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독도 홍보대사 3기> 오류 제보 및 시정 미션


1년전부터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나는 페이스북을 잘 하지는 않지만 세계 10억 인구가 사용한다는 페이스북 지도에서 동해를 "Sea of Japan"으로 그리고 독도를 "Liancourt Rocks"라는 이름으로 버젓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인들중에 동북아시아의 조그마한 바다와 정말 먼지만한 섬을 볼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느냐만은 적어도 한국인으로서 섭섭한 감은 없지 않아 있었다.


내 분을 겨우 참고있던 중 나는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로 임명되었다. 이왕 홍보대사가 된거 이런 오류를 시정해주어야하지 않겠는가?





일단 21세기 이순신 오류시정 프로젝트 사이트(http://korea.prkorea.com)에 가서 오류제보부터 해보았다.

제보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두근한데 내가 서한 메일은 보낼 수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어차피 저쪽은 내 얼굴을 모를터. 오늘같이 익명성이라는 놈한테 고마움을 느낀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없던 자신감이 생기면서 결국은 질렀다.




Hey, bing Maps!

사이트까지는 잘 찾아갔는데 도대체 항의 메일을 어디로 보내야하는건지 한창 헤멨다.




영어와 담을 쌓은 네놈이 외국계 대기업을 상대로 어떻게 항의를 했느냐?


반크 단장님이 가르쳐주신 비장의 기술

컨트롤 씨 컨트롤 브이로 쉽게 해결.


그리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항의 서한을 보냈다.

우어.


좋은 답변이 오기를 기대해보겠다.


by 초령목 2013. 5. 7. 00:08

0. 발대식 전

4월 13일 토요일. 전국 250여명의 독도홍보대사들이 경상북도청에서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 발대식을 가졌다. 대구에 경북도청이 있다는 사실만 알뿐, 사실은 대구시청도 가본적이 없는 나였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대구 사람이라지만 도청 가는 길은 타지에서 올라온 홍보대사만큼이나 낯설었다. 그래도 내가 대구출신이이라서 '일찍 가서 앞자리나 차지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버스를 탔는데 생각보다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KTX를 타고 여기까지 왔을 다른 홍보대사들을 생각하니 불평을 토할수는 없었다

아침부터 친구랑 논다고 밥을 먹지 않았다. 나의 탄생기념으로 원래는 친구와 고기를 먹을 생각이었지만 아침을 먹기도 전 내 돈 2만원을 뜯어가고 쫓겨났기 때문에 아침부터 발대식이 끝나는 6시까지도 굶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맙게도 관계자분들이 일용할 양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빵과 우유. 고기에 비할바는 못하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없던 나는 빵도 우걱우걱, 우유도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주위에서 사진을 찍길래 나도 사진을 찍고는 싶었다. 원래 사진 찍는것을 싫어하는 나였지만 이런 큰 행사가 있으면 추억으로라도, 증거로라도 사진 한장쯤은 남겨놓는게 좋다는 것 쯤은 알고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없었다. 같이 함께하는 일행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으거늘, 안타깝게도 내 일행은 없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지나가는 모르는 아저씨 한명을 붙잡고 인증샷. 

홍보대사 명단을 확인해보니 나랑 같은 학교출신의 학생이 한명 있기는 한 것 같았지만, 나도 그 사람을 모르고, 그 사람도 나를 모르니 어찌 만날 방도가 없었기에 나홀로 맨뒤에 아무자리에 착석하여 곧 시작할 발대식을 준비했다. 시간이 좀 널널하게 남길래 들어올때 관계자들이 나눠주었던 홍보물들 보며 시간을 떼웠다. 반크의 주요 활동이 '지도 제작(?)'인 만큼 지도가 반이었다.

무려 250:1의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홍보대사들 사이에서 '이경희'라는 이름을 발견하니 흥분되기하고도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기도 했다.


1. 개식 및 반크 동해,독도,한국홍보 동영상 상영

 본격적인 특강에 앞서 250여명의 홍보대사들에게 반크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해주기위한 영상이었다. 반크에 대해서 들어보기만 했을뿐 내가 반크와 관련된 활동을 할거라고는 생각도 해본적도 없었기에 꽤나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게임을 비롯한 모든 온라인 활동에 '현금'을 사용한다는 것에대해 거부감이 있었다. 그래서 가입비가 필요한 반크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망설임을 느꼈고, 결국은 내 신조에 못이겨 반크가입을 포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첫번째 반크의 활동과 취지·목적에 대한 동영상이었다. 자발적인 참여를 강조하며 우리에게 더 친숙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반크의 목적이라고 한다. 두번째 10가지 독도 홍보전략에 대한 동영상이었다. 말그대로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독도를 소개하려면 이것만큼은 기억하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동영상들을 보면서 뭔가를 느꼈다기보다는 동영상의 구성력이 좋다고 감탄하고 있던 내가 이상한 것일까? 동영상의 초장에는 일본이 한반도 지배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일본은 시모노세기조약, 청일전쟁, 영일동맹, 러일전쟁 등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전세계로부터 정식으로 한반도의 지배권을 인정받게된다. 그리고 마침내 이루어진 한일강제합병. 동영상에서는 이런 방식을 현재 일본이 독도를 침탈하는데 똑같이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빗대어 신정한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국제사회가 일본의 독도 소유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짚어주며 자연스럽게 우리가 독도를 홍보하는 10가지 전략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갔다.


 독도에 대해서는 여태껏 많은 자료들을 봐왔고, 여러 글들을 써왔기때문에 동영상에서 소개해준 여러 사건들보다는 동영상의 구성력에 대해 느낀 것이 더 많았다. 사실 반크를 보며 느낀것은 독도 홍보를 외국인에게만 치중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던 차였다. 하지만 이런 동영상을 보며 반크가 역시 우리나라 네티즌도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인이라면 느낄 수 있는 반일감정을 활용하여 동영상 초장에서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고, 자연스럽게 독도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냈다. 

 내가 여태껏 글을 쓰면서 느낀것은 우리나라 네티즌들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정보를 주었나'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관심을 이끌어낼수 있는가'다. 백날 자료를 모아서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그 많은 자료를 일일히 읽고, 볼 사람들이 어디있겠는가? 그런면에서 반크가 제작한 독도 홍보영상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2. 특강 :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그 위대한 도전(박기태 반크단장)


솔직히 말해서 저렇게 젊으신 분이 반크를 만드신 단장일줄을 생각도 못했다. 고작 20평 너비에 불과한 반크 사무실에서 지금과 같은 위상으로 발전시킨 박 기태 단장 님의 특강이 시작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오늘 들었던 6~7개의 강의들 중에서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강의를 뽑으라면 나는 박기태 단장님의 강의를 뽑고싶다. 다른 강의들과는 달리 단장님의 강의에는 단장님만의 '스토리'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볼품없는 '무스펙'청년에 불과한 사나이가 10만명의 회원이 대한민국을 위해 전세계에서 황동하고 있는 반크의 창시자라는 말을 들으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기술, 인맥, 자본, 지성. 넷 중 어느 하나 갖추지 못한 야간대학출신의 무일푼 사나이었다. 원래 그의 꿈은 관광가이드가 되어 평범한 가장이 되는 것. 취직을 위해 여러곳에 지원을 해봤지만 가진 스펙 하나없는, 토익 600점에 지나지 않는 이 청년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받아주는 곳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가이드가 되보겠다는 일념으로 무턱대고 덕수궁 땅바닥에서 앉아서 기다렸다. 그리고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흔쾌히 자신이 '무료로 너의 가이드가 될테니 믿어달라'라고 자신을 광고한다. 하지만 그에게 가이드를 맡기는 외국인은 없었다. 그저 지나가는 잡상인 정도라고 판단했던 것. 그렇게 좌절하고 있던 차, 그는 이번에는 일본인 노인에게 '너의 가이드가 되겠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일본인 노인은 고맙다면서 그에게 가이드를 받게된다. 처음으로 가이드를 맡은 그는 감동하여 무려 장장 5~6시간동안 서울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열정적으로 노인에게 가이드를 해준다. 그리고 어느 호텔, 모든 가이드일이 끝나자 일본인 노인은 그에게 다가와서 '고맙다'고 말한다. 어찌보면 이 무턱대고 했던 그의 행동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결정적인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일본인 노인을 만나고 자신감을 얻은 그는 이번엔 무턱대고 전세계의 대학교에 메일을 보낸다. "당신의 학생들을 가이드하고 싶다!" 무려 1000여통의 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이 온것은 무려 100여통. 그 100여통의 메일 중에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Dear. 기태"로 시작하는 호주의 한 대학교에서 온 발신. 이 대학교에서 한국과를 신설했는데 한국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고민하던 찰라에 그에게 메일이 날아왔던 것이다. 대학교에서는 그에게 100여명의 학생들의 정보를 보내며 '펜팔'을 하고싶다는 제안을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것이 바로 반크. 초창기의 반크는 지금과 같은 사이버외교사절단이 아닌 조그마한 펜팔사이트였던 것이다.

하지만 펜팔사이트에 불과했던 반크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와 수많은 '학생회원'들이었다. 펜팔을 하던 중 'National Geography(N.G)"라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교과서를 만드는 곳에서 한국에 대한 오류를 발견한 것이다. 정부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아서 직접 반크 회원들과 오류를 시정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는 마침내 N.G에서 공식적인 답변으로 수정할 것을 다짐받는다. 이렇게 작은 펜팔 사이트에 불과했던 반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속의 한국에 대한 오류를 발견하며 시정해나가며, Sea of Japan이 아닌 동해라는 이름으로, 다케시마가 아닌 독도라는 이름의 지도를 배포하며 오늘날의 반크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활동이 빛을내며 10년전 세계지도에서 3%에 불과했던 '동해'표기가 현재 약 30%이르게 되었다.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바로 우리 청소년들과 그 반크를 만들어냈던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껏 나는 내 정신적 지주가 될 멘토를 찾지 못했다. 어렵사리 찾은 나의 롤모델은 하인리히 슐리만. 비록 그의 업적에 대해서 빛과 어둠자가 확실한 사람이지만 나는 그의 일화에서 와닿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렸을적 트로이 전쟁신화를 듣고 내가 직접 트로이를 발굴하겠다"라고 생각하고는 진짜로 전설속에서나 믿어졌단 트로이 전쟁이 실존했던 것을 밝혀낸 위대한 학자. 내가 그를 롤모델로 꼽은 까닭은 어렸을 때의 꿈을 잊지 않고 결국은 실현해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이 박기태 단장님이라면 내 멘토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도 소박한 꿈은 있다. 길게 보자면 '시골에 한옥집을 짓고 살고, 작은 폐교를 사서 개인 박물관을 꾸며 사는 것.",그리고 지금 당장 현재를 보자면 '역사에 관련된 일을 하며 내 스스로가 역사를 찾아나가는 것." 꽤나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다. 하지만 박기태 단장님의 사례처럼 오직 '꿈'을 위해 달려나가다보면 언젠가는 그것이 실현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도 내 꿈을 향해서 달려가다보면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3. 특강 : 태정관지령과 안용복(이소리)

이분은 독도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소개해주셨다. 비록 나는 이미 알고있던 내용들이었지만 독도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유익한 강의였던 것 같다.

처음은 일본의 교과서 왜곡사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불과 10년전까지만 하더라도 독도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일본이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독도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었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할때마다 일본의 기세가 한풀꺾이고 있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로웠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못박았던 일본은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의 반발에 이렇다할 대응을 하지 못하고 은근슬쩍 "메이지 이후로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수정했다.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이 근거로 내어놓은 것은 바로 메이지 당시 일본 최고의 기관이었던 태정관의 발언이었다. "울릉도 독도를 시마네 현으로 넣어도 되는가?"라는 문의에 태정관에서는 "전혀 상관없는 섬이다."라고 기록한 내용이 고스란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안용복이라는 조선인이 직접 일본열도로 찾아와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받았으니 일본으로서는 할말이 없었다. 한국과 일본 두곳의 문헌에 모두 안용복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일본처럼 뻔뻔한 나라가 어디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저질러 놓고 본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해야할까? 아무런 검증을 받지 않고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외무부, 교과서에 써놓고, 정작 일본인 학자들에게조차도 비판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아무말 없이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에서 '메이지 이래로'라는 말을 교묘하게 첨가했으니 말이다. 세계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일본을 만만히 여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100년, 아니 수백년간 일본의 만행과 만용을 봐왔기때문에 가능한것인지도 모르겠다.


4. 교육1) 스마트 독도 및 한국문화홍보 사례(김새봄)

타칭, 오늘 나온 강사들중 가장 아름답다는 분이었지만 아쉽게도 이분의 모습이 제대로 찍힌 사진은 없었다.

이 교육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국내외 외국인과 내국인을 대상으로(누가) 항상(언제) 온라인, 오프라인 구분없이(어디서) 전략을 가지고(무엇을) 직접 활동하면서(어떻게) 나의 꿈과 대한민국과 지구촌을 연결하기 위해(위해) 홍보한다."

이 교육에서 가장 유익했던 것이라면 '전략을 가지고'였다. 나는 이 독도홍보대사에 합격하고 많은 생각을 해봤다. 무턱대고 지나가는 외국인을 만나서 무턱대고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해보세요"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길가는 사람들에게 "도를 믿으십니까?"라고 하는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전략을 짜야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런 내 고민을 말끔히 해소시켜주었다.

말그대로 전략을 짜는 것이다. 미국과 같이 인권을 중요시 여기는 국가에서 온 외국인에게는 위안부 이야기를 연결시키며 일본의 만행에 대해서 알리고, 한류열풍이 부는 국가에서 온 외국인은 일제강점기 드라마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순수하게 관광을 하러 온 외국인은 여러 관광지와 섬들을 독도와 연결하며 시작하며, 일본 제국주의 침략역사를 공유하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그 치욕스런 역사를 이야기의 시작으로 잡는다.


이 수업에서 나는 양심이 찔리기도 했다. 마지막에 강사분이 말하기를 '반크를 스펙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진솔하게 말하자면, 내가 이 독도홍보대사를 신청할 때 분명 '스펙으로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스펙으로의 활용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활동을 스펙으로 당당히 활용할 수 있을만큼 독도를 홍보할 수 있다면? 나는 당당하게 '독도홍보대사'라는 닉네임을 어디서든 사용하고 싶다.


5. 교육2) 독도 및 한국 홍보 스토리텔링(이정애)

독도를 홍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자신의 이야기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생각은 크게하되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로 작은 시작을 한다. 또 한국인이라는 편협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인의 눈으로 우리의 독도를 홍보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인의 눈으로 보는 것은 쉽다. 세계인들은 넬슨이라는 해군장교를 알지만 이순신이라는 위인은 모른다. 링컨이라는 인권대통령은 알지만 세종대왕이라는 조선 최고의 성군은 모른다. 우리나라 위인들과 공통분모를 가진 세계의 위인들을 함께 설명하며 이해를 돕는 것이다.

독도를 아예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세계지도를 배포하고 문화컨텐츠를 이용해서 홍보를 한다.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아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새로운 헤이그 특사가 되어 일본의 과거 만행을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독도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일본의 독도주장을 지지하는 사람에게는 논리와 지식을 갖추고 철저하게 대응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홍보하는 외국인들을 그저 홍보하는 대상으로 보지말고 진정으로 친구가 되는 것이다. 나와 상대에 대해서 서로 알고, 알리고 싶은 것과 알고 싶은 것을 잘 구분하며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이 강의에서 나는 당황했다. '생각은 크게하되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곁들인 말씀은 '역사, 철학 등은 어려울 수 있으니 자신의 관심분야로 시작하세요~' 그런데 내 관심분야는 역사인데. 독도 홍보대사로서의 앞날이 걱정된다.


6. 교육3) 동해,독도,한국오류 발견 비법(임현숙)



외국인들이 아시아인을 인식하는 순서. 

"중국인입니까?" 

"아니요."

"일본인입니까?"

"아니요."

"아! 그럼 한국인입니까?"

"네."

강사님께서는 왜 한국은 항상 중국과 일본 다음일까? 라는 문제에 대해서 그 원인은 전세계의 교과서라고 판단했다. 중국이  교과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쪽, 일본은 5쪽 그에반해 한국은 고작 1장. 

괜히 노파심에 반박을 해보자면 이것은 우리에게 심각성을 부각하고자 하는 강사선생님의 억지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외국인들에게 아시아 하면 '중국, 일본'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 아닌가? 우리가 전세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세기 후반. 그에반해 중국은 이미 사막길, 바닷길, 초원길을 통해 깊게 들어가보면 기원전, 한나라시대부터 서양과 교류를 해왔다. 또 제국주의가 성행하던 19세기때도 서양열강들은 중국은 아시아의 최강국가로 인정했고, 현대에 들어와도 미국과 함께 세계 2강으로 불리고 있다. 일본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보다는 훨씬 일찍 16세기에 개항을 시작했고, 세계 2차대전의 전범국이며 현재에도 세계 최고의 선진국으로 위엄을 펼쳐내고 있다. 

그에 반해 한국은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최빈국이었고 주위의 아시아 2대국에 비해서는 초라하기 짝이없는 나라였지만 최근 급격한 성장을 한 '신흥국가'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나는 '중국, 일본 다음으로 떠올리는 아시아 국가'라는 위상에 대해 놀랍다고 생각한다. 불과 20년만에 급격한 발전을 이룩하여 인도, 필리핀, 홍콩 등을 밀어내고 아시아 3강국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 강의에서는 오류가 시정된 많은 사례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두 서한 한장을 보냈을 뿐인데 오류가 시정되었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일본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나는 고작 편지 한장으로 세계의 오류가 시정되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반크는 해낸 것이다. 사례를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던 내가 괜히 무안해졌다.

오류 시정 활동의 핵심은 내가 나라를 대표하는 독도 외교대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7. 격려 및 강연(경상북도지사)

여기서 도지사님을 보게될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번 활동이 경상북도와 함께 한다는 것은 알았찌만 경상북도지사님께서 직접 우리를 환영하러 오시다니. 정치에 발을 담그신 분이고, 연륜이 깊으셨기 때문에 꽤나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될 줄 알았던 강연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예상을 깨고, 도지사님의 강연은 재미있었다. 마치 옆집 아저씨를 보는듯한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물론 난 옆집 아저씨가 누군지 모르지만) 도지사님의 강연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독도 문제가 나오면 바로 우리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당당하게 주권을 행사라는 말이 핵심이었다. 우리의 눈높이를 맞춰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지, 분위기가 가라앉을만하면 중간중간에 농담도 건네면서 꽤나 가벼운 분위기속에 도지사님의 강연을 끝까지 경청할 수 있었다.


8. 비전 선포식

당당하게 말하자면 나는 내 비전을 이렇게 썼다.

"내 손으로 역사를 바로잡고 싶다."

이것은 비단 독도에 관련된 문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내 손으로 우리의 잃어버린 과거와 역사를 새롭게 쓰고 싶다.

그리고 이것은 비전선포식에서 주은 누군가의 꿈

어차피 나는 고3이라 어떤 학생들보고도 "야"라고 부를 수 있는 처지니 말해주고 싶다.

비록 나는 얼굴도 모르는 스쳐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하지만 

꼭 훌륭한 역사교사가 되기를 빌어.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드물었는데 반갑다. 

역사의 방대한 내용에 식겁해서 지루해하고 싫어하는 아이들에게도 우리 역사는 재밌는 것이라고 알려줬으면 좋겠다.


Article

어쩐지 카메라 렌즈가 도지사님쪽으로 갔다고 했더니 역시나 나는 나오지도 않고 짤렸구나.


9. 발대식 후

 무엇보다도 6시간의 강의를 들어야 했기때문에 지루할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강사(?)분들의 말재간이 좋아서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몰입해서 들은 것 같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시간은 정말 칼같이 지킨다는 것. 5:40에 모든 일정을 마친다고 하길래 대부분의 행사가 그렇듯 30분정도는 초과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로 시간을 철저하게 지켜줬다는게 고마웠다. 덕분에 집에 갔는데도 해가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여태껏 독도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역사를 좋아하긴 하지만 독도에 그리 많은 관심을 가진적은 없었다. 하지만 글을 쓰다보니, 또 동아리를 활동하다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독도와의 연결고리가 생기게 되었다. 심지어 남들 한번 발담그기 어렵다는 독도에서 춤까지 추고 온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글로벌 독도홍보대'라는 타이틀까지 생겨버렸다. 아직까지도 나는 독도와 밀고당기기, 흔히 밀당은 끝나지 않았지만 나는 어쩔수없이 독도와 한배를 탄 사람인 것 같다.



 

독도를 가슴에 품고 대한민국을 세계로! 



by 초령목 2013. 4. 14.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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