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발대식 전

4월 13일 토요일. 전국 250여명의 독도홍보대사들이 경상북도청에서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 발대식을 가졌다. 대구에 경북도청이 있다는 사실만 알뿐, 사실은 대구시청도 가본적이 없는 나였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대구 사람이라지만 도청 가는 길은 타지에서 올라온 홍보대사만큼이나 낯설었다. 그래도 내가 대구출신이이라서 '일찍 가서 앞자리나 차지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버스를 탔는데 생각보다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KTX를 타고 여기까지 왔을 다른 홍보대사들을 생각하니 불평을 토할수는 없었다

아침부터 친구랑 논다고 밥을 먹지 않았다. 나의 탄생기념으로 원래는 친구와 고기를 먹을 생각이었지만 아침을 먹기도 전 내 돈 2만원을 뜯어가고 쫓겨났기 때문에 아침부터 발대식이 끝나는 6시까지도 굶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맙게도 관계자분들이 일용할 양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빵과 우유. 고기에 비할바는 못하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없던 나는 빵도 우걱우걱, 우유도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주위에서 사진을 찍길래 나도 사진을 찍고는 싶었다. 원래 사진 찍는것을 싫어하는 나였지만 이런 큰 행사가 있으면 추억으로라도, 증거로라도 사진 한장쯤은 남겨놓는게 좋다는 것 쯤은 알고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없었다. 같이 함께하는 일행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으거늘, 안타깝게도 내 일행은 없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지나가는 모르는 아저씨 한명을 붙잡고 인증샷. 

홍보대사 명단을 확인해보니 나랑 같은 학교출신의 학생이 한명 있기는 한 것 같았지만, 나도 그 사람을 모르고, 그 사람도 나를 모르니 어찌 만날 방도가 없었기에 나홀로 맨뒤에 아무자리에 착석하여 곧 시작할 발대식을 준비했다. 시간이 좀 널널하게 남길래 들어올때 관계자들이 나눠주었던 홍보물들 보며 시간을 떼웠다. 반크의 주요 활동이 '지도 제작(?)'인 만큼 지도가 반이었다.

무려 250:1의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홍보대사들 사이에서 '이경희'라는 이름을 발견하니 흥분되기하고도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기도 했다.


1. 개식 및 반크 동해,독도,한국홍보 동영상 상영

 본격적인 특강에 앞서 250여명의 홍보대사들에게 반크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해주기위한 영상이었다. 반크에 대해서 들어보기만 했을뿐 내가 반크와 관련된 활동을 할거라고는 생각도 해본적도 없었기에 꽤나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게임을 비롯한 모든 온라인 활동에 '현금'을 사용한다는 것에대해 거부감이 있었다. 그래서 가입비가 필요한 반크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망설임을 느꼈고, 결국은 내 신조에 못이겨 반크가입을 포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첫번째 반크의 활동과 취지·목적에 대한 동영상이었다. 자발적인 참여를 강조하며 우리에게 더 친숙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반크의 목적이라고 한다. 두번째 10가지 독도 홍보전략에 대한 동영상이었다. 말그대로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독도를 소개하려면 이것만큼은 기억하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동영상들을 보면서 뭔가를 느꼈다기보다는 동영상의 구성력이 좋다고 감탄하고 있던 내가 이상한 것일까? 동영상의 초장에는 일본이 한반도 지배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일본은 시모노세기조약, 청일전쟁, 영일동맹, 러일전쟁 등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전세계로부터 정식으로 한반도의 지배권을 인정받게된다. 그리고 마침내 이루어진 한일강제합병. 동영상에서는 이런 방식을 현재 일본이 독도를 침탈하는데 똑같이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빗대어 신정한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국제사회가 일본의 독도 소유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짚어주며 자연스럽게 우리가 독도를 홍보하는 10가지 전략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갔다.


 독도에 대해서는 여태껏 많은 자료들을 봐왔고, 여러 글들을 써왔기때문에 동영상에서 소개해준 여러 사건들보다는 동영상의 구성력에 대해 느낀 것이 더 많았다. 사실 반크를 보며 느낀것은 독도 홍보를 외국인에게만 치중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던 차였다. 하지만 이런 동영상을 보며 반크가 역시 우리나라 네티즌도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인이라면 느낄 수 있는 반일감정을 활용하여 동영상 초장에서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고, 자연스럽게 독도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냈다. 

 내가 여태껏 글을 쓰면서 느낀것은 우리나라 네티즌들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정보를 주었나'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관심을 이끌어낼수 있는가'다. 백날 자료를 모아서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그 많은 자료를 일일히 읽고, 볼 사람들이 어디있겠는가? 그런면에서 반크가 제작한 독도 홍보영상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2. 특강 :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그 위대한 도전(박기태 반크단장)


솔직히 말해서 저렇게 젊으신 분이 반크를 만드신 단장일줄을 생각도 못했다. 고작 20평 너비에 불과한 반크 사무실에서 지금과 같은 위상으로 발전시킨 박 기태 단장 님의 특강이 시작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오늘 들었던 6~7개의 강의들 중에서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강의를 뽑으라면 나는 박기태 단장님의 강의를 뽑고싶다. 다른 강의들과는 달리 단장님의 강의에는 단장님만의 '스토리'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볼품없는 '무스펙'청년에 불과한 사나이가 10만명의 회원이 대한민국을 위해 전세계에서 황동하고 있는 반크의 창시자라는 말을 들으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기술, 인맥, 자본, 지성. 넷 중 어느 하나 갖추지 못한 야간대학출신의 무일푼 사나이었다. 원래 그의 꿈은 관광가이드가 되어 평범한 가장이 되는 것. 취직을 위해 여러곳에 지원을 해봤지만 가진 스펙 하나없는, 토익 600점에 지나지 않는 이 청년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받아주는 곳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가이드가 되보겠다는 일념으로 무턱대고 덕수궁 땅바닥에서 앉아서 기다렸다. 그리고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흔쾌히 자신이 '무료로 너의 가이드가 될테니 믿어달라'라고 자신을 광고한다. 하지만 그에게 가이드를 맡기는 외국인은 없었다. 그저 지나가는 잡상인 정도라고 판단했던 것. 그렇게 좌절하고 있던 차, 그는 이번에는 일본인 노인에게 '너의 가이드가 되겠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일본인 노인은 고맙다면서 그에게 가이드를 받게된다. 처음으로 가이드를 맡은 그는 감동하여 무려 장장 5~6시간동안 서울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열정적으로 노인에게 가이드를 해준다. 그리고 어느 호텔, 모든 가이드일이 끝나자 일본인 노인은 그에게 다가와서 '고맙다'고 말한다. 어찌보면 이 무턱대고 했던 그의 행동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결정적인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일본인 노인을 만나고 자신감을 얻은 그는 이번엔 무턱대고 전세계의 대학교에 메일을 보낸다. "당신의 학생들을 가이드하고 싶다!" 무려 1000여통의 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이 온것은 무려 100여통. 그 100여통의 메일 중에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Dear. 기태"로 시작하는 호주의 한 대학교에서 온 발신. 이 대학교에서 한국과를 신설했는데 한국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고민하던 찰라에 그에게 메일이 날아왔던 것이다. 대학교에서는 그에게 100여명의 학생들의 정보를 보내며 '펜팔'을 하고싶다는 제안을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것이 바로 반크. 초창기의 반크는 지금과 같은 사이버외교사절단이 아닌 조그마한 펜팔사이트였던 것이다.

하지만 펜팔사이트에 불과했던 반크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와 수많은 '학생회원'들이었다. 펜팔을 하던 중 'National Geography(N.G)"라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교과서를 만드는 곳에서 한국에 대한 오류를 발견한 것이다. 정부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아서 직접 반크 회원들과 오류를 시정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는 마침내 N.G에서 공식적인 답변으로 수정할 것을 다짐받는다. 이렇게 작은 펜팔 사이트에 불과했던 반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속의 한국에 대한 오류를 발견하며 시정해나가며, Sea of Japan이 아닌 동해라는 이름으로, 다케시마가 아닌 독도라는 이름의 지도를 배포하며 오늘날의 반크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활동이 빛을내며 10년전 세계지도에서 3%에 불과했던 '동해'표기가 현재 약 30%이르게 되었다.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바로 우리 청소년들과 그 반크를 만들어냈던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껏 나는 내 정신적 지주가 될 멘토를 찾지 못했다. 어렵사리 찾은 나의 롤모델은 하인리히 슐리만. 비록 그의 업적에 대해서 빛과 어둠자가 확실한 사람이지만 나는 그의 일화에서 와닿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렸을적 트로이 전쟁신화를 듣고 내가 직접 트로이를 발굴하겠다"라고 생각하고는 진짜로 전설속에서나 믿어졌단 트로이 전쟁이 실존했던 것을 밝혀낸 위대한 학자. 내가 그를 롤모델로 꼽은 까닭은 어렸을 때의 꿈을 잊지 않고 결국은 실현해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이 박기태 단장님이라면 내 멘토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도 소박한 꿈은 있다. 길게 보자면 '시골에 한옥집을 짓고 살고, 작은 폐교를 사서 개인 박물관을 꾸며 사는 것.",그리고 지금 당장 현재를 보자면 '역사에 관련된 일을 하며 내 스스로가 역사를 찾아나가는 것." 꽤나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다. 하지만 박기태 단장님의 사례처럼 오직 '꿈'을 위해 달려나가다보면 언젠가는 그것이 실현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도 내 꿈을 향해서 달려가다보면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3. 특강 : 태정관지령과 안용복(이소리)

이분은 독도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소개해주셨다. 비록 나는 이미 알고있던 내용들이었지만 독도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유익한 강의였던 것 같다.

처음은 일본의 교과서 왜곡사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불과 10년전까지만 하더라도 독도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일본이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독도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었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할때마다 일본의 기세가 한풀꺾이고 있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로웠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못박았던 일본은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의 반발에 이렇다할 대응을 하지 못하고 은근슬쩍 "메이지 이후로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수정했다.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이 근거로 내어놓은 것은 바로 메이지 당시 일본 최고의 기관이었던 태정관의 발언이었다. "울릉도 독도를 시마네 현으로 넣어도 되는가?"라는 문의에 태정관에서는 "전혀 상관없는 섬이다."라고 기록한 내용이 고스란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안용복이라는 조선인이 직접 일본열도로 찾아와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받았으니 일본으로서는 할말이 없었다. 한국과 일본 두곳의 문헌에 모두 안용복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일본처럼 뻔뻔한 나라가 어디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저질러 놓고 본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해야할까? 아무런 검증을 받지 않고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외무부, 교과서에 써놓고, 정작 일본인 학자들에게조차도 비판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아무말 없이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에서 '메이지 이래로'라는 말을 교묘하게 첨가했으니 말이다. 세계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일본을 만만히 여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100년, 아니 수백년간 일본의 만행과 만용을 봐왔기때문에 가능한것인지도 모르겠다.


4. 교육1) 스마트 독도 및 한국문화홍보 사례(김새봄)

타칭, 오늘 나온 강사들중 가장 아름답다는 분이었지만 아쉽게도 이분의 모습이 제대로 찍힌 사진은 없었다.

이 교육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국내외 외국인과 내국인을 대상으로(누가) 항상(언제) 온라인, 오프라인 구분없이(어디서) 전략을 가지고(무엇을) 직접 활동하면서(어떻게) 나의 꿈과 대한민국과 지구촌을 연결하기 위해(위해) 홍보한다."

이 교육에서 가장 유익했던 것이라면 '전략을 가지고'였다. 나는 이 독도홍보대사에 합격하고 많은 생각을 해봤다. 무턱대고 지나가는 외국인을 만나서 무턱대고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해보세요"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길가는 사람들에게 "도를 믿으십니까?"라고 하는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전략을 짜야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런 내 고민을 말끔히 해소시켜주었다.

말그대로 전략을 짜는 것이다. 미국과 같이 인권을 중요시 여기는 국가에서 온 외국인에게는 위안부 이야기를 연결시키며 일본의 만행에 대해서 알리고, 한류열풍이 부는 국가에서 온 외국인은 일제강점기 드라마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순수하게 관광을 하러 온 외국인은 여러 관광지와 섬들을 독도와 연결하며 시작하며, 일본 제국주의 침략역사를 공유하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그 치욕스런 역사를 이야기의 시작으로 잡는다.


이 수업에서 나는 양심이 찔리기도 했다. 마지막에 강사분이 말하기를 '반크를 스펙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진솔하게 말하자면, 내가 이 독도홍보대사를 신청할 때 분명 '스펙으로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스펙으로의 활용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활동을 스펙으로 당당히 활용할 수 있을만큼 독도를 홍보할 수 있다면? 나는 당당하게 '독도홍보대사'라는 닉네임을 어디서든 사용하고 싶다.


5. 교육2) 독도 및 한국 홍보 스토리텔링(이정애)

독도를 홍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자신의 이야기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생각은 크게하되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로 작은 시작을 한다. 또 한국인이라는 편협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인의 눈으로 우리의 독도를 홍보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인의 눈으로 보는 것은 쉽다. 세계인들은 넬슨이라는 해군장교를 알지만 이순신이라는 위인은 모른다. 링컨이라는 인권대통령은 알지만 세종대왕이라는 조선 최고의 성군은 모른다. 우리나라 위인들과 공통분모를 가진 세계의 위인들을 함께 설명하며 이해를 돕는 것이다.

독도를 아예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세계지도를 배포하고 문화컨텐츠를 이용해서 홍보를 한다.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아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새로운 헤이그 특사가 되어 일본의 과거 만행을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독도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일본의 독도주장을 지지하는 사람에게는 논리와 지식을 갖추고 철저하게 대응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홍보하는 외국인들을 그저 홍보하는 대상으로 보지말고 진정으로 친구가 되는 것이다. 나와 상대에 대해서 서로 알고, 알리고 싶은 것과 알고 싶은 것을 잘 구분하며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이 강의에서 나는 당황했다. '생각은 크게하되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곁들인 말씀은 '역사, 철학 등은 어려울 수 있으니 자신의 관심분야로 시작하세요~' 그런데 내 관심분야는 역사인데. 독도 홍보대사로서의 앞날이 걱정된다.


6. 교육3) 동해,독도,한국오류 발견 비법(임현숙)



외국인들이 아시아인을 인식하는 순서. 

"중국인입니까?" 

"아니요."

"일본인입니까?"

"아니요."

"아! 그럼 한국인입니까?"

"네."

강사님께서는 왜 한국은 항상 중국과 일본 다음일까? 라는 문제에 대해서 그 원인은 전세계의 교과서라고 판단했다. 중국이  교과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쪽, 일본은 5쪽 그에반해 한국은 고작 1장. 

괜히 노파심에 반박을 해보자면 이것은 우리에게 심각성을 부각하고자 하는 강사선생님의 억지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외국인들에게 아시아 하면 '중국, 일본'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 아닌가? 우리가 전세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세기 후반. 그에반해 중국은 이미 사막길, 바닷길, 초원길을 통해 깊게 들어가보면 기원전, 한나라시대부터 서양과 교류를 해왔다. 또 제국주의가 성행하던 19세기때도 서양열강들은 중국은 아시아의 최강국가로 인정했고, 현대에 들어와도 미국과 함께 세계 2강으로 불리고 있다. 일본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보다는 훨씬 일찍 16세기에 개항을 시작했고, 세계 2차대전의 전범국이며 현재에도 세계 최고의 선진국으로 위엄을 펼쳐내고 있다. 

그에 반해 한국은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최빈국이었고 주위의 아시아 2대국에 비해서는 초라하기 짝이없는 나라였지만 최근 급격한 성장을 한 '신흥국가'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나는 '중국, 일본 다음으로 떠올리는 아시아 국가'라는 위상에 대해 놀랍다고 생각한다. 불과 20년만에 급격한 발전을 이룩하여 인도, 필리핀, 홍콩 등을 밀어내고 아시아 3강국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 강의에서는 오류가 시정된 많은 사례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두 서한 한장을 보냈을 뿐인데 오류가 시정되었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일본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나는 고작 편지 한장으로 세계의 오류가 시정되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반크는 해낸 것이다. 사례를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던 내가 괜히 무안해졌다.

오류 시정 활동의 핵심은 내가 나라를 대표하는 독도 외교대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7. 격려 및 강연(경상북도지사)

여기서 도지사님을 보게될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번 활동이 경상북도와 함께 한다는 것은 알았찌만 경상북도지사님께서 직접 우리를 환영하러 오시다니. 정치에 발을 담그신 분이고, 연륜이 깊으셨기 때문에 꽤나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될 줄 알았던 강연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예상을 깨고, 도지사님의 강연은 재미있었다. 마치 옆집 아저씨를 보는듯한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물론 난 옆집 아저씨가 누군지 모르지만) 도지사님의 강연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독도 문제가 나오면 바로 우리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당당하게 주권을 행사라는 말이 핵심이었다. 우리의 눈높이를 맞춰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지, 분위기가 가라앉을만하면 중간중간에 농담도 건네면서 꽤나 가벼운 분위기속에 도지사님의 강연을 끝까지 경청할 수 있었다.


8. 비전 선포식

당당하게 말하자면 나는 내 비전을 이렇게 썼다.

"내 손으로 역사를 바로잡고 싶다."

이것은 비단 독도에 관련된 문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내 손으로 우리의 잃어버린 과거와 역사를 새롭게 쓰고 싶다.

그리고 이것은 비전선포식에서 주은 누군가의 꿈

어차피 나는 고3이라 어떤 학생들보고도 "야"라고 부를 수 있는 처지니 말해주고 싶다.

비록 나는 얼굴도 모르는 스쳐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하지만 

꼭 훌륭한 역사교사가 되기를 빌어.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드물었는데 반갑다. 

역사의 방대한 내용에 식겁해서 지루해하고 싫어하는 아이들에게도 우리 역사는 재밌는 것이라고 알려줬으면 좋겠다.


Article

어쩐지 카메라 렌즈가 도지사님쪽으로 갔다고 했더니 역시나 나는 나오지도 않고 짤렸구나.


9. 발대식 후

 무엇보다도 6시간의 강의를 들어야 했기때문에 지루할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강사(?)분들의 말재간이 좋아서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몰입해서 들은 것 같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시간은 정말 칼같이 지킨다는 것. 5:40에 모든 일정을 마친다고 하길래 대부분의 행사가 그렇듯 30분정도는 초과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로 시간을 철저하게 지켜줬다는게 고마웠다. 덕분에 집에 갔는데도 해가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여태껏 독도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역사를 좋아하긴 하지만 독도에 그리 많은 관심을 가진적은 없었다. 하지만 글을 쓰다보니, 또 동아리를 활동하다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독도와의 연결고리가 생기게 되었다. 심지어 남들 한번 발담그기 어렵다는 독도에서 춤까지 추고 온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글로벌 독도홍보대'라는 타이틀까지 생겨버렸다. 아직까지도 나는 독도와 밀고당기기, 흔히 밀당은 끝나지 않았지만 나는 어쩔수없이 독도와 한배를 탄 사람인 것 같다.



 

독도를 가슴에 품고 대한민국을 세계로! 



by 초령목 2013. 4. 14. 18:56

‘제3기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발대식


Article


(대구경북=뉴스1) 김대벽 기자= 경북도와 반크는 13일 ‘제3기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발대식을 가졌다. 이번 발대식에서 선발된 독도홍보대사 250명은 독도에 관한 교육을 마치면 5월 28일 정식으로 ‘글로벌 독도홍보대사’로 임명장을 받게 된다. 이들은 국제사회에 확신되고 있는 잘못된 독도에 관한 정보를 해외 웹사이트와 교과서를 찾아 올바른 한국의 역사와 정보를 알리고 시정하는 활동을 할 계획이다.2013.4.14/뉴스1




경북도, 청소년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250명 발족
'독도 가슴에 품고 대한민국 세계에 알려요'
기사입력 | 2012-04-16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들이 발대식 후 '독도를 가슴에 품고 대한민국을 세계로'라는 문구를 적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독도를 가슴에 품고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려요!'

경북도는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와 함께 지난 14일 도청강당에서 청소년 250명으로 구성된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발대식을 가졌다.

이들 청소년들은 독도를 가슴에 품고 대한민국의 역사, 문화를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홍보대사로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는 독도와 동해, 대한민국의 역사 오류 정보를 찾아내 전 세계에 올바른 정보를 알리는 임무를 수행한다.

국내에 재학중인 외국인 교환학생, 원어민교사를 대상으로 독도와 동해에 대한 자료를 전달해 독도를 홍보하고,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는 반크의 7만여명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공개모집해 서류전형을 거쳐 선발됐으며, 대구경북지역은 물론 서울, 강원, 대전, 전남, 전북, 부산, 울산 등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다.

김관용 도지사는 "글로벌 독도홍보대사들이 독도와 동해 그리고 대한민국에 대한 왜곡된 세계의 시각을 바로 잡는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http://www.kyongbuk.co.kr/main/news/news_content.php?id=579529&news_area=030&news_divide=&news_local=20&effect=4


'제3기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발대

광고
(대구=연합뉴스) 최수호 기자 = 경북도와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VANK)는 지난 13일 도청 강당에서 '제3기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발대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엔 반크가 '사이버 독도사관학교 홈페이지(dokdo.prkorea.com)'를 통해 선발한 250명의 중·고등학생 및 대학생이 참석, '글로벌 독도홍보대사'로서의 각오를 다졌다. 

이들은 앞으로 세계인을 상대로 독도 및 대한민국 바로 알리기 등의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경북도 등은 이들 중 우수 활동자 45명을 선발해 독도탐방의 기회를 부여할 계획이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여러분들이 독도와 대한민국에 대한 사이버 상의 정보 오류를 바로잡고 국제사회를 설득해 가는 멋진 활약을 펼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203411


경북도, 제3기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발대식 개최
독도사관학교 7만3천명 회원 독도홍보 펼쳐...
기사입력: 2013년04월14일 16시58분
(아시아뉴스통신=김상범 기자)

 13일 오후5시 경북도청 강당에서 열린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 발대식"에서 김관용 경북도지사를 비롯해 글로벌 독도홍보대사들이 자신의 꿈을 쓴 종이비행기를 힘껏 날리고 있다.(사진제공=경북도청)

 경북도와 반크는 13일 경북도청 강당에서 청소년 250명을 대상으로 "제3기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발대식을 개최했다.

 이번 발대식에는 김관용 경북도지사를 비롯해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글로벌 독도홍보대사의 비전을 포스트잇에 써서 붙이고 자신의 꿈을 쓴 종이비행기를 힘껏 날리는 순으로 진행됐다.

 도 관계자는 최근 일본 정부가 국제적 활동을 통해 동해와 독도에 대한 표기 오류가 해외 웹사이트와 교과서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어 반크와 공동으로 글로벌 독도홍보대사를 양성해 국제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한국의 역사와 정보에 대한 오류 시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제3기 글로벌 독도홍보 대사는 반크가 사이버 독도사관학교(dokdo.prkorea.com)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한 430여명의 학생 중에 선발된 250명의 중.고.대학생이다.

 전국에서 모인 250여 명의 청소년들은 4시간 동안 한국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세계인들에게 독도와 대한민국 바르게 알리는 방안에 대해 반크의 박기태 단장과 연구원들로부터 직접 교육받았다.

 이날 교육을 수료한 학생들은 독도와 대한민국 역사와 정보 오류를 찾아내어 전 세계에 올바른 정보를 알리기 외국인에게 독도와 동해에 대한 자료를 전달해 man-to-man 으로 독도 홍보하기 등의 미션을 한 달간 수행한다.

 수행 결과를 반크에서 심사해 다음달 28일 정식으로 "글로벌 독도홍보대사"로 임명된다.

 또한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중 우수 활동자 45명을 선발해 독도탐방의 기회도 부여할 계획이다.

 박기태 반크 단장은, "교육에 참석한 제3기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이 정말 대한민국의 미래와 연결된다는 마음으로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2009년 3월에 개설한 사이버 독도사관학교는 현재 7만3000명의 회원이 독도와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올바로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이버 독도사관학교는 참신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한국지도 2종, 세계지도 4종, 엽서셋트, 동해.독도스티커 등 총 21종의 홍보물 제작했고 지난해에는 해외 109개국 3953명, 국내 1만5379명에게 배포했다.

 독도와 대한민국 교육 동영상 평화의 상징 독도, 글로벌리더 한국청년 등 10편을 제작해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 비메오에 올려 세계인들이 인터넷과 스마트기기를 통해 동영상을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소셜네트워크 사이트인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반크블로그에도 올려 사관학교 생도들이 직접 외국친구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지난 2009년부터 매년 독도캠프를 열어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섬 독도를 탐방하고 독도의 영상을 직접 담아 해외 친구들에게 알리거나 독도탐방 소감을 서한문으로 작성해 외국인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해외 교과서와 웹사이트 등에서 독도와 동해, 한국의 역사와 정보 오류 사항 226건을 발견해 세계 주요 대학교 출판사에 시정 요청 서한과 함께 오류 시정 자료를 해외에 발송했다.

 이 중 세계 지리 학생용 지도(Studen Atlas of World Politics)가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했던 것을 동해와 일본해로 병기하는 등 21건의 오류를 시정하는 성과를 거뒀다.

 김관용 지사는 "도와 반크는 2009년 3월부터 사이버 상으로 독도와 대한민국의 국제 홍보를 전개해 현재 7만여 명의 사관학교 생도들이 독도수호의 해외전선을 새롭게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청소년 여러분들이 이번 발대식을 계기로 사이버 상에서의 정보 오류를 바로잡고 국제사회를 설득해 가는 민간외교사절단으로서의 활약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477918&thread=09r02



역시 도지사님 위주로 찍어서 난 나오지 않았다.

어쩐지 카메라 렌즈가 다 오른쪽으로 치우쳐있다고 했었지.

by 초령목 2013. 4. 14. 14:11



내 청소년기의 마지막 목표들 중 하나를 달성했다.


1. 도전 골든벨 본선진출

2. 글로벌 독도홍보대사

3.경희대 창의적체험활동전형 합격


2번 달성.

물론 3번이 가장 어려워보이지만...

3번 작년 경쟁률보니 20:1


하지만 오늘 70000:280, 즉 250:1의 경쟁률을 뚫고 홍보대사로 합격

무서울게 뭐있는가


부딪히면 되겠지.


by 초령목 2013. 4. 9. 23:13









12.11.15~11.17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제 2회 창의체험 페스티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고난과 외로움의 시간이었습니다.

분명 저에게나 동아리에게나 유익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저의 가장 큰 적은 1:7의 성비. 그것도 바로 제가 1이라는 점.

안그래도 낯가림 심한 나를 남녀 1대7의 성비로 끌고가버린 것입니다

처음에는 남자1, 여자3을 데리고 갈 예정이라 이정도면 괴롭겠지만 버틸만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막판에 동아리 여후배 4명이 들어오는 바람에 극악의 성비로 킨텍스로 올라가버렸습니다.


대구에서 엑스코만 봐왔던 저에게 일산 킨텍스는 정말 엄청난 크기였습니다.

공터하나가 엑스코 몇개는 들어가고도 남아보였습니다.

바로 그곳이 동아리 페스티벌이라고만 들었던 제 2회 창의체험 페스티벌이 개최되는 곳이었습니다.

바로 그곳이 고난과 외로움의 장소였습니다.


첫째, 우리 동아리 책자를 1500부 발행했는데 그중 1000부를 일산으로 들고가야했습니다.

저거 누가 들고가나요? 전 남자지만 체형상 여자들과 근력이 아주 약간 우세할뿐 비슷하다고 봐야했습니다

여자애들도 '저거' 우리랑 별 다를 바 없다면서 선생님에게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듣는입장에선 슬프지만

다행히 누군가 짐끄는수레를 빌려주어서 비교적 쉽게 이동이 가능했지만 그래도 무거운건 무거웠습니다.

우리 동아리 역동의 컨셉은 간도 알리기였습니다. 

그래도 체험지에도 십자퍼즐문제와 함께 간도땅 색칠하기 체험을 만들었죠. 문제는 이 체험지도 엄청난 양.


둘째, 개인적이지만 우리 동아리의 체험은 너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페스티벌 특성상 관람객들은 대부분 학생들입니다. 물론 토요일에는 가족단위로 많이 찾아왔긴 했지만 그래도 주 관람객이 학생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원하는 것은 흥미위주, 추억을 남길만한 활동을 하는 것인데 우리 동아리 체험은 추억도 흥미위주도 아니었습니다.

 생각외로 많은 학생들이 저희 부스를 방문했지만 그건 체험지가 아닌 저희 동아리에서 걸었던 상품, 1등 문상때문이었습니다.

 뭐 여기까지는 이해하지만 더 아쉬운것은 우리가 간단하게 우리역사에 대해서 소개할 시간도 없이 그저 문제만 풀고, 그것도 답을 베끼고, 모른다며 이것저것 다물어보고... 체험으로서의 의미가 퇴색되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사족을 붙이자면 우리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동아리 부스에 들어가보니 그쪽은 아예 컨셉자체를 제대로 잡아서 같은 퀴즈라도 그쪽이 확실히 더 재미있었고, 심지어 추억을 남길수 있도록 사극체험장을 만들어 사극에 입던 옷을 빌려왔더군요... 

우리 동아리의 아쉬운 점이 바로 전혀 '흥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었던것 같았습니다.

저희 동아리의 컨셉은 그저 정보를 알리는 것이었는데 우리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중 정보를 얻은 사람이 있긴 있었을까...


셋째, 저는 외로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동아리 성비가 1:7. 저는 홈자라는 거. 

물론 감히 말을 못꺼내게 만드는 제 무뚝뚝함과 감히 말을 못거는 제 소심함이 만든 결과이기도 합니다.

1학년은 1학년끼리 뭉쳤고 2학년은 2학년 여학생끼리 뭉치니 남은건 나혼자.

이게 동아리내의 문제가 아니라 숙소내에서도 문제였습니다.

숙소에 들어가니 내가 묵는 방에 두개의 학교학생들이 침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두학교는 서로 끼리끼리 노는데

저는 그사이에 껴서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방금 막 바꾼 따끈따끈한 스마트폰만 가지고 놀았죠


넷째, 또 이름이 문제였습니다.

처음 제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저를 여자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게 어느정도냐면...


한번은 친구가 저와 문자를 하고 있는데 친구아빠가 와서는 

"이야 너 여친생겼구나?"

친구가 정색하며 제 사진을 보여주자 그제서야 인정했다는 일화...


또 한번은 리더쉽캠프에 갔는데

친구와 잘놀고 밤에 자려고 했는데 내 숙소가 여자숙소.


또 한번은 얼마전 골든벨 출연할때 작가가 사전에 골든벨 카페 가입하라고 전화왔는데

"저기 OO휴대폰 맞나요?"

"네. 맞는데요."

"아 그러면 OO좀 바꿔주세요"

"네. 저인데요."

"..."

"...?"

"아 이름보고 여잔줄 알았네요"

내 굵직한 목소리듣고 놀랐겠지 그래


그리고 또한번은 학교 선생님이

"오늘 발표할 사람은.. 음. 그래 OOO"

"네."

"아니 OOO"

"네"

"네가 OOO냐?"

"네"

"장난치는거 아니지?"

그래 내 굵직한 목소리듣고 놀랐겠지 그래


그리고 그일이 이날 또다시 일어났습니다.


물론 위의 내용은 킨텍스의 즐거운 추억중 있었던 유일한 불만들이었습니다.

예를들면 우리 동아리부스 앞 부스에서 관객들 끌려고 바이올린 연주를 하곤했는데

마침 심심해서 그 부스에 가서 체험을 했습니다. 그러자 저희부스애들이 갑자기 오면서 신청곡이라는 면목으로 사탕을 뿌렸습니다.

그러자 거기도 "오? 신청곡"이라면서 신나게 바이올린 연주를 했고, 지금까지 바이올린 연주를 해도 모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우리의 관심속에서 갑작스럽게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친해진 느낌이 들었죠


또 숙소에서 혼자지내서 레크레션 하면 난 외로워서 어쩌나 했는데

 짝게임인데 홀수라 어쩔수없이 일행에서 떨어져 나온분과 같이 게임을 할 수 있었고 

그게 뭉치고 뭉치다 보니 20명사이에 끼일수 있었습니다. 

물론 방금 만난사이라 마음들은 다 맞지 않았지만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또 다른 경험은 네이버중계TV에서만 보던 야구선수 박희수를 제가 직접 만나서 싸인까지 받았다는 것.

야구광팬인 저에게 영광스러운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박희수 선수 좌완투수로 알고있는데 싸인을 할떄는 오른속으로 하더군요

류현진선수같이 좌투우타인가


하지만 그 즐거운 추억들은 잊은채 축제가 끝나자마자 집에간다는 생각에 저의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물론 다시 들고갈 짐은 여전히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최저임금제 4860원 적용해서 3일동안 109920원을 받아야 할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1명의 노동자는 대구땅을 밤 10시에 겨우 밟을수 있었다는 글

by 초령목 2012. 11. 24. 00:35

http://www.kbs.co.kr/1tv/sisa/goldenbell/view/vod/2035822_59726.html

도전골든벨 역사최강전 11월5일분

초반에 한번 중간에 한번 막판에 한번 나왔다

by 초령목 2012. 11. 10. 01:37

 9월 22일 토요일 아침 일찍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야했다. 이미 금요일에 다음날 아침 일찍 올라간다는 핑계로 야자를 빼놨기때문에 별문제 없이 아침일찍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도 집안의 큰 행사라고 스마트폰이 없는 나를 위해 아빠가 아이패드를 주며 가는중에 공부좀 하라고 하셨다. 기차라고는 새마을, 무궁화밖에 타본적이 없던 나에게 KTX는 새롭게 느껴졌지만 막상 타보니 그게 그거였던 것 같다. 조금이나마 긴장을 풀 시간은 있을줄 알았는데 KTX가 대구에서 2시간도 안되서 서울까지 와버렸다. 서울역앞에서 대구 촌놈이 서있으니 참으로 할일이 없었다. 그나마 성균관대학교에 재학중인 서울물 먹은 우리 형이 KBS까지 안내를 해주어서 비교적 쉽게 도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KBS까지 2시까지 모이기로 약속되어 있었고 나는 그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모임장소는 KBS신관 5층 국제회의실 아는 사람은 정말 한명도 없어서 감히 말걸기가 힘들었고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온 친구가 있었지만 이성이라 그리 친하지는 않았다. 진행자가 말을 안하고 딴짓을 할때면 참으로도 어색하고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었다. 때마침 TV에서만 보던 도전 골든벨 MC들이 우리를 환영하러 오셨다. 박태원과 가애란이였다. 지금까지 골든벨 여MC는 차다혜로 알고있었는데 임신으로 결국은 휴가를 지냈나보다. 가애란 아나운서는 지난주부터 골든벨에 합류했다고 했으니 꽤나 고급정보였다. 그저 친해지자는 의미로 여러 활동을 해서 딱히 할말은 없었다. 다만 박태원아나운서. 굉장히 재미있는 분이었다.

 6시까지 레크레이션을 진행하고 서울하이유스호스텔이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내 룸메이트는 2명이었는데 강원도 춘천에서 온 친구와 전라도 군산에서 온 친구가 있었고 동갑이었다. 나는 말이 없는 타입이라 둘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중간중간에 나도 말을 몇마디 던지는 식으로 대화를 했는데 뭔가 나와는 다른세계에 사는 친구들 같았다. 일단 나는 대구에서 왔기때문에 대도시였고 나머지 그 둘은 그래도 대구보다는 작은 소도시였기때문에 농촌,소도시의 비애들을 들으니 도저히 공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말을 재밌게 하니 신기해하며 듣고있었다. 지역비하발언들에 대한 실체도 파악할 수 있었고, 또 걔네들은 부럽게도 해외여행을 많이 다닌 것같았다. 유럽은 물론 중국 일본등도 여행다니며 서로 느낀점을 말하고 있는데 나는 바다건너라고는 제주도밖에 안가본 사람이라 신기해하며 듣기만 했다. 그렇게 한 2시간정도 대화하다 내일있을 골든벨을 위해 공부도 하고 미리 자놨다.

 다음날 드디어 골든벨이다. 골든벨 장소는 사실 철원이라던가 좀 의미있는 장소로 기획해놨다던데 장소가 마땅치 않아 어쩔수없이 KBS에서 하기로 했다고 한다. KBS별관인데 응원하는 가족들은 미리와있었고 그 중에서 낯익은 우리가족도 보였다. 오전 9시 드디어 KBS 도전 골든벨의 녹화가 시작되었다. 박태원 아나운서와 가애란 아나운서 모두 어제본 그대로였다. 다만 박태원아나운서. 분명 경험도 많으신 분인데 오프닝에서 4번의 NG를 내셨다. 오프닝에서는 100명의 학생들이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질러야 했는데 그덕에 100명의 목이 다 나가버렸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공인을 본것만으로도 난 영광인데

 분명 역사 통일골든벨이라길래 나는 역사와 통일에 대한 문제가 나올것으로 기대하고 여태까지 그것위주로 공부를 했다. 하지만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전혀 내가 생각한 부분에서 나오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1번문제 인천상륙작전을 풀고 난 후로는 그저 상식이 필요한 문제들 뿐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5번문제...



이 사진을 주고서는 그리기 OOO 통일해라. 지겹다의 사전적 정의를 말해주며 빈칸에 들어가는 말을 적으란다. 나는 이미 이짤을 봤고 유명한 짤이기 때문에 자신있게 "귀찮다"를 적었는데 대량탈락. 정말 90명중에 70명이 탈락해버렸다. 

그리고 다음에 나오는 문제는 앞서말했지만 정말 상식이 필요한 문제였다. 참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을쏘냐...

그렇게 17번문제까지 가니 어느새 9명의 생존자가 남았고 거기서 패자부활전을 했다. 스포일러라 패자부활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지만 대단한 능력자 한분이 우리 100명 모두를 구원해 주셨다. 

 그런데 나의 가장 큰 약점이 상식이 그리 풍부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어릴때 책은 좀 읽었다고 자부했지만 그 책 대부분이 역사책이라 넓은 범위의 상식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18번문제 사투리에서 대량탈락을 겨우 버틴 후 누구나 다 풀수 있는 19번문제에서 나는 답을 쓰지 못했다. 탈락해서 나가보니 나와 재밌게 탈락자 인터뷰한 건장한 학생뿐이었다. 이것 참 차라리 대량탈락문제에서 떨어졌으면 덜 부끄러웠을텐데...

 그렇게 탈락한 후 심심해서 계속 골든벨 문제를 풀어보았다. 풀던 중에 가수 윤하가 나와서 486을 부르고 갔는데 하필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되서 찍을수가 없었다. 정말 팬이었는데 아쉬웠다. 그래도 골든벨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풀수록 안타까웠다. 35번까지 몇몇문제 빼고는 정말 풀만한 문제였던 것이다. 물론 그 후로는 더이상 풀수없었다. 내가 못푸는 문제도 가볍게 풀어버리는 최후의 4인을 보면서 나는 조금이나마 꺠달았다. 역사 좀 안다고 자부하고 있어서 최근에 관심이 덜했는데 오늘을 계기로 내가 우물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깨닫고 끊임없이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승자는 제주도에서 온 학생이었고 상당히 박력넘치는 친구였다.


 우물안 개구리에 불과한 나 자신을 깨달았지만 내가 가장 싫어하고 못하던 근현대사에 대해서 공부할 기회를 주었던 도전 골든벨. 내가 과연 졸업할때까지 골든벨에 나갈수 있을까?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던 내가 골든벨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상식의 폭을 넓혀 다시 도전하고 싶다. 도전 골든벨 파이팅














by 초령목 2012. 9. 25. 01:12

 보이스피싱, 오원춘, 그리고 개그에서 자주 사용되는 연변어.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조선족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선족의 연변어를 개그의 주소재로 사용하며 가난하고 희화화된 것에 웃으며 그들을 비웃고 있으며 보이스피싱과 오원춘을 통해 조선족이 부정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선족을 부정적으로 떠올리면서도 그들을 까내리고 있을 것이다.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서는 중국인, 한국에서는 한국인. 상황에 따라 자신의 국적을 바꾸는 박쥐같은 그 조선족의 이중성. 그것이 한국인이 조선족을 싫어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선족은 ‘중국인’이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즉 조선족을 우리와 같은 한민족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우리가 조선족을 굳이 다른 민족으로 인식할 필요는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조선족은 우리에게 부끄러운 먼 친척 취급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대신 중국을 택하는 조선족에게 실망하기도 섭섭해 하기도 한다. 조선족 입장에서는 한국의 밀고 당기기, 속된말로 밀당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실 조선족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욕먹을 이유는 없다. 일제강점기 중에서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해내고, 한반도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간섭을 피해 올라가 그곳에서 정착을 하기도 한 곳이다. 어찌 보면 우리에게 조선족사람들은 국가의 은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나라의 국민이 다른 나라로 가서 부끄러운 짓을 할 때면 그것이 곧 국가의 이미지가 되어버린다. 또 원래 인간이란 백번 잘해도 한번 잘못한 것만을 기억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조선족의 일부가 한국에 와서 저지른 어떠한 사건들이 조선족의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그것이 우리가 조선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주된 이유다. 일제강점기는 이미 먼 옛날의 일이고 현재는 다른 세상이며 이 세상에서 조선족들이 우리에게 해를 주기 때문에 그들에게 감사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간도는 우리땅’이라고 주장을 하곤 한다. 한반도의 1.5배 크기의 땅과 그곳에 매장된 엄청난 양의 자원은 생각만으로도 우리를 웃음짓게 한다. 하지만 조선족을 차별하고 무시하면서도 간도를 우리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도 뻔뻔한 짓이 아닐까?

 지금 현재 간도의 주인은 중국, 아니 더 정확하게는 그 중국에서도 가장 큰 소수민족으로 자치구를 형성하고 생활하고 있는 조선족이다. 수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고된 차별을 이겨내며 돈을 벌고 중국의 가족들에게 보낸다. 그 차별 속에서 이를 갈며 번 돈으로 중국에 있던 조선족 아이들은 중국의 학교에 다녀 완벽한 중국인으로 성장하여 사회에 나온다. 또 중국의 정책으로 이미 조선족 자치구 내의 조선족의 수도 줄고 있으며, 세대가 거듭될수록 한국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가진 조선족들도 줄어들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조선족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약화되고, 악화되어 가고있는데 지금 당장 조선족과 한국사이의 거리감도 해결하지 못한 채 우리들은 태연히 “간도는 우리땅”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간도를 주장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조선족과 긴밀한 관계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얼마전 한 조선족이 한국의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우승을 했던 일이 있었다. 당시 그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가 누가될 것인가가 전 국민적 관심사였고, 시스템상 우승자를 뽑기 위해서는 시청자들의 호응과 지지가 있어야 했는데 바로 그 조선족이 우승을 한 것이다. 이에 한국 언론은 물론 중국 내 조선족 사회도 열광하며 기뻐했다. 한 조선족 청년의 우승이 조선족과 한국사이의 오해와 편견을 조금이나마 해결해버린 것이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조선족과 문화적인 교류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지금 현재 한국사회에서의 조선족의 모습은 부정적이다. 그것은 조선족의 참모습을 모르는 우리이기 때문에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온 착각일수도 있다. 그런 착각을 해결하기 위해, 또 조선족 사회 내에서도 사라져가는 한국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어넣어 주기위해서 조선족과의 교류가 시급하다고 본다. 우리가 진정 간도를 찾기를 원한다면 간도에 사는 조선족들을 우리의 편으로 아니 우리의 민족으로서 인정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조선족과의 화합은 북한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족 사람들도 남북의 통일을 바라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국경선은 맞대고 있는 남한과 조선족의 화합은 북한에게도 평화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조선족과 북한, 그리고 남한은 한 핏줄임에는 분명하다. 한반도의 핏줄이 백두대간을 넘어 민족의 시작인 만주지방까지 닿는 것. 남한과 북한, 그리고 조선족의 화합은 한반도와 간도의 결합을 넘어 한민족의 오랜 바람일지도 모른다.




by 초령목 2012. 9. 9. 17:01

 2010년부터 매년 동아리 책자를 발행하고 있는 우리 동아리, 역동에서는 올해는 간도와 조선족들에 대한 내용을 중점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동아리 선생님께서 당초 우리의 뿌리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중국을 통해 백두산 등반을 하였는데 그덕분에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그때부터 "아 이 조선족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국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후 간도에 사는 조선족과 우리 민족과의 관계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더불어 독도에 가려 우리가 잊고있던 '간도'라는 땅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계기로 와룡고등학교 역사논술동아리, 역동에서 우리땅 간도를 찾기 위하여 경일대학교 경산캠퍼스를 찾았습니다. 경일대학교에서는 '간도론·독도론'이라는 강좌를 전국에서 최초로 개설하고 최근 역사와 영토 분쟁으로 갑론을박하는 독도와 간도가 우리땅임을 증명하여 강좌를 듣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우리역사의 자긍심을 일깨우고 있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갑작스러운 방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환영하기위해 손수 현수막까지 제작해준 경일대학교의 정성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간도를 알고있다고 자부할 수는 있습니다. 적어도 '간도'라는 땅의 존재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렇기에 네이버 온라인 기부 해피빈을 통해서 간도를 되찾기 위해 제 모든 해피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 자신도 간도를 잘 알고있다고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간도를 되찾기 위해 홍보하는 사이트에서 소개하는 간도는 저를 충족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저에게 "어째서?"라는 궁금증만 유발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저에게는 간도라는 땅은 '우리땅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왜 우리땅인지는 모르겠다."라는 역설적인 호기심을 일으키는 땅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간도에 대한 관심이 식어갈 무렵 때마침 경일대학교에서 '간도론'이라는 강의를 듣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간도를 연구하는 홍영희 교수님을 통해서 그동안 잊혀져왔고 몰랐던 간도에 대해서 상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는 눈으로 읽기엔 길고 지루한 간도의 역사를 우리에게 호소력있는 목소리로 들려주셨습니다. 교수님의 이야기에 저도 의외로 간도에 대해서 무지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간도는 그저 한반도보다 약간 큰 크기에 조선족들이 대부분 살고있는, 또 3000년동안 고조선-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발상지자 활동지였다는 사실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간도는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간도가 원래는 島(섬 도)자를 쓰는 두만강에 있는 하중도라는 사소한 것부터 이미 많은 서양국가들이 간도를 우리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신뢰할 수 있는 지도까지 간도를 알고있었다고 생각했던 저에게 모두 처음듣는 생소한 이야기였습니다. 교수님이 들려주는 간도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1600년대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가 대륙을 정복하게 된 후 간도라는 땅을 신성시 여기며 중립화 하였습니다 .즉, 간도를 포함한 만주지역이 공터가 되어 버린것이죠. 이때 우리민족은 그 간도라는 땅에 들어가 먼저 개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청나라와 조선사이의 국경선이 불분명하게 되자 1712년 양국은 서로 만나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서 국경선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지만 바로 이 백두산 정계비에 적힌 '동위압록 서위토문'이라는 글귀가 200년 동안 청과 조선의 충돌을 일으켜버립니다. 그 당시에 청나라의 명으로 서양 선교사가 그린 지도를 보면 간도땅이 조선의 땅으로 명백히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청나라는 서위토문이라는 글귀가 두만강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은 당연히 토문을 송화강의 지류인 토문강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이 토문이라는 글귀의 해석에 따라 조선은 북방영토를 얻거나 잃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기록들에 의하면 '토문'이라는 글귀는 보통 토문강을 의미하고 있었고, 백두산 정계비를 세울 당시 석퇴라는 돌무더기를 세워 강이 범람할때를 방지하여 국경선을 확실히 하였는데 이 석퇴가 토문강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증거들을 종합하여 볼때 조선의 주장은 당연하였지만 청나라와 군신관계를 맺었던 조선이 강력하게 주장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1905년 을사조약으로 주권을 거의 빼앗긴 조선은 청일간의 1909년 간도협약을 통해 간도를 완전히 빼앗겨 버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을사조약 자체가 늑약이라 불릴 만큼 실효성을 잃어버리는 무효성 조약이었기에 1909년 간도협약역시 무효라고 주장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중국땅이고 또 남북이 서로 갈라진 상태에서 북한과 중국의 관계, 또 국력차이를 생각해볼때 우리가 지금 간도를 우리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시기상조일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간도를 너무 당연히 중국땅이라 생각하는것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과연 국민들이 이런 단편적인 역사만 알고있다면 그렇게 간단하게 중국땅이라고 여길 수 있을까?

 저는 이 모든 사실은 당연히 우리가 처음들을 수 밖에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소리치지만 정작 우리 국민들은 그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뿐 왜 우리땅인지 그 역사조차 상세하게 알고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독도도 이런데 하물며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간도의 역사를 알고있는 사람, 아니 간도라는 땅을 알고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교수님은 그렇게 우리를 일깨워 주셨고 저도 간도를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간도는 빙산의 일각, 바다속에서 조그맣게 튀어나온 빙산만 보고서 간도에 대해 잘 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참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도 아직까지도 예전에 느꼈던 그 호기심을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만큼 저는 간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싶었습니다.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저는 중간중간 떠오르는 호기심을 노트에 적어놓으며 강의를 경청하며 끝나길 기다렸습니다. 물론 교수님의 강의가 끝난 후 보여준 간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제 궁금증 일부가 해결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강의가 끝나자 저는 교수님에게 수년간 묵혀두고 저를 괴롭힌 그 궁금증을 방출했습니다. 제가 물어볼 것은 많았지만 시간은 없었습니다. 어찌보면 제가 하는 질문은 무례하게도 교수님의 간도론에 반박하는 꼴이 될 수도 있지만 그분만이 저의 궁금증을 해결해줄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기에 무례함을 감수하고 교수님께 여쭈었습니다. 다행히 교수님은 시간이 없는 와중에도 흔쾌히 제 질문에 답을 해주셨습니다.

 첫째, 팔레스탄인이 유대인에 의해 쫓겨나서 국제적으로 동정표를 받고있다. 그 지역은 수천년 전에 유대인들이 왕국을 건설하고 살던 곳이었고 그 후 수백, 수천년을 팔레스탄인이 살아오다가 유대인에 의해 갑작스럽게 빼앗긴 땅이다. 간도도 수천년간 우리민족의 원천지이자 우리민족의 활동지이지만 발해를 끝으로 우리민족이 발을 붙인 적이 없었고, 한민족이 떠난 그 자리에는 대신 청나라의 조상인 여진족들이 수백년간 살던 곳이었고 지금은 그 여진족들이 중국의 소수민족화가 되었는데 우리가 과연 유대인처럼 간도를 우리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둘째, 간도가 서양인들에 의해 지도에 우리 영토로 기록된 것은 몇몇 있다. 하지만 그 간도가 우리나라가 제작한 지도에 나온 것은 본적이 없다. 그나마 남아있는 지도는 대한제국시대에 비로소 우리 영토로 표시되었다. 즉 외국사례는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사례가 없다. 이는 조선 백성들이 스스로 넘어가서 개간한 것과 별개로 조선정부는 간도에 대해서 별로 신경쓰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실제로 조선이 간도에 대하여 청나라에 본격적인 항의를 한것은 1800년대 후반, 조선이 개화를 하기 시작할 때였다. 조선정부조차도 무시했던 간도를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것일까?

 셋째, 하나의 근거가 되는 백두산 정계비가 말하는 땅은 북간도 지역이다. 즉, 서위토문이 토문강이 맞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북간도 지역만을 우리의 영토로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서간도, 동간도를 포함한 간도전체지역을 어떻게 우리나라 영토로 주장할 수 있는것인가?

  저의 질문에 교수님이 답변을 해주셨습니다만 정확한 답변은 얻지 못했습니다. 정확한 답변을 듣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번째, 세번째 질문은 아주 약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의 영조가 이미 압록강과 두만강너머의 간도지역까지 간섭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와있었다는 것에서 조선이 간도에 대해 그렇게 무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주었습니다. 또 백두산 정계비 말고도 여러 간도가 우리땅임을 증명하는 자료가 많아 종합적으로 본다면 간도지역 역시 우리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번 간도론에서 안타까운 점은 아직까지도 저의 호기심은 아직 완벽하게 해결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간도라는 땅에 대해서 다시한번 느끼고, 알게된 것만큼은 큰 수확이라고 생각됩니다. 적어도 와룡고등학교의 역동만큼은 간도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다른 누군가보다도 훨씬 간도에 대해서 알게되는 것이니 대한민국 0.1%가 된 기분입니다. 당초 선생님이 계획하셨던 조선족과 한민족, 그리고 간도의 관계에 대해서는 얻은것이 없어 아쉽지만 저는 그것만큼의 큰 수확을 거뒀다고 확신합니다. 좋은 강의를 들려주셨던 홍영희 교수님과 경일대학교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간도론의 홍영희 교수님.




by 초령목 2012. 9. 7. 01:13


유교정신 계승의 필요성 및 활성화 방안.hwp


꽤나 고생해서 한건데 결국은 또 떨어졌네요...


한국 유교에 부흥을 꿈꾸는 내용이었습니다.

by 초령목 2012. 8. 16. 20:35


위안부 눈물로 주름진 소녀들의 외침-1.pptx

이 (나)

위안부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사실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기에 그리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조사하다보니 위안부를 사진을 비롯하여 많은 자료를 받아 읽으며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런 잔인한 일을 벌일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또 점점 위안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계신데 아마 예전의 나처럼 너무 무심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심지어 위안부는 전쟁중에 있을 수 밖에 없는 ‘매춘부’라고 생각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그의 말에 충격을 먹었고 순간 동감을 했었다. 하지만 이런 자료를 보고 나니 금세 후회하게 되었다. 이제 채 100여명도 안남으신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위안부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뿐이다.

이 

언론매체로만 접하던 것을 직접 찾고 조사하니 알고있던 것들이 좀더 새로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할머니와 조상님들의 핏값으로 이렇게 살게되었는데 너무 무관심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절대 잊어서는 안될일이고 꼭 후대에 올바른 진실을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위안부를 비롯한 조상님들의 희생을 잊지말고 가슴에 품고 살아야겠다.

장 

평소에도 인터넷이나 TV로 자주 사용되던 주제이기에 위안부를 알고는 있었지만 남들이 일본을 욕하기에 단순히 일본 잘못이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함께 비난만 했었다. 지금은 위안부라는 단체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떠한 일이 행하여 졌으며 종전후에도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또 매주 수요일 시위를 하고 있다는 것 역시 알게되었다. 자신들의 치부를 세상에 드러낼 정도라면 그에 대한 원한의 크기를 알 수 있었고 이는 당연히 강제로 위안부가 된 이들에게 사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는 동영상만 했는데 이번에는 파워포인트와 동영상을 제출했지만 탈락.

by 초령목 2012. 8. 16. 20:33
| 1 2 3 4 |