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인가? 비운의 제왕인가? - 궁예(弓裔)] - 1

궁예(弓裔) ~918

'애꾸눈 왕' 궁예. 심각한 정신분열증에 사로잡혀 제멋대로 칼날을 휘두른 폭군인가?

더 나은 이상세계를 꿈꾸다 끝내 좌절하고만 비운의 제왕인가?

보통 사람들의 머리에는 아무래도 후자보다 전자가 더 깊숙히 각인되어 있을 것 같다.

<삼국사기> 궁예전에는 "궁예는 신라 사람이요, 성은 김씨이며 아버지는 47대 헌강왕 혹은 48대 경문왕이다 라고 적고 있다. 엄연한 신라의 왕족이다. 그러나 <제왕운기> 후고구려기에는 "신라 임금 경문왕이 서자를 낳았더니 이가 두겹이라 목소리도 겹쳐졌네. 얼굴이 임금에게 해롭다고 내쫓으니 중으로 행세하며 몰래 돌아다녔네" 라고 출생 비화를 밝히고 있다. 태어날 때 부터 이가 돋아난 궁예. 이는 궁예가 애꾸눈이 된 사연이기도 하다. 궁예는 태어나자마자 죽이라는 왕의 명을 받은 내시에 의해 궐 밖으로 내던져졌는데 다행히 유모가 받아 목숨은 건졌으나 바로 이 때 한쪽 눈이 손가락에 찔려 시력을 잃게 됐다고 한다.

이처럼 궁예는 출생부터 사후까지가 온통 미스터리다. '삼국사기'에는 궁예가 나이 10여세가 되어도 장난이 그치지 않으므로 유모가 '네가 태어나자 나라에서 버려 내가 차마 어쩔 수 없어 몰래 숨어 길러 오늘에 이르렀다. 네가 이렇게 장난이 심하면 다른 사람이 알게 될 터이고 그러면 나와 너는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니 이를 어찌하랴?"라고 한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때까지만 해도 후대에 '정신분열자' '과대망상자'라는 소리를 들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세달사를 거쳐 '기훤'과 '양길'의 휘하에 들어가 큰 공을 세운 궁예는 부하를 자신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공명정대한 지휘관으로 성장한다.

궁예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삼국사기'에서 마저 사졸과 함께 달고 쓰고 힘들고 편안함을 같이하는가 하면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엄정한 장수로 그리고 있다. 이런 덕망과 수업을 쌓은 궁예는 신라에 반대하는 호족 세력을 기반으로 삼아 장군으로 추대된 인물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896년 '고려'라는 나라를 세운 이래 18년 제위동안 국호를 '마진'으로, 다시 마진에서 '태봉'으로 바꿀 만큼 호족들과의 사이에서 수많은 역경과 고뇌를 치른 왕이라 할 수 있다. '마진'은 범어로 마하(크다)와 진단(중국)의 약어로 '대동방국'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궁예는 고구려라는 특정국가를 계승하기 보다는 신라와 백제는 물론 그 이상의 대륙까지 아우르는 통일 대제국을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때문에 고구려계 호족들은 반발하게 되고 점차 입지가 흔들린 궁예는 '이국이나 다름없는' '송악'을 떠나 처음 도읍을 정했던 '철원'으로 천도를 단행한다.

by 초령목 2012. 3. 28. 2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