라. 아이고 예쁜 녀석. 넌 꼭 대성해라.

왜이렇게 우리조는 소심한 것일까. 모두가 거의 손놓고 있는 듯 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반의 반도 완성하지 못했다. 그런데 10분을 남기고 갑자기 조원들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그걸 완성시키는 모습을 보고, 이 아이들은 참 무서운 아이들이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막상 만들고나니 내용이 생각보다 부실해보였다.

그리고 발표.

끝.

'아직은 어색한 조원들과 협력하다 보니 멀기만 했던 거리감이 조금이나마 좁아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하나의 결과를 만들고 나니 뿌듯하긴 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적극적이었다면 분명 우리가 1등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급조하다 보니 부실했다. 그릇도, 그안에 담긴 내용물도 너무 부실했다. 물론 그날 가장 참여율이 저조했던 내가 할말은 아니었지만 아쉬운 마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슨 꿈씨앗 적는 시간이 있었는데 여기서 난 상처를 받았어. 반크 누님에게 무시당했어. 흐허어라미아ㅓㅎ

무안하고 뻘쭘했다. 저주까진 아니더라도 원망할테다. 

근데 다음날 싹 잊음. 나중에 사과를 하시길래 심술을 부렸는데 갑자기 미안해져서 별거 아니었다고 나도 사과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거 쓸 시간에 자소서 한줄이나 더 볼걸. 퇴고는 중요하니까. 그런데 벌써 1시간이 지났다. 젠장.


다음날.

독도갔다.

자 지금부터 계산을 해본다.

독도사관학교 7만명

그 중 발대식 참여자 280명

그중 우수 활동자 45명인데 그중 고등학생 29


7만명 중에 280명 중에 29명에서


1년 365일 중 독도에 갈 수 있는 날이 50일. 그중 독도까지 가는 배가 운항하는 시기를 반타작 해서 대충 25일.

그리고 독도땅을 밟고만 나오는 경우가 다인데 서도 봉우리까지 다 오를 확률

길어봤자 1시간을 정박할 수 있는 독도에서 1시간 30분을 정박할 수 있는 확률.


정리해서 7만명 중에 280명 중에 29명이 365일 중 독도에 갈 수 있는 날 50일 중 배가 출항하는 25일 중에서 운좋게 서도 봉우리까지 다 올라 독도경비대장과 사진을 찍고 1시간 30분동안 포토타임하면소 놀 수 있는 확률은?[10점]


한마디로 나는 운이 좋았다.

독도, 한 두번쯤 와보니까 우리집 안방처럼 지낼 수 있을 정도였다.

아, 참고로 우리집 안방은 덥고 불편함.


'독도대교.

 나는 독도와 상관없는 아이일거라 생각했다. 독도의 파도는 항상 거칠다. 독도가 사람을 허락하는 시간은 고작 50일. 어쩌면 그 독도의 폐쇄성이 나를 독도에서 멀어지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TV에서 나는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진으로 독도라는 아름다운 섬 하나를 보았다. 들리는 말로, 독도는 천연의 모습을 간직한 천해의 섬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독도를 내가 갈 수 없는 이상의 섬, 유토피아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독도의 땅을 밟았다. 독도와 상관없을 줄 알았던 이 아이가 염치없게 독도의 모래향를 맡아낸 것이었다. 독도는 작은 섬이었다. 내 의식속에서 무시당하던 그저 유토피아로 생각했던 그 섬은 거센 파도를 견뎌내던 조그마한 섬이었다. 그리고 살벌했다. 독도의 바닷바람에 털끝하나 움직이지 않는 경비대원들이 마네킹처럼 서있었다. 햇빛을 받으며 파도에 찰랑이던 독도는 생각보다 작았다. 

 내가 관광을 하러 온 것일까? 분명 그 순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기억을 되씹어보자. 나는 독도관광이라는 빛에 묻혀 언제쳐들어올지 모르는 적을 대비하던 그들의 이면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국민적 무관심으로 방치된 독도를 미처 발견해내지 못했다. 독도경비대장과 사진을 찍었다. 사진 한장 찍어달라는 우리의 간곡한 요청에 잠깐 당황한 모습을 하던 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서도를 한바퀴 돌다보니 이름조차 기억이 안나는 작은 등대를 만났다. 그곳에 올라 사진을 그저 아이마냥 좋아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그런데 경비대는 우리에게 간곡히 요청해왔다. 그것은 공개되서는 안되는 곳이니 사진을 삭제해달라. 내 독도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지워달랬다.

 왜? 아직 독도는 전쟁중이었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도 일본이라는 거대한 적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왜 독도에서는 그것을 몰랐을까? 그것을 왜 독도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지금이라도 나는 그들에게 머리숙여 인사한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독도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독도. 홀로 독(獨)에 섬 도(島). 외로운 섬 독도. 그 이름 그대로 독도는 항상 홀로 적들과 맞서싸워왔다. 하지만 우리는 몰랐다. 독도가 수백만년을 거친 파도에 저항해 왔다는 사실도, 일본과 한국이 독도의 두 팔을 붙잡아 서로의 진영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애쓸동안 사지가 끊히는 고통으로 신음해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몰랐다. 우리는 그저 편안한 육지에 턱을 괴고 앉아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실천없는 말뿐으로 독도를 응원하고 있었다.

 독도와 울릉도, 울릉도와 한반도는 끊어져있다. 하지만 다리를 놓자. 울릉도에서 독도로 이어진 우리들의 다리를 놓자. 그 이름 독도대교. 우리의 관심으로 쌓아올린 다리를 놓자. 그 다리를 건너 오늘도 묵묵히 독도를 수비하고 있을 우리의 영웅들에게 꽃다발이라도 전해주자. 외로운 우리의 막내 섬, 독도에게 잘 지내냐고 안부인사라도 전해져보자. 그렇게 독도대교를 쌓아보자.'


와서

연극했다.

우리가 미래에 바라는 꿈을 이루었다고 가정하고 독도와 위안부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해볼지 생각을 해보란다.

오늘은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 볼테다.

오늘따라 조원들도 유난히 참여율이 높았다.

그래 우리 한편의 드라마는 못쓰더라도 적어도 삼류연극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 아니겠는가.

PT는 못하면 그냥 졸작이라 치면 되지만 연극은 못하면 평생의 혹역사가 된다.

내 오그러지는 손발을 펴기 위해서라도 나는 열심히 참여했다.

우리조의 멤버는 화려했다.

주한 외교대사, 백수 큐레이터(그건 바로 나), 국제 판사, 대기업 CEO, 역사학자, 외교관, 검사 겸 대통령 비서 겸 해설자, 그리고 대통령...!!!

내 기억으로 독도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의 해결책은 이것이었다.

우연히 지도조각 발견해서 국제 제판에서 일본에게 승소함.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국 드라마를 써냈다.

한편의 막장 드라마.


롤링페이어 돌리고 끝났다.

사실 난 아직 이름도 못 외웠는데 사실 지금 이 글을 쓰고있는 시간에도 난 너희들 이름 다 못외웠어. 미안하다.

그때는 아직 어색해서 네들 성향을 파악하지도 못해서 좋은 말 쓰지 못해서 미안.


그렇게 둘째날의 밤도 저물었다.

아 사실 독도 감상문 쓸 때, '독도대교' 이거 쓰고 싶었는데 정리가 안되서 포기함.


마지막 밤이라 치킨이라도 시켜먹으려 했더니 그게 안되서 과자 한 1만원치 사서 건호랑 함께 밤을 지새웠다.

내가 몇번이고 말하지만 넌 대성할거야.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에헤야디야.

드디어 후기도 끝이 보이는구나.

근데 마지막 날은 적을게 없음.

배타고 관광함.


그렇게 울릉도에서의 2박 3일은 끝이났다. 끝나는게 못내 아쉬워 번호교환을 한 친구들도 있었다. 아마 카톡게임의 초대장이 날아오겠지. 난 참 운이 좋은 아이다. 제주도도 평생에 1번밖에 가보지 못했는데 남들 못가본 울릉도 독도의 땅은 2번씩이나 밟아보았다. 난 참 운이 좋은 아이다. 그래서 이 운이 수능때 까지 이어질것이라 믿는다. 우리의 동쪽 끝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독도의 기운을 받아 난 아마 대성할 거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간 울릉도여, 영원하라





by 초령목 2013. 8. 18. 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