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부터 매년 동아리 책자를 발행하고 있는 우리 동아리, 역동에서는 올해는 간도와 조선족들에 대한 내용을 중점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동아리 선생님께서 당초 우리의 뿌리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중국을 통해 백두산 등반을 하였는데 그덕분에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그때부터 "아 이 조선족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국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후 간도에 사는 조선족과 우리 민족과의 관계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더불어 독도에 가려 우리가 잊고있던 '간도'라는 땅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계기로 와룡고등학교 역사논술동아리, 역동에서 우리땅 간도를 찾기 위하여 경일대학교 경산캠퍼스를 찾았습니다. 경일대학교에서는 '간도론·독도론'이라는 강좌를 전국에서 최초로 개설하고 최근 역사와 영토 분쟁으로 갑론을박하는 독도와 간도가 우리땅임을 증명하여 강좌를 듣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우리역사의 자긍심을 일깨우고 있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갑작스러운 방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환영하기위해 손수 현수막까지 제작해준 경일대학교의 정성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간도를 알고있다고 자부할 수는 있습니다. 적어도 '간도'라는 땅의 존재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렇기에 네이버 온라인 기부 해피빈을 통해서 간도를 되찾기 위해 제 모든 해피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 자신도 간도를 잘 알고있다고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간도를 되찾기 위해 홍보하는 사이트에서 소개하는 간도는 저를 충족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저에게 "어째서?"라는 궁금증만 유발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저에게는 간도라는 땅은 '우리땅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왜 우리땅인지는 모르겠다."라는 역설적인 호기심을 일으키는 땅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간도에 대한 관심이 식어갈 무렵 때마침 경일대학교에서 '간도론'이라는 강의를 듣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간도를 연구하는 홍영희 교수님을 통해서 그동안 잊혀져왔고 몰랐던 간도에 대해서 상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는 눈으로 읽기엔 길고 지루한 간도의 역사를 우리에게 호소력있는 목소리로 들려주셨습니다. 교수님의 이야기에 저도 의외로 간도에 대해서 무지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간도는 그저 한반도보다 약간 큰 크기에 조선족들이 대부분 살고있는, 또 3000년동안 고조선-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발상지자 활동지였다는 사실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간도는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간도가 원래는 島(섬 도)자를 쓰는 두만강에 있는 하중도라는 사소한 것부터 이미 많은 서양국가들이 간도를 우리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신뢰할 수 있는 지도까지 간도를 알고있었다고 생각했던 저에게 모두 처음듣는 생소한 이야기였습니다. 교수님이 들려주는 간도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1600년대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가 대륙을 정복하게 된 후 간도라는 땅을 신성시 여기며 중립화 하였습니다 .즉, 간도를 포함한 만주지역이 공터가 되어 버린것이죠. 이때 우리민족은 그 간도라는 땅에 들어가 먼저 개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청나라와 조선사이의 국경선이 불분명하게 되자 1712년 양국은 서로 만나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서 국경선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지만 바로 이 백두산 정계비에 적힌 '동위압록 서위토문'이라는 글귀가 200년 동안 청과 조선의 충돌을 일으켜버립니다. 그 당시에 청나라의 명으로 서양 선교사가 그린 지도를 보면 간도땅이 조선의 땅으로 명백히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청나라는 서위토문이라는 글귀가 두만강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은 당연히 토문을 송화강의 지류인 토문강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이 토문이라는 글귀의 해석에 따라 조선은 북방영토를 얻거나 잃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기록들에 의하면 '토문'이라는 글귀는 보통 토문강을 의미하고 있었고, 백두산 정계비를 세울 당시 석퇴라는 돌무더기를 세워 강이 범람할때를 방지하여 국경선을 확실히 하였는데 이 석퇴가 토문강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증거들을 종합하여 볼때 조선의 주장은 당연하였지만 청나라와 군신관계를 맺었던 조선이 강력하게 주장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1905년 을사조약으로 주권을 거의 빼앗긴 조선은 청일간의 1909년 간도협약을 통해 간도를 완전히 빼앗겨 버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을사조약 자체가 늑약이라 불릴 만큼 실효성을 잃어버리는 무효성 조약이었기에 1909년 간도협약역시 무효라고 주장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중국땅이고 또 남북이 서로 갈라진 상태에서 북한과 중국의 관계, 또 국력차이를 생각해볼때 우리가 지금 간도를 우리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시기상조일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간도를 너무 당연히 중국땅이라 생각하는것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과연 국민들이 이런 단편적인 역사만 알고있다면 그렇게 간단하게 중국땅이라고 여길 수 있을까?

 저는 이 모든 사실은 당연히 우리가 처음들을 수 밖에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소리치지만 정작 우리 국민들은 그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뿐 왜 우리땅인지 그 역사조차 상세하게 알고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독도도 이런데 하물며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간도의 역사를 알고있는 사람, 아니 간도라는 땅을 알고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교수님은 그렇게 우리를 일깨워 주셨고 저도 간도를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간도는 빙산의 일각, 바다속에서 조그맣게 튀어나온 빙산만 보고서 간도에 대해 잘 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참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도 아직까지도 예전에 느꼈던 그 호기심을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만큼 저는 간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싶었습니다.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저는 중간중간 떠오르는 호기심을 노트에 적어놓으며 강의를 경청하며 끝나길 기다렸습니다. 물론 교수님의 강의가 끝난 후 보여준 간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제 궁금증 일부가 해결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강의가 끝나자 저는 교수님에게 수년간 묵혀두고 저를 괴롭힌 그 궁금증을 방출했습니다. 제가 물어볼 것은 많았지만 시간은 없었습니다. 어찌보면 제가 하는 질문은 무례하게도 교수님의 간도론에 반박하는 꼴이 될 수도 있지만 그분만이 저의 궁금증을 해결해줄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기에 무례함을 감수하고 교수님께 여쭈었습니다. 다행히 교수님은 시간이 없는 와중에도 흔쾌히 제 질문에 답을 해주셨습니다.

 첫째, 팔레스탄인이 유대인에 의해 쫓겨나서 국제적으로 동정표를 받고있다. 그 지역은 수천년 전에 유대인들이 왕국을 건설하고 살던 곳이었고 그 후 수백, 수천년을 팔레스탄인이 살아오다가 유대인에 의해 갑작스럽게 빼앗긴 땅이다. 간도도 수천년간 우리민족의 원천지이자 우리민족의 활동지이지만 발해를 끝으로 우리민족이 발을 붙인 적이 없었고, 한민족이 떠난 그 자리에는 대신 청나라의 조상인 여진족들이 수백년간 살던 곳이었고 지금은 그 여진족들이 중국의 소수민족화가 되었는데 우리가 과연 유대인처럼 간도를 우리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둘째, 간도가 서양인들에 의해 지도에 우리 영토로 기록된 것은 몇몇 있다. 하지만 그 간도가 우리나라가 제작한 지도에 나온 것은 본적이 없다. 그나마 남아있는 지도는 대한제국시대에 비로소 우리 영토로 표시되었다. 즉 외국사례는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사례가 없다. 이는 조선 백성들이 스스로 넘어가서 개간한 것과 별개로 조선정부는 간도에 대해서 별로 신경쓰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실제로 조선이 간도에 대하여 청나라에 본격적인 항의를 한것은 1800년대 후반, 조선이 개화를 하기 시작할 때였다. 조선정부조차도 무시했던 간도를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것일까?

 셋째, 하나의 근거가 되는 백두산 정계비가 말하는 땅은 북간도 지역이다. 즉, 서위토문이 토문강이 맞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북간도 지역만을 우리의 영토로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서간도, 동간도를 포함한 간도전체지역을 어떻게 우리나라 영토로 주장할 수 있는것인가?

  저의 질문에 교수님이 답변을 해주셨습니다만 정확한 답변은 얻지 못했습니다. 정확한 답변을 듣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번째, 세번째 질문은 아주 약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의 영조가 이미 압록강과 두만강너머의 간도지역까지 간섭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와있었다는 것에서 조선이 간도에 대해 그렇게 무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주었습니다. 또 백두산 정계비 말고도 여러 간도가 우리땅임을 증명하는 자료가 많아 종합적으로 본다면 간도지역 역시 우리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번 간도론에서 안타까운 점은 아직까지도 저의 호기심은 아직 완벽하게 해결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간도라는 땅에 대해서 다시한번 느끼고, 알게된 것만큼은 큰 수확이라고 생각됩니다. 적어도 와룡고등학교의 역동만큼은 간도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다른 누군가보다도 훨씬 간도에 대해서 알게되는 것이니 대한민국 0.1%가 된 기분입니다. 당초 선생님이 계획하셨던 조선족과 한민족, 그리고 간도의 관계에 대해서는 얻은것이 없어 아쉽지만 저는 그것만큼의 큰 수확을 거뒀다고 확신합니다. 좋은 강의를 들려주셨던 홍영희 교수님과 경일대학교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간도론의 홍영희 교수님.




by 초령목 2012. 9. 7. 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